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폭염과 등목과 우리라는 단어 [사람]

내 생애 최고의 순간
글 입력 2022.10.1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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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밤거리를 걸었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움직이는 바지 밑단 때문에 발목이 시렸다. 그렇지만 시를 쓰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야 했다. 가끔 시끄러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지나갔다. 차분해지려는 나는 그 목소리를 귓속으로 들이지 않고 밀어냈다.

 

주위의 고요함이 짙어질수록 나는 차분해지면서 한편으로는 외로워졌다. 내 옆을 걷는 건 그림자뿐이었고, 전조등을 켠 차들은 나와 나란히 걸을 수 없었고, 나는 내 숨을 보고 싶어서 자꾸만 입김을 뱉었다. 시를 쓴다는 건 외로워지는 일이었다.

 

시 비슷한 걸 쓰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늘 혼자였다. 친구가 없었다거나 홀로 생활해왔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상에서의 나는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노는 사람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 그 기반이 되는 시적세계에 나 혼자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글을 쓰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으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쓸쓸한 감정들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술은 언제나 슬픔에 가닿을 수밖에 없고 시 쓰는 사람은 항상 고립되어있을 수밖에 없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런 감정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그 뒤로 창작에 몰두하면서 나는 웃는 얼굴에, 폭설이 쏟아지는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슬프고 외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시를 잊어버리고, 내면과 외면의 괴리를 잊을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운동을 하는 점심시간이 그런 순간들에 속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소문난 운동광들이었다. 전부 글을 쓰는 아이들이었으므로 나와 같은 감정을 안고 운동에 더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농구공을 들고 코트로 나갔다. 내가 지금부터 서술할 날도 그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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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은 모든 날들에 폭염특보가 걸려있었다. 폭염특보 시에 운동장은 사용이 금지되어서 나와 친구들은 일주일 간 강제로 교실에 앉아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8월 21일, 가랑비가 왔고 다음날, 폭염특보가 취소되었다.

 

약간 더웠지만 가랑비가 내린 후라서 그나마 몸을 움직일 만했던 날씨. 오랜만에 우리는 찌뿌듯한 몸을 이끌고 나가 농구를 했다. 땀에 젖은 몸으로 패스를 하고, 슛을 던지고, 욕을 하고, 장난으로 몇 대씩 때리기도 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냈다.

 

"운동을 하고 계신 학생분들께서는 교실로 들어가 수업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온 후에 골든골, 골망이 한번 출렁거렸을 때 우리는 여벌의 옷을 들고 우르르 화장실로 향했다. 3년, 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등목을 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서로의 눈을 몇 번씩 확인한 우리는 상의를 탈의하고 바닥에 한 명씩 엎드리기 시작했다.

 

1학년 때만 해도 선배들이 이걸 왜 하는지 궁금했는데 우리가 이걸 하고 있다니, 우리는 또 눈을 몇 번 맞추고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등목은 시원했다. 땀구멍이 한 번에 수축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수건은 두 개를 돌려써야 했다. 6명이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의 땀을 나눌 때 우리는 더 돈독해졌다.

 

상쾌해진 몸으로 교실에 들어갔을 때는 시원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먼저 들어온 친구는 벽에 걸린 선풍기머리를 고정시켜놓고 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 옆으로 다가섰다. 그 후로 한 친구가, 또 한 친구가. 결국 6명이 옹기종기 둘러서서 선풍기 바람을 쑀다. 나는 땀이 맺힌 이마를 식히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친구들을 봤다. 친구들도 나를 봤다.

 

이상하게 눈을 많이 마주치는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슬픔과 외로움을 잠시 밀어두었던 내 생이, 상쾌하고 시원해진 내 몸과 나른한 기분과 아름답고 유연한 우리들이 바람의 근원을 향해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서 있는 위치와 자세, 주변 아이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 우리만의 고요, 우리들을 모두 끌어안는 조그만 바람. 모든 게 아름다웠다. 내 마음에 가장 크고 명확한,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빛이 들이친 순간이었다.

 

지금도 자주 밤거리를 걷는다. 역시 시를 쓰기 위해서다. 차분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열리는 나의 시적세계. 농구를 하던 날의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자각하고 나서도 난 계속 외롭고 쓸쓸하다. 시를 써야하기 때문에, ‘높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 시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계속 고립되어야겠다.

 

하지만 가끔 그날의 선풍기바람이 떠오르면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마음 한쪽에 간직되어 있는 그날이 몸을 움틀 때 내 마음에 내리는 폭설이 그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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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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