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노래하는, 가장 아팠던 역사의 나날 – 2022 서울오페라페스티벌 ‘푸른 눈의 목격자’

글 입력 2022.11.1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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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뮤지컬을 좋아하기 시작했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8년 전 처음으로 뮤지컬을 봤던 경험을 회상하며 늘 이렇게 말했다.


“오페라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아이러니하게도 작년까지의 나는 오페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오페라가 나와 거리가 먼, 어려운 장르일 거라고 확신한 채 뮤지컬과 비교하는 말을 했던 것이다. 내 말을 듣던 이들도 이러한 전제를 항상 쉽게 수긍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일단 나의 주변에는 오페라에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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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의 인사말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오페라는 여전히 어려운 공연, 일부 고전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예술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관객들이 보다 쉽고 친근하게 오페라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된 이 축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발걸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관람한 공연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서사 오페라 <푸른 눈의 목격자>였다.

 

 

 

역사의 증인, 푸른 눈의 목격자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직접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에 대해 모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며 우리가 광주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실, 힌츠페터 외에도 외국인 신분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여 세상에 알렸던 이들이 여러 명 있다. 본 오페라에서는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의 증인인 스코필드 선교사를 또 다른 ‘푸른 눈의 목격자’로 지칭한다.


제암리 학살 사건은 1919년 3.1 만세운동의 보복으로 제암리 주민들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일본군은 3.1 운동의 진압 과정에서 자신들이 행한 폭력에 대해 사과한다는 명분으로 제암리 교회에 약 20명의 주민들을 모이게 한 뒤, 교회당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불을 질러 모두 살해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증거 인멸을 위해 인근의 교회 건물과 민가들을 불태웠다.


이에 분노한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는 현장의 사진을 담아 ‘수원에서의 잔학 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뒤 미국에 보내어 일제의 만행과 비참한 상황을 여론에 알렸고,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였다.

 

 

 

윤동주, 이육사의 시를 노래하다.



본 작품에서는 제암리 교회에 간 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걱정하는 여인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노래로 풀어낸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일 시인인 윤동주, 이육사의 시로 작곡된 가곡을 통해 제암리 사건을 조명한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일본 순사부장이 사과문을 낭독한다는 말에 의심과 걱정하는 감정을 품으면서도, 일제의 만행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를 받고 후세의 아이들에게 떳떳하고자 제암리 교회로 향했던 주민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가장 아픈 역사를 우리의 아름다운 언어로 노래하는 장면들을 보니 여느 때보다 과거의 상처가 더 깊이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의 말과 글자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의 땅과 정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맞서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그들이 모든 걸 바쳐 지켜내고자 했던 이 나라를, 과연 우리는 잘 가꾸고 있는 것인지. 이 땅 위의 우리 사회가 올바르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한참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관람한 첫 오페라의 리뷰를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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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가 아직 낯설기도 하고, 이번에 본 공연은 흔히 말하는 정통 오페라와도 거리가 있는 듯해서 장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역시 내가 즐겨 보는 다른 장르의 공연들과 본질은 같았다는 점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성찰해보게 하는, 공연예술의 힘을 온전히 가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웠던 점으로 공연 진행상 미흡했던 점 두 가지 정도를 적고 싶다.


첫 번째는 공연 시작 후 지연 관객을 입장시킬 때 하우스 라이트가 긴 시간 동안 켜졌던 점이다. 객석 불이 갑자기 켜진 채로 관객과 안내원이 앞쪽 열까지 이동하다 보니 거의 모든 관객의 주의가 그쪽으로 쏠리게 된 점이 아쉬웠다.


두 번째는 공연 중 화면에 띄운 가사에 오타가 있었고, 영상 전환에도 실수가 발생했던 점이다. 중요한 내용과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런 기본적인 부분에서의 실수는 몰입에 더욱 큰 방해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재공연 시에는 이러한 점들을 개선하여 관객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공연이 되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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