[에세이] 1%의 불빛.

글 입력 2022.11.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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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이 슬프거나 힘든 하루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곳곳에 있었던 불빛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주고, 좀 더 나은 ‘나’가 되고 싶지만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길 바란다]


장편소설 ‘밝은 밤’ 리뷰 글에 적었던 문장이다. 이 문장을 쓰면서 아직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불빛을 발견하길 진심으로 소망했다.


사실 소망의 마음이 조금 더 컸던 쪽은 좀 더 나은 ‘나’ 되고 싶지만, 자신이 없는 사람들의 밝은 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포기하거나 안주하며, 희망을 품기보다는 체념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믿지 못해서다. 난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당신도 변화의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자신을 믿고 용기를 내보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중간부터는 전자 쪽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밝은 밤을 더 바랐다. 마음이 변했다기보다 시기성을 탄 것이다. 그 글을 쓰던 당시 친동생이 직장생활에 힘들어했고, 세상은 참사로 인해 깊은 슬픔에 잠겼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보기에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지만 갑자기 울컥하여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한편으로는 난 잘 웃고 잘 먹고 잘 돌아다니며 지내는데, 지옥의 시간을 겪고 있을 그분들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나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그런 시기였다.


그래서 그분들의 암흑의 밤이 조금이라도 밝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마지막 문장에 담았다. 표현하면 그 마음이 더 커지듯이 마침표를 찍고 나니 염원의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더 표현하고 싶어졌다.


20대 초반, 나는 사람들의 민낯을 보는 것에 지쳐 있었다. 상식 이하의 사람들만 있는 세상이 싫었다. 업무와 사람에게 질릴 대로 질려버린 상태였다. 이러다 내 꿈까지 싫어질 것 같아서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 했던 직장까지 그만두었다. 하지만 우연히 들어온 자리에 다시 관련 일을 했다. 한 달의 단기 프로젝트였기에 한 달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얼마 안 돼서 다른 자리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이미 한계를 넘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염세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앞으로의 월세 걱정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아빠는 경비를 보태줄 테니 여행을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아빠의 뜬금없는 말에 당황했다. ‘내 속사정을 눈치를 채신 걸까?’, ‘얼른 아르바이트해서 돈 벌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생각들을 재빨리 지웠다.


어디론가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더구나 혼자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월세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빠의 돈에 내 월급을 보탤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거의 일주일 동안의 내일로 혼자 여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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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여행 첫날과 굵직한 동선만 짰다. 세부 계획은 그날, 그날 짜기로 했다. 그리고 길을 물어볼 때 말고는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기로 했다. 어떤 여행지에서는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린 후, 휴대폰을 잠시 꺼두기도 했다.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은 타인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혼자가 되고 싶었다. 여행은 모두 내가 바라던 대로 되었다. 하지만 딱 하나. 바람대로 되지 않은 게 있었다. 바로 타인과 접촉하지 않고, 말을 섞지 않는 것이었다.


마지막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도착하여 바다열차를 기다렸다. 그 과정에서 어떤 아주머니와 대화하게 됐다. 그 아주머니는 내게 무얼 물어보셨는데, 바다열차에 관련된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바다열차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칸 승객이었다. 바다열차에 탄 우리는 계속 대화하고, 말없이 바다를 보기도 하며 바다열차의 추억을 함께했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했다. 그러다 내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첫 여행지에서부터 누군가와 접촉하고, 대화를 나눴지만 개의치 않았다. 본인들의 사진을 부탁한 사람들을 만나고, 답례로 나를 찍어주겠다고 하여 모르는 사람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도 괜찮았다. 원래 여행은 변수가 많은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래도 혼자일 때가 많았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먹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나는 마지막 여행지인 부산에 도착했다. 서점에 들러 부산 여행 관련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곳과 먹고 싶은 것을 메모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여 여러 관광지에 갔다. 일부러 효율적인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발길 닿는 곳부터 갔다. 그 탓에 체력이 고갈되어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일부러 돌아가는 건 아닌지 의심이 생겼다. 승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언제 내릴지 궁금했다. 결국 택시 기사님에게 이 길로 가는 게 맞냐, 언제 내리냐, 얼마나 남았냐는 질문을 퍼부었다. 택시 기사님은 내 질문들에 일일이 답을 해주셨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급해, 지름길로 잘 가고 있으니까 조급해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평소 택시를 탔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괜히 돌아가서 요금을 많이 내게 한 기사님에게 실망한 내 모습, 택시를 탈 때는 1분 1초마저 아까울 정도로 바쁠 때가 많아서 휴대폰 시간만 보며 발만 동동 구르던 내 모습. 


그 모습들이 생각나면서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봤다. 나는 늘 조급했고, 여유가 없었다. 취업 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주변의 탓도 있지만, 그 누구보다 내가 나를 몰아붙였다. 해방되고 싶어서 여행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나는 나를 몰아붙였다.


택시 기사님의 한 마디 덕에 나는 심호흡을 하고,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 풍경을 봤다. 여유로운 걸음과 시선 덕분에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눈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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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잊히지 않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태종대의 풍경이었다. 안개 낀 날씨 때문에 푸르거나 초록빛의 바다는 볼 수 없었지만, 매우 신비로웠다. 주변이 안개로 자욱해서 바다와 바위, 절벽이 마치 현실 세계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았다. 꿈속 같기도 했다. 한참을 올라가고, 내려간 뒤 만난 거라 숨어있었던 천국에 도착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태종대의 풍경만큼 기억에 남은 것은 그곳에서의 나였다.


태종대까지 가려면 오르막길을 걷고,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꽤 힘든 길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 다누비열차를 이용하는데, 나는 과감하게 걸어서 갔다. 휴대폰까지 끄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외국인과 한국인을 만났다. 두 사람은 친한 사이 같아 보였다. 그들은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길을 찾기 어렵다며 길을 물어봤다. 하지만 나도 길을 헤매던 참이라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동행하게 됐다. 아무리 가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고개를 들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그때의 나는 가족 또는 친한 친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성격인데다 낯가림까지 심한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의지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더구나 사람한테 질린 상태였다. 바람과 달리 계속 변수가 생겼고, 태종대에서 그런 일까지 있었으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짜증이나 화가 날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러지 않았던 걸까. 


나한테는 1%가 있었다. 숨어 있는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고, 인간의 냉정하고 차가운 면을 봤을 때는 따뜻한 면도 함께 보려고 했다. 이는 곧 사람에 대한 1%의 희망이 되었다.


첫 여행지에서 사람과 꽤 길게 대화했는데 개의치 않아 했던 것, 택시기사님의 말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사람에게 의지하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던 것까지 모두 사람에 대한 1%의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다.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여행은 내 가슴 한쪽에 있었던 사람에 대한 1%의 희망을 발견하며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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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는 사람에 대한 희망뿐만이 아니었다. 힘들고 괴로운 시기에 있을 때는 1%라도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행복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1%의 행복에 감사해하는 장점이 있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1%의 삶의 의욕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1%는 숫자로만 보면 별거 아니지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 덕분에 지금까지 내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슬픔, 분노, 실망감 그리고 혼란이 뒤엉킨 감정을 느꼈던 시기를 잘 견딜 수 있었던 것도 1%의 힘 덕분이었다. 애도하고, 슬퍼했던 나의 진심을 생각했고, 숨은 영웅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한테 있는 1%는 암흑의 밤을 밝히는 불빛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의 1%, 어떤 것의 1%... 여러 1%의 불빛이 모여 점점 밤이 밝아지고, 전보다 나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내 동생은 1%의 좋은 사람들을 생각했으면 한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분들이 1%의 기쁨, 위안, 따스함, 다시 일어날 힘을 발견하길 바란다.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면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그 차이를 느끼고 잘 견뎠으면 좋겠다.


부디 1%의 불빛으로 1%라도 덜 외롭고, 덜 아프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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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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