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록과 우리 [문화 전반]

우리의 현재는, 우리의 사유는 어디로 가는가
글 입력 2022.10.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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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에 둘러싸여 성장한, 그래서 온라인상의 정보를 주고 받는 데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나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수첩을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스마트폰의 메모장이 더 익숙하고, 그보다는 카메라로 사진을 한 장 찍어두는 게 훨씬 편하다. 그렇게 찍은 일상의 순간을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하는 데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그런 문화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하는 나지만, 한편으로는 알맹이가 없는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어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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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을까. 지하철을 기다릴 때,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일은 인터넷 서핑이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구경하고,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도움이 될만한 글을 보면 스크린샷을 찍고, 링크를 저장한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정보들이 쌓이지만 그것들을 당장 보는 게 아니라, 언젠가 그것을 찾아 읽을 ‘미래의 나’에게 모든 걸 맡긴다. 결국은 다시 꺼내보지도 않을 정보들이 쌓여만 가서 나의 스마트폰은 매일같이 알림을 보낸다. “저장 공간이 부족하여 최근 iPhone 백업이 iCloud에 저장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실질적인 정보 뿐만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내가 즐겨쓰는 SNS는 인스타그램이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이유 역시 ‘기록’이다. 누군가와 만나 즐거운 순간은 무조건 사진으로 찍어 기록한다. 그러면 인스타그램은 1년에 한 번씩, ‘○년 전의 오늘’이라며 그날의 추억을 기계적으로 알려준다. 그 편리함을 통해 나는 과거를 추억하고, 반가워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소통창구로 쓰는 것도 맞다. 내가 사진을 올리면 반응하고 싶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과 다시 만나 인스타그램을 올리고, 태그하고, 기록한다. 그러면 그것은 다시 내년의 나에게 ‘1년 전의 오늘’로 남는다. 그 기능을 누구보다 열심히 사용하고 있지만,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남는 몇 천장의 무의미한 사진들과, 시스템이 알려주지 않는다면 내가 굳이 찾아보지 않을 그 추억들이, 과연 내게 어떤 의미로 디지털 공간을 채우는 ‘저장’일까 고민이 들게 되었다.


물론 사진으로 남는 것이 항상 안 좋은 것만은 당연히 아니었다. 언젠가 친구가 필름 카메라를 현상했다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지난 6월 초,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서울대공원에 놀러갔던 날의 사진이었다. 바쁘게 달려온 봄의 끝자락에, 부담이 되었던 모든 일정을 다 끝내고 처음으로 가졌던 휴식인지라 유난히 즐거웠던 날로 기억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고 놀랐던 것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신나고 즐거워보이는 나의 모습이었다. 동물원으로 가는 리프트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찍힌 사진이었는데, 허공에 발을 동동 구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신이 났었나? 하고 다시 기억을 되돌아볼 정도로 즐거워보였다. 사실 좋은 감정들 이외에도 그날 느꼈던 여러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다. 최근의 무더위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뙤약볕을 돌아다니며 힘이 들었던 것, 그날 모임에 참여하기 직전까지 몸살로 힘들었던지라 체력적으로 피곤했던 것 등이 모두 기억에 남는다.


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고려한 결과물로서 그 날을 ‘적당히 좋은 날’이라고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어린 생각일 수 있지만, 나는 언제나 좋은 것만을 남기고 부정적인 감정은 지워버리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순수한 즐거움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조금 미워지기도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까 저 사진이 오히려 더 소중해지더라. 내가 무심코 지나간 그 행복을 담아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과 영상은 앞뒤 맥락을 끊어내고 그 순간의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그 당시에 느꼈던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 자체만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안 좋은 감정은 잊어버리더라도 좋은 감정은 기억할 수 있으니까. 이래서 요즘 사람들이 좋은 순간을 한 장이라도 더 남기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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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사진과 영상이라는 기록 매체의 본질을 ‘저장’이라고 주장하였다. 시간은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든 상관 없이 필연적으로 흘러가고, 그 순간을 우리는 잡아두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것을 저장하고자 한다. 크리스 마키의 발언에서도 그 노력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이미지들은 이제 나의 기억이다. (중략) 촬영이나 녹음 없이 도대체 인류가 어떻게 기억을 해왔는지 의문이다.”


그렇다. 이제는 기억하고 싶은 것들 중에서도 보다 또렷하게 남기고 싶은 걸 특별하게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만을 기억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사진, 영상 기록물들을 남기는 이유는 ‘글’과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순간을 기록할 때 메모를 남기기보다 ‘촬영’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글을 쓸 때는 하나의 정보를, 혹은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다시 글로 표현하는 3단계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촬영이라는 행위는 이러한 사고 과정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저 버튼 하나를 누르면, 우리가 충분히 그것에 대한 이해를 시도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체력이 있을 때 꺼내볼 수 있는 ‘순간의 기록물’이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나중에, 미래에- 를 외치며 현재를 저장한다. 과거로 남을 현재를 기다리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과거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따라서 남은 기록물은 ‘주체 없는 문자(기록물)’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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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유의 부재’였던 것이다. 바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기 급급하여 모든 것을 미래로 미루어버린다. 왜냐하면 현재는 더 중요한 무언가에 대해서 행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것을 저장하고, 기록하고, 다 품으려 하는 과정에서 남는 것은 빈 껍데기 뿐이다. 우리는 사유를 통해 기록물의 주체를 찾아주어야 한다.

 

 

[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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