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항복하는 것 [미술/전시]

2022부산비엔날레에 전시된 사사모토 아키의 <영상: 항복점>
글 입력 2022.11.0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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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모토 아키(Aki Sasamoto)는 미국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현대행위예술가이다. 그의 작업은 주로 행위예술을 촬영한 비디오를 매개로 전시된다. 안무가로서 무대에서 실제의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그는, 활영본 속에서도 관객과 함께이다.

 

 

 

개인전《항복점(Yield Point)》(2017)


 

‘항복점’은 힘을 받는 물체가 더 이상 탄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영구적 변형이 시작되는 한계 지점을 의미한다. <영상: 항복점>은 2017년 뉴욕의 더 키친에서 열렸던 사사모토 아키의 동명의 개인전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탄력성의 항복점을 시험하기 위해 ‘탄력 상수’를 상정한다. 이 탄력 상수가 높을수록 물체는 높은 항복점을 가진다. 즉 탄력성이 높은 물체는 변형되더라도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될 수 있다. 그러나 탄력 상수가 낮으면 물체는 쉽게 부서지고, 끊어진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작은 충격으로도 그 모습을 영영 잃어버린다.

 

사사모토 아키의 <영상: 항복점>을 올해 부산 비엔날레에서 처음 접했다. 다른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어조였다. 비디오 속 그는 딱딱하고 어딘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갈수록 커지는 목소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당황스러움을 자아냈다. 왜 저렇게 화를 내나, 그의 감정을 나는 따라가지 못했었다. 관객의 호흡과 어긋나는 그의 감정선은 공감보다는 거부감이 들게 했다.


그러다 얼마 전 개인적인 경험을 계기로 그 비디오가 다시 생각났다.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어조가 거슬리지 않았다. 다만 반복되는 그 메시지가 귀에 들어왔다. 철제 쓰레기통 속에 설치된 트램펄린 위에서 사사모토 아키는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은 얼마나 탄력적입니까?
(How elastic are you?)”

  

얼마 전에 친절한 어른을 자처하는 이가 내게 사회생활에 대해 알려주었다. 여기는 직장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며, 익히 아는 서로의 입장차이를 상기했다. 그리고 나는 학생처럼 혼이 났다. 그리고 그 순간 계약을 파기할 결심이 섰다. 인내심을 갖고 상황을 헤쳐나가다간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탄력성이란 그런 것이다. 높은 탄력성을 가진 물체는 외부의 충격을 오래, 상당한 정도로 견딜 수 있겠지만 본래의 형태에서 그만큼 멀어진다.

 

그렇지만 물체가 낮은 탄력성을 가지면 물체는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것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것도 그것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없을 것이다. 외부와 어떠한 소통도 되지 않는 단절, 그것은 또한 고립이고, 인간에게는 어떤 것에도 머무를 수 없는 ‘지루함’이다.

 

사사모토 아키는 항복점이 높으면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고, 항복점이 낮으면 지루해진다고 말했다. 작가는 현대인이 외부 환경과 맺는 상호적인 관계의 성격에 관심을 두고 그 답을 찾고자 했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좇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잊어버리거나, 그 어디도 향하지 못한 채 권태에 시달린다. 작가의 활동은 이 지점을 포착하고, 문제를 큰 소리로 지적한다. 일련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 항복점>, <탄성 테스트-강철, 장력 테스트-철/황동>은 올해 부산현대미술관 등지에서 개최된 2022부산비엔날레에도 전시, 상영되었다.

 

2022부산비엔날레가 11월 6일에 막을 내렸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물결 위 우리’라는 주제로 부산의 역사를 전 세계적으로 확장해 조망했다. 현대가 마주하는 상황이 다양한 시선으로 풀이되어 전시되었다. 관람하면서 즐거웠고, 벌써부터 다음이 기대되었다.

 

 

[홍가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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