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늦가을의 목소리, 이소라 [음악]

글 입력 2022.11.1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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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백지 위에서 커서가 깜빡거린다.

 

이소라에 대해 써야겠다, 생각하며 노트북을 열고는 한참을 그대로 가만히. 고개를 젓고, 이소라에 대해 쓰기를 재차 결심하고, 이소라의 노래를 찾고, 그녀의 노래를 재생하고, 다시 한참을 가만히 멈춘다. 긴 하루 중 찰나와 같은 정지 사이에도 창밖의 가을은 한결 깊어진다. 늦가을이다. 이소라는 늦가을의 목소리다. 우선은 그렇게 말해놓는다.


가수 이소라를 제대로 알게 된 건 2011년. 가수들의 서바이벌 경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덕분이었다. 당시 프로그램의 진행자이자 경연자였던 이소라와의 조우는, 비록 브라운관을 사이에 둔 일방적 마주침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이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충격을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모르던 18살 고등학생은 또래들과 모여 우스꽝스럽게 그녀를 모창하는 것으로 풀어내곤 했다. 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 그 노래를 다시 듣는 나는 웃음 대신 울음에 가까운 무엇으로 충격을 고스란히 음미하고 있다.

 

 


 

고요하지만 유려한 진행자였던 그녀는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철저히 고독해진다. 관객과 눈을 맞추지 않고, 관객의 호응을 간청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나는 나를 노래할 수밖에 없다는 슬픈 결의를 다짐한 듯, 한 소절도 흘리지 않고 절제된 한숨처럼 노래한다.

 

그녀의 짙은 목소리가 “텅 빈 풍경”처럼 불어오는 가사를 만날 때, 바깥으로부터 사방이 차단된 무대는 (혹은 내가 감상하고 있는 작은 공간은) “내게서 먼” 어떤 계절이 된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 <바람이 분다> 중에서

 

 

모든 가수가 노래하는 시인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가수는 시인보다 섬세한 언어로 말을 건넨다. 음정과 리듬을 통하면 가사의 섬세함은 더욱 두툼해지고, 우리는 언어보다 더 마음의 원형에 가까운 말들로 묵직하게 가슴을 맞는다.

 

‘가슴, 음악이 먼저 울리는 곳은 머리가 아니라 분명 가슴이다.’ 가수 이소라는 노래로 그렇게 말한다. 어떤 날, 반듯하고 정갈한 앉음새로 무대를 빌린 그녀의 노래는 이런 주장까지 나아간다. ‘노래는 반드시 나의 가슴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너의 가슴에 닿는다.’


이소라의 곡들을 반복해서 몇 차례나 더 들은 후에야, 그래서 차분한 슬픔의 순간까지 결국 마주한 뒤에야, 아주 약간은 더 확신하며 말할 수 있겠다. 이소라는 늦은 가을의 목소리다.

 

이소라의 노래에서 가을을 느끼는 이들은 이미 많을 테지만, 왜 하필 늦가을인가. 나조차 이유를 알 수 없는 나의 주장의 근거를, 떠나보내는 이의 석별가와 떠나야하는 이의 답가를 묶은 듯한 그녀의 한 노래에서 찾는다.


 

먼저 위에

더 먼 저기 위에

넌 거기 위에

(…)

그 언젠가 또 이곳에

먼 훗날 꼭 이곳에 와

(…)

참 너답게

아름다울 때

아름다웁게

 

*

안녕히 이제

안녕히 지금도

안녕히 그때

안녕히 아직도

안녕히 꿈들도

안녕히 눈물도

안녕히 이제

안녕히 영원히


- track 4 중에서

 


어쩐지 애달픈 이별의 순간을 앞 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 “더 먼 저기 위”로 떠나는 너에게 “너답게 아름다울 때 아름다웁게” 돌아오라는 축복을 먼저 건네는 이의 인사가 애달프고,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속으로 곱씹으면서도,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불확실한 기약은 상처를 남겨놓는 일이 될 터이므로, “안녕히 영원히” 덤덤한 이별의 말로 대답해야만 하는 이의 답신이 아름답다.

 

 


 

가을의 한 뼘 뒤에 늦게 도착하거나 늦도록 끝을 미루다 조용히 겨울로 떠나는 시기를 늦가을이라고 말한다면, 늦어도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영원한 작별의 인사마저 담담하게 받아낼 수 있는 마음을 늦가을의 마음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목소리라면 늦가을의 목소리라고 불러도 충분하리라는 생각을, 이소라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자주 떠올리고 만다.


이소라의 어느 앨범 음원 아래서 이런 댓글을 발견하고 오래 머문다. “누나 힘들 때만 찾아서 미안해요.” 나를 대신하여, 정확한 언어로, 나의 마음을 전달해준 글쓴이에게 감사를 전하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그 언젠가 또 이곳에” 찾아올게요.

 

 

 

컬처리스트 명함.jpg

 

 

[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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