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표백된 세상에서 '나'로 살아남기 - 연극 '너 자신이 되라'

글 입력 2022.11.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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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창단 이래 꾸준히 프랑스 연극을 번역하고 무대에 올려온 프랑코포니의 신작 <너 자신이 되라>가 3일부터 알과핵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콤므 드 벨시즈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한 유명 락스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지원해 면접을 보러 온 젊은 남자와 이 부서의 부장인 중년의 여성이 펼치는 2인극이다.

 

 

 

“당신은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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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자소서(자기소개서)가 곧 ‘자소설’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있다. ‘자기소개서’라고 하지만 진짜 자기를 솔직하게 소개하면 안 되는 자기소개서의 암묵적인 규칙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자소설의 주인공은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살아온 것만 같은 ‘나’다. 살면서 겪었던 기쁨과 슬픔, 내 성격의 장단점까지. 지원하는 회사에 맞게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너 자신이 되라>는 이러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 락스 회사에서 진행되는 면접의 모습을 그린다. 정장 차림의 훤칠한 남자 지원자는 이 면접을 위해 만발의 준비를 해 왔다. 흠잡을 데 없이 반듯하고 능숙하게 면접에 응하는 모습에서 그가 들였을 노력이 보인다. 하지만 중년 여성 면접관은 남자에게 지원 동기나 업무 역량에 대한 질문 대신 뜻밖의 것을 묻는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누구세요?”


이름 석 자와 자기소개서에 쓰여 있는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면접관은 계속 같은 것을 묻는다. “누구세요?” 그 질문은 관객을 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기 PR’의 시대에 살면서도 우리는 누구냐는 질문 앞에서 매번 작아지곤 한다. 자기 PR 시대에 중요한 것은 '내가 진짜 누구인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로 보이는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를 드러내는 능력 못지않게 감추는 능력이 필요하다. 취업준비생들이 면접 스터디를 하고 자기소개서 첨삭을 받는 것은 그런 면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오히려 감추고 속이는 일을 배우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면접은 나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야 나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그러한 감추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닿는 길을 잃어버린 이들은 당신이 누구냐는 질문 앞에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회사의 면접관은 ‘뻔한 것’ 말고 진짜 자기 자신을 보여주기를 요구하고, 그때부터 면접자의 고난이 시작된다.

 

 

 

끝없이 표백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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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배경이 되는 벽면은 온통 하얀색이다. 벽면에는 회사에서 파는 락스가 진열되어 있다. 면접관은 락스가 더러운 것들을 남김없이 살균해주는 덕분에 우리의 삶이 더 ‘안전’해진다고 강조한다. 연극 초반부, 부장은 락스가 상품이 아니라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마이크를 들고 락스를 예찬하기도 한다. 락스가 가진 표백의 이미지는 앞서 말했던, 자기 자신의 어떤 부분을 회사의 기준에 맞게 지워야만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면접장의 상황과 겹친다.


락스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면접관 앞에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는 이미 ‘락스의 세계’에서 온 것처럼 보인다.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성형수술도 감행했다는 그는 사적인 질문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노래하라면 노래하고, 춤추라면 춤추는 그는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직원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그는 끝없이 표백되어 본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아볼 수가 없다.


더러운 것을 다 지운다면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까?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다 숨긴다면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될까? 얼룩 하나 없는 하얀 벽 앞에 서서, 마찬가지로 얼룩 하나 없는 대답을 하는 남자를 보며 질문하게 된다. 이러한 '표백'이 면접장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님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더럽고, 싫고, 쓸모없는 것을 표백한다면 더럽고 싫고 쓸모없는 것을 판별하는 기준은 누가 세우는 것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을 찾겠다는 불가능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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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되는 길은 험난하다. 시간이 갈수록 면접관의 질문은 무례해지고 요구사항은 버거워진다. 무반주에 노래를 부르고, 벌거벗고 춤을 춰 봐도 면접관에게서는 부족하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연극이 진행되며, 우리는 남자가 결국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자기 자신을 소모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표백은 이 면접장에서, 심지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서도 계속되는 것이다.


자기소개서에 없는 진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는 일. 그리고 지원한 회사에 맞는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바꾸고 숨기는 일은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 그 두 가지는 결국 같은 양상을 띤다. 두 가지 모두 이 극에서는 취업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기 자신을 알고자 애쓰는 것은 면접관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이 면접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걸 인지한 다음부터 ‘진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기상천외한 행동을 벌인다. 마지막까지 “이거 하면 취업 되는 거죠?”라고 물으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속해서 자신의 쓸모를 보여줘야 존재가 인정된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해야 인간 취급을 받는다. 이런 곳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오래된 격언인 ‘너 자신을 알라’조차 ‘네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을 타인에게 증명하라’와 같은 의미로 변질된다.

 

이 연극은 블랙코미디도 부조리극도 스릴러도 될 수 있지만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비극이다. 면접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남자가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은 이 극에서만큼은 고귀하지 않았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면접관이 ‘오케이’할 때까지 계속되는 일종의 고문이었다. 표백된 세상에서 나를 찾고 나로 살아남기는 너무 어려운 목표다. 취업이 차라리 쉬울 것이다. 남자의 마지막 모습이 관객을 거울처럼 비춘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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