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대 위 SF, 곡면 스크린으로 답을 찾다 - 뮤지컬 '디어 마이 라이카'

'지나치게’ 미니멀한 덕분에 오히려 더 ‘진짜’ 같아진.
글 입력 2022.10.0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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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_디어마이라이카_메인포스터(低).jpg

 

 

의외로 SF를 그린 ‘연극·뮤지컬’이 많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웅장한 세트와 초고난도 그래픽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SPACE. 무대 위의 또 다른 우주를 창조해낸 뮤지컬, <디어 마이 라이카>를 보고 왔습니다.

 


개인포스터_라이카_김지철(4절).jpg

 

 

아버지보다 200년 먼저 도착한 아들.

아들보다 200년 늦게 도착한 아버지.


우주에 부유하는 우리의 기억을 찾아.

 

 


소품 대신 거대한 곡선형 스크린


 

<디어 마이 라이카>에서 눈여겨 볼 건 단연 무대세트다.

 

자칫 ‘지나치게’ 미니멀하다고 느낄 수 있을 이 무대는 찬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외엔 아무 소품이 없다. 태초의 공연장을 보듯 까맣고 텅 빈 여백뿐이다. 이 간결한 무대는 배우를 더욱 부각시켜주지만 자칫 ‘비어’ 보인다는 허전함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무대미술에 대해 호평을 남기고 싶다. 최소한의 소품, 중극장의 규모로도 우주 세계(SPACE)를 꽤나 생생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무대 위쪽의 대형 스크린 덕분이다.


이 스크린은 무대의 가로 넓이와 비슷할 정도로 아주 크다. 곡선형 커브를 갖추고 있어 마치 영화관의 아이맥스나 돌비 시네마를 떠올리게 한다. LED로 만들어진 진짜 모니터인가 싶어 제작비를 걱정했는데 원목으로 만든 구조물이라고 한다. 나무에 달 표면 같은 그림을 그 위엔 준비된 VR 영상을 빔으로 쏘는 형태다.

 

다양한 미술소품을 포기하고 이 대형 스크린 하나만 설치했다는 건 과감하고 도전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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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형 스크린은 게임 모니터와 같은 효과를 준다고 생각하면 쉽다.

 

유저(관객)에게 시점샷을 제공한다. 전투기 조종석 같은 느낌, 우주복 헬멧을 쓰고 눈앞에 펼쳐진 우주를 ‘체험’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극장의 불이 꺼지고, 진공음만이 맴돌고, 새까만 블랙아웃만 남았을 때. 스크린에 비친 신비로운 은하계는 우주를 부유하는 것만 같은 이질적인 감각을 선사한다.

 

‘너무’ 미니멀한 덕분에 오히려 더 ‘진짜’ 같아진 세계. 이 스크린이야 말로 <디어 마이 라이카>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중심축이다.

 


개인포스터_벨카_장민수(4절).jpg

 

 

 

신파도 납득하게 되는 이질적인 시공간



중력의 시공간을 벗어난 듯한 미묘한 감각을 주는 무대. 이야기 또한 시공간을 탈피했다. 우주비행사인 아버지 ‘라이카’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실험에 자원해 우주로 날아갔고, 냉동인간 상태로 있다 막 깨어났다.

 

지구에 남아있던 어린 아들 ‘벨카’는 그 사이 장성해 아버지와 같은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둘 사이에는 200여년의 시차가 생겨 버렸다. 아들이 먼저 발자취를 남긴 행성에 아버지가 뒤늦게 도착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아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과거를 더듬는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만 찾아갈 수 없다. 이동시간만 200여년. 아무래도 다시 만나긴 불가능한 거리. 이 광활한 우주 어딘가 네가 있다는 걸 알지만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시공간의 간극. 아버지와 아들의 생이별을 그렸다는 점에서 자칫 신파로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이지만 우주 특유의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감정을 납득시킨다.

 

현실과 동떨어진 낯선 공간에선 일상과 동일한 수준의 감정치를 기대하진 않기 때문이다. ‘저 곳’이란 거리감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낯선 곳이라 부자의 절절함 또한 쉽게 이해하게 된다.

 

무대미술처럼 말을 줄인 간결한 대본 또한 이에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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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배우들의 연기와 넘버(음악) 모두 훌륭했다. 3명밖에 등장하지 않는 작은 규모이지만 극을 이끌어 가는데 있어 좋은 집중력과 실력을 보여줬다. 또 대극장 오케스트라만큼 웅장한 넘버에 감동받기도 했다.


현대무용가 이선태가 작업한 안무 또한 인상적이었다. 인물들이 비행을 떠나기 전 훈련하는 모습을 춤으로 만들었는데, 체력훈련과 현대무용이 섞여 절도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난이도 있는 안무를 수월하게 소화해낸 배우들의 노고가 느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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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SF’를 선택했을 때 필요한 건 자본이 아닌 ‘분위기’다. 어떻게 그 시공간을 감각시킬 것이냐, 그 무중력 상태의 이질감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에 <디어 마이 라이카>는 다른 소품을 과감히 없애고 대형 스크린을 이용한 영상과의 결합에 집중했다. 텅 빈 무대는 오히려 우주의 무한한 공허함을 연상시켰고, 관객 1인칭 시점의 영상을 통해 그 세계를 체험시켰다.


<디어 마이 라이카>는 SF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그 장르에서 요구하는 ‘생생함’은 비싸고 웅장한 세트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물론 더 수월하게 해주는 건 사실이다), 그보단 관객이 감각할 수 있는 어떠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

 

거대 자본을 그리지 않고도 우주를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SF 무대공연을 기대해본다.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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