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항복하는 것 [미술/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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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모토 아키(Aki Sasamoto)는 미국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현대행위예술가이다. 그의 작업은 주로 행위예술을 촬영한 비디오를 매개로 전시된다. 안무가로서 무대에서 실제의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그는, 활영본 속에서도 관객과 함께이다.
개인전《항복점(Yield Point)》(2017)
‘항복점’은 힘을 받는 물체가 더 이상 탄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영구적 변형이 시작되는 한계 지점을 의미한다. <영상: 항복점>은 2017년 뉴욕의 더 키친에서 열렸던 사사모토 아키의 동명의 개인전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탄력성의 항복점을 시험하기 위해 ‘탄력 상수’를 상정한다. 이 탄력 상수가 높을수록 물체는 높은 항복점을 가진다. 즉 탄력성이 높은 물체는 변형되더라도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될 수 있다. 그러나 탄력 상수가 낮으면 물체는 쉽게 부서지고, 끊어진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작은 충격으로도 그 모습을 영영 잃어버린다.
사사모토 아키의 <영상: 항복점>을 올해 부산 비엔날레에서 처음 접했다. 다른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어조였다. 비디오 속 그는 딱딱하고 어딘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갈수록 커지는 목소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당황스러움을 자아냈다. 왜 저렇게 화를 내나, 그의 감정을 나는 따라가지 못했었다. 관객의 호흡과 어긋나는 그의 감정선은 공감보다는 거부감이 들게 했다.
그러다 얼마 전 개인적인 경험을 계기로 그 비디오가 다시 생각났다.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어조가 거슬리지 않았다. 다만 반복되는 그 메시지가 귀에 들어왔다. 철제 쓰레기통 속에 설치된 트램펄린 위에서 사사모토 아키는 계속해서 말했다.
얼마 전에 친절한 어른을 자처하는 이가 내게 사회생활에 대해 알려주었다. 여기는 직장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며, 익히 아는 서로의 입장차이를 상기했다. 그리고 나는 학생처럼 혼이 났다. 그리고 그 순간 계약을 파기할 결심이 섰다. 인내심을 갖고 상황을 헤쳐나가다간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탄력성이란 그런 것이다. 높은 탄력성을 가진 물체는 외부의 충격을 오래, 상당한 정도로 견딜 수 있겠지만 본래의 형태에서 그만큼 멀어진다.
그렇지만 물체가 낮은 탄력성을 가지면 물체는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것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것도 그것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없을 것이다. 외부와 어떠한 소통도 되지 않는 단절, 그것은 또한 고립이고, 인간에게는 어떤 것에도 머무를 수 없는 ‘지루함’이다.
사사모토 아키는 항복점이 높으면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고, 항복점이 낮으면 지루해진다고 말했다. 작가는 현대인이 외부 환경과 맺는 상호적인 관계의 성격에 관심을 두고 그 답을 찾고자 했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좇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잊어버리거나, 그 어디도 향하지 못한 채 권태에 시달린다. 작가의 활동은 이 지점을 포착하고, 문제를 큰 소리로 지적한다. 일련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 항복점>, <탄성 테스트-강철, 장력 테스트-철/황동>은 올해 부산현대미술관 등지에서 개최된 2022부산비엔날레에도 전시, 상영되었다.
2022부산비엔날레가 11월 6일에 막을 내렸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물결 위 우리’라는 주제로 부산의 역사를 전 세계적으로 확장해 조망했다. 현대가 마주하는 상황이 다양한 시선으로 풀이되어 전시되었다. 관람하면서 즐거웠고, 벌써부터 다음이 기대되었다.
[홍가흔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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