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성의 몸으로 글을 쓴다는 건,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

글 입력 2022.10.02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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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여성의 몸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온 마음 다해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자유와 권리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간절한 바람이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남성에게 귀속되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부품처럼.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주인공에 오르지 못했던 시대에도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과거 여성들은 '집 안의 천사'가 될 것을 강요받았다. 당시의 미덕이라 함은 남성에게 기쁨을 주는 일. 남성의 영감이자 뮤즈로서,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로 존재해야만 했다.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거나 표현하는 것은 절대 금지. 사실 '금지'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그런 자각조차 어려운 시대였을 테니까. 자신에게도 자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펜을 드는 일 즉, 글을 쓰는 일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심지어 펜을 음경으로 비유하며, 여성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대상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글이란 모름지기 인간에게는 최고의 표현 수단이다. 혹여 여성이 펜을 들고 자신의 자아를 깨우칠까 두려워 만들어낸 헛된 비유가 아니었을까? 여성이 펜을 들고 글을 쓴다면, 그 이후 몰아닥칠 파급 효과가 두려웠을 것이다.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는 거센 물결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남성 작가에게 다른 남성 작가는 경쟁자에 불과하다.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이다. 여성 작가에게 다른 여성 작가는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든든한 본보기이자,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불안함을 자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주입받은 여성의 덕목을 깨고,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고 했던 발버둥은 생각보다 그리 큰 해방감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글은 하찮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여성 작가들의 글에 묻어나는 절망적인 감정은 감염성이 컸고 그 시대의 여성들은 비슷한 글을 썼다. 이런 사실에 괴로워하던 여성들은 차라리 남성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남성과 동등해지길 추구한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아예 남성으로 정의한 것이다.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으며, 여성 작가의 연대기가 이렇게 괴롭고 침울한 기억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물론 과거의 남녀 차별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으며, 여성의 사회 진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로서 여성이 겪어야만 했던 고뇌에 대해선 깊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여성 작가로서 글을 쓰는 행위가 불안을 야기했던 이유 중 자신에게 주어진 순종의 이미지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는 대목에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분명 자신의 운명에 투쟁했지만, 그 투쟁이 결코 자유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는 억누를 수 없는 욕구를 뱉어내면서도 죄책감을 느꼈을 그 심정을 나는 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글을 쓰게 만든 궁극적인 동력, 그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그들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인간이다. 이를 증명해 내겠노라는 열망이 그들의 불안보다 더 크게 달아올랐기에, 기꺼이 불안을 이겨내고 펜을 들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들의 투쟁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표현이 자유로울 때는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억압이 되는 순간, 불편함은 바로 시작된다.

 

우리는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첫 단계이다. 그리고 글은 나의 자아를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들은 이 글을 통해, 자신들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엄연한 구성원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를 무시하지 말라고, 우리의 존재를 반드시 기억하라는 상징적 행위가 글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글을 통해,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다.

 

글을 쓰고 또 쓰며 부품이 아닌 인간이라는 증명을 해나갔을 그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는 내내,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만일 내가 당시의 자가들을 만날 수 있다면, 당신들의 아우성이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었다 말해 주고 싶다. 그 뒤에 당신들의 글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영감과 울림을 주고 있다는 말을 덧붙일 것이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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