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부합시다! 국영수 말고요. [도서/문학]

최재천·안희경, 『최재천의 공부』 (김영사, 2022)
글 입력 2022.10.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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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지냈던 사람이고, 대화를 하고 있으면 그 됨됨이와 깊이에 자주 감탄하게 만들던 사람이었다. 저녁 무렵, 예전보다 조금 더 피곤해 보이는, 그러나 조금은 더 깊어진 얼굴을 한 지인을 마주했다. 나의 여행지였던 곳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는 지인의 끈끈한 삶이 실핏줄처럼 가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미세하게 그려졌다.

 

우리가 함께 보낸 기간보다 멀리 떨어져 지낸 시간이 훨씬 길었기에, 강렬한 반가움과 예상치 못한 어색함이 동시에 일어났다. 멀리서 가끔 안부를 주고받을 때와는 다른 오묘한 감정이 일렁였고, 그 감정의 파고는 식탁에 차려진 뜨끈한 국물의 온기와 함께 안정감으로 금세 모습을 바뀌었다. 국물 한 숟갈, 그리고 연거푸 다시 한 숟갈. 우리는 예전 그때, 거의 매일 기쁘고 깊었던 그때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요즘 어때. 뭐하고 살아.

 

가벼운 근황을 물으며 시작된 당연한 대화는 명확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나는 흔들리는 삶의 방향성, 충동과 두려움, 미래를 상상할 때의 설렘이나 막연한 공포감 따위의,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을 지인 앞에 줄줄이 늘어놨다. 내 앞에 앉은 이가 이런 나의 고민에 대해서, 비록 완전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충분한 문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내 투정을 끝까지 다 듣고 난 후 지인은 내 앞으로 슬며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공부해. 그럴 때일수록.


낯선 단어가 마음을 힘 있게 조여든다. 공부. 이제 와서 새삼 공부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 조언과 함께 받아든, 이토록 묵직하고 무서운 책 선물을, 두려운 마음으로 풀어본다.


생태학자 최재천과 저널리스트 안희경의 대담집, 『최재천의 공부』 (김영사, 2022)를 읽는다.

 

 


왜 공부인가


 

평생을 무언가에 매진한 사람이 그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말할 때, 그 말은 반드시 힘을 얻는다. 그 ‘무언가’가 노력과 시간에 비례하는 기억, 기록, 축적의 영역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강한 힘이 생겨날 테다. (슬프게도 우리는 그 힘의 방향이 엇나가는 경우 또한 자주 목도하지만.) 공부가 그렇다. 최재천 교수는 평생 공부와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며 살아온 사람. 그 역량은 ‘공부’, 그리고 ‘교육’이라는 체계에 서슴없는 조언을 하기에 충분하다.

 

 
평소에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자꾸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공부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교육의 내용이 사실을 분별할 수 있도록 채워져야 하고요. 진실을 말하는 전문가들의 말이 일반인에게 신뢰를 받아 통용될 수 있도록 사회의 갈등이 잦아들어야 합니다. (39쪽)
 


우리는 태생적으로 무지한 존재다. 나는 당신을 모르며, 하물며 나 자신조차도 정확히 모른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배운다. 공부의 원인이자 목표가 사실을 더 잘 알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만약 그 앎이 한층 깊어져 이해로 나아갈 수 있다면, 결과론적인 공부의 목적은 “사랑”이 되고 마는 것. 사랑의 다른 말은 가장 크고 깊은 이해이고, 이해의 동의어는 타인에 대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교육을 위하여


 

그렇다면 ‘사랑의 공부’ 혹은 ‘사랑을 위한 공부’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 근본적인 교육 시스템의 체질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이 길고 깊은 대담의 전언이다. 최재천 교수는 본인이 직접 체험했던 소중한 공부 경험과, 여러 인물 및 집단을 거치며 두루 겪었던 교육 시스템을 바탕으로 교육이 나아갈 길을 제언한다. 예컨대 이런 모습.

 

 
교과 내용이 정해져있지 않고, 교수나 학생이 관심 있는 주제와 내용으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관련 내용을 배우고 토론하고, 세계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새로운 개념의 대학이에요. (264쪽)
 


최재천 교수는 공부에 필요한 요소들, 이를테면 “관심”과 “토론”, “사람” 같은 키워드들로 완벽히 몰입해가도록 이끄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이 요소들은 ‘이해’와 ‘사랑’을 구성하는 중추이기도 하므로, 이런 교육 시스템 속에서 공부는 반드시 어떠한 사랑을 산출하게 될 테다. 사랑스러운 교육 속에서 자라난 사랑의 공부는 우리를 “안녕”하게 한다.

 

 
다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벌어져 겨우 서로의 안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늘 사회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교육하고 배워야겠다는 게 제 의지입니다. (23쪽)
 


대한민국 최고의 석학이자 존경 받는 교육자인 최재천 교수가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남긴 꾸중이 따뜻하다. 최재천 교수와 안희경 작가가 교육 문제에 대하여 깊이 나눈 대담을 엮은 이 책에는 교육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과 사회 전반에 대한 철학이 녹아있다. 최재천 교수 스스로 “엉뚱한 꿈”이라고 부르는, 교육의 미래에 대한 올바르고 즐거운 상상이 기꺼이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을 부른다.


책을 덮으며 지인이 말한 공부의 뜻을 이제야 안다. 우리가 평생을 통해 배워야 할 공부는 공부에 대한 공부이고, 삶과 사람에 대한 공부이고, 사랑에 대한 공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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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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