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6호선 합정역 김순남 씨에 대하여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9.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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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시를 사랑하지 않는다. 시를 읽을 줄 모른다고 하는 게 솔직하겠다. 어떤 시는 어렴풋하고, 어떤 시는 낯간지럽고, 어떤 시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하다. 내게 시는 극한 난이도의 언어영역 탐구 대상이다.


언어의 날을 세워 삶을 그려낸 시들이 있다. 그런 시들을 아득하게 읽다가 돌이킬 수 없는 흉터가 남도록 베이는 이가 있고, 그저 어설프게 훑다가 돌아서서 주저앉는 이가 있다. 대부분의 시 앞에서 나는 상처 받기에 실패한다.

 

시가 내게 남겨놓은 게 희미할 때 나는 주저앉는다. 내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때 시는 괴로워진다. 시 앞에서 나는 대체로 머뭇거리고, 읽는 괴로움마저 사랑하기엔 속 편히 애정할 것들이 너무 많기에, 시는 내게 사랑할 상대가 아니라 동경의 대상으로 남는다.

 

그러나 가끔 아주 우연히 마주친 시를 읽으며 나도 시를 조금 사랑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언어의 날이 충분히 닳고 뭉개져 편안한 시. 대체로 차분한데 왠지 조금은 슬픈, 우리네 삶과 비슷한 시. 이를테면 합정역 스크린도어에 걸린 김순남 씨에 대한 시, 혹은 등과 시선에 대한 시.

 

 

아파트 미화원 순남씨

샛길에 동그마니 박혀

풀을 뽑고 있다

보도블록 틈새로 고개 내민 잡초를

애저녁에 뿌리 뽑는 중이다

오랜 가뭄에도 살아나는 풀잎이

친정붙이처럼 반가운 나는

그냥 두지 뭐 하러 뽑나 구시렁거리는데

순남씨 앉은걸음 지나간 바닥

민들레 한 송이 온전히 남아 있다

차마 지워내지 못한 첫사랑

떫은 눈꺼풀처럼

그녀의 굽은 등 뒤에서

깜빡거리고 있다


- 최선희, 「김순남씨」(2020 시민공모작) 전문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봄의 어느 날, “나”는 “순남씨”를 보고 있다. 그녀가 지나온 “샛길”은 애써 살피지 않아도 좋다. “아파트 미화원”인 그녀가 다녀간 길은 분명 깨끗할 테다. “그녀의 굽은 등”이 그녀의 삶을 말해주고 있으므로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잘 관리된 아파트 화단이 아니라 화단의 작은 꽃처럼 “동그마니 박혀”있는 그녀를 따뜻하게 바라볼 뿐이다.

 

이제 나의 시선이 옮겨진다. 나는 “보도블록 틈새”에서 “잡초”를 발견한다. 나는 목마름을 견디고 자라난 잡초가 반갑지만, 미화원인 순남씨는 곧 지저분하게 길을 덮을지도 모를 그것들을 “애저녁에 뿌리 뽑”아야 한다. 가뭄을 견디고 자란 풀이 괜스레 안타까워진 나는 “구시렁거리”고 만다. 등-시선이 교환되며 따뜻했던 봄의 샛길에서 겨우 잡초를 사이에 두고 고용자(입주자)-피고용자(미화원)의 관계가 가물어 메마른 땅처럼 갈라진다. 다만 그들의 어긋남은 깊지 않아서 금세 회복될 수 있을 테다.


고용자의 군소리를 듣지 못한 순남씨는 여전히 등을 굽혀 “앉은걸음”으로 지나간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떠난 자리를 맴돌고, 순남씨가 지나간 자리에 남겨 놓은 “차마 지워내지 못한 첫사랑” 같은 “민들레 한 송이”를 발견한다. 나는 이제 가뭄을 견딘 것은 잡초만이 아니었음을 안다. 잡초를 안타까워한 나도, 기어코 꽃을 피워낸 민들레도, 그런 민들레를 남겨둔 순남씨도,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함께 가뭄을 견디고 있었음을 깨닫고 나는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저기 지나가는 순남씨를 부르지는 못한다. “떫은 눈꺼풀”을 “깜빡거리고 있”을 뿐이다. 듣지 못하고 떠나는 이의 등도, 부르지 못한 이의 시선도 모두 어여쁘다. 수줍은 민들레 같은 그 부끄러움마저도 아름답다.


그리고 3호선 약수역에서 우연히 만난 등과 시선에 대한 또 다른 시 한 편.



퇴근길 열차

옆 사람의 등에 숨이 막히다

맛있는 거 사 갈게, 통화 소리에

저 등도 누군가를 비추겠지 싶다     

앞선 이의 등 쫓다 고단해진 찰나

당신도 나를 그리 비추었겠지 싶다     

평생 내어주느라 움츠러든 당신의 등

한 번만 다시 안아봤으면 싶다


- 한소정, 「등」(2020 시민공모작) 전문



퇴근길 붐비는 지하철, 지친 하루를 보낸 “나”는 사람들 틈에 껴있다. 가까스로 거친 호흡을 이어가는 사이에도 열차는 종점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며 타고 내리는 사람들, 짜증 섞인 탄식과 한숨들, 그리고 그 아수라장에서 우연히 옆에 선 승객의 “통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땀이 밴 축축한 등만이 보였을 승객의 통화 속에서 나의 귀를 사로잡은 것은 “맛있는 거”가 아니라 “갈게”라는 단어였을 테다.


당신의 ‘간다’는 말은 상대의 ‘가라’는 반응과 만날 때 서러워지고, 상대의 ‘오라’는 응답과 만날 때 비로소 풍성해진다. “옆 승객”의 통화는 분명 오고-가는 대화였을 테다. “평생 내어주”어도 모자랄 사람, 언제고 나를 기다리는 이에게 가는 모든 승객들의 “고단해진” 뒷모습이 퇴근길 지하철 칸칸이 풍성하게 가득하다. 나는 일상을 한 폭의 풍경으로 만들어낸 이런 시를 읽을 때야말로 “숨이 막히”고 만다.


퇴근 시간. 늘 같은 지하철을 탄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등을 굽혀 잡초를 솎아내는 “순남씨”들과, 퇴근길 열차에 함께 끼인 고단한 등허리의 “옆 사람”들과, 그런 그들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몸과 눈빛으로 삶은 만들어지고, 그 삶은 우리를 기다리는 이들의 크고 작은 행복이 될 테다. 우리의 일상에서 등과 시선은 대체로 그렇게 교환된다. 시선이 시가 되는 사람들이 시인이다.

 

최선희 씨와 한소정 씨는 등을 따뜻함을 읽을 줄 아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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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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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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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yeon119
    • 에디터님의 시선도 못지않게 따뜻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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