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하는, 친애하는 당신에게 –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도서]

그럼 이만, 빈센트
글 입력 2022.09.2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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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괴팍한 성정과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방랑자적 기질로 인해 혼자 그림을 그리며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의 각 지역을 떠돌아다녔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였던 사촌의 남편에게 도움을 받거나 프랑스 파리 코르몽 화실과 동생이 일하는 화랑에서 예술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사람들과 원만한 교우관계를 만들고자 노력하며 정착하고자 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반 고흐는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데 서툴렀기 때문에 자주 문제가 생겼고 대부분의 경우에 새로운 곳으로 떠났다. 평생 자신이 살 곳을 찾아 헤매며 떠도는 삶을 살아간 것과 달리 그의 편지는 오래도록 남았다.

 

특히 동생 테오의 아내였던 요는 반 고흐의 편지를 소중히 여기며, 테오가 세상을 떠난 뒤 그 편지가 자신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고 한다.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_평면표지.jpg

 

 

이 책에는 반 고흐가 남프랑스 지방에서 지내는 동안 작성했던 편지들을 비롯하여 파리 근교의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보낸 70일간의 에필로그도 수록되어 있다.

 

그가 프로방스의 정경을 묘사하거나 자신의 생활, 작품에 영감을 주는 것들에 대해 작성한 편지는 파리나 네덜란드에 떨어져 사는 친구와 가족에게 부쳐졌는데, 편지의 수령인들에 관한 챕터를 따로 두어 자세히 확인해볼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화상으로 일하며 정기적으로 반 고흐의 생활비를 지원해주었던 테오에게 쓴 편지가 대부분이지만, 어머니, 여동생 빌, 동료 예술가 폴 고갱, 에밀 메르나르 등 가족과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도 존재한다. 특히 1889년 1월 21~22일경 반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자른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고갱에게 쓴 편지는 당시 반 고흐의 심리를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토록 많은 편지은 작가의 인간관계와 생활상,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반 고흐가 개인적인 용도의 편지에 작품을 설명한 글은 편지의 직접적인 수령인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프랑스 파리에서 빛나는 색채를 찾아 프로방스로 향한 그가 아를에 도착해 마주한 풍경부터 그림에 영감을 주는 소재들, 당시 작업 중인 그림에 대한 스케치와 생각 등 반 고흐의 수많은 편지는 관람자가 그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반 고흐가 당시 친애하는 동생과 벗들에게 편지를 작성했으나 그것이 시대를 넘어 현재의 관람자들에게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였다는 점에서 동시적 비동시성을 띤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반 고흐의 작품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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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복숭아나무>는 1888년에 그린 풍경화다. 그림의 제작 배경을 모르고 본다면 작가의 붓놀림과 화면의 구도, 복숭아나무의 색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실제로 모작하기 위해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분홍’이란 색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휘날리고 빛을 받아 일렁이는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그 자체로 강렬하지만, <분홍 복숭아나무>는 밝은 색조로 꽃잎들이 무수히 피어 있었기에 봄의 활기를 머금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1888년 3월 30일경 반 고흐가 누이 빌에게 쓴 편지를 읽고 나니, 작품의 따사로운 햇볕과 강조된 색채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편지에 따르면 <분홍 복숭아나무>는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안톤 마우베에게 바치는 그림이었다. 남편을 잃은 그의 사촌, 제트 마우베에게 남긴 복숭아나무는 잿빛의 대가였던 안톤 마우베가 칠할 수 없었던 남부의 다채로운 자연을 담은 것이다.


하늘색, 오렌지색, 분홍색, 주홍색 등 여러 색으로 가득 찬 팔레트와 화면에 들어찬 생기는 반 고흐의 표현처럼 “’온갖’ 색들을 강조함으로써, 다시 한번 고요와 조화에 도달하게” 된다. 화면 내 조형요소가 변화한 것도, 보이는 감각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이전과 달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더불어 이러한 현상을 바그너의 음악에 비유한 반 고흐의 박식함을 은근히 느낄 수 있었다.


위대한 걸작을 작가의 말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작가 스스로 작품에 대해 보다 내밀한 언어로 작성했기에 다른 어떤 이들의 분석과 평가보다 감상의 근거가 명확해지고 관람자는 그가 가진 장벽을 넘어 당시의 작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


그는 한 통의 편지에서도 자신이 표현하려는 대상의 분위기를 반영하고자 시도했던 여러 스타일을 언급했었다. 이처럼 회화의 근본 요소에 관한 그의 생각과 태도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편지를 읽으며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길 권한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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