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요한 투쟁의 시간, 지혜의 역사 - 책 '싸우는 식물' [도서]

식물이 전하는 인생의 가르침
글 입력 2022.09.2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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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는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승부에서 졌다는 것은 그대로 죽음을 의미한다.” - p.43

 

자연의 세계에는 용서와 포용이 없다.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는 인간세계와는 다르다. 식물은 삶의 목적을 선택할 여유가 없다. 적재적소에 자신을 방어할 무기를 만들어 두지 않으면 생존경쟁에서 지게 되고 그것은 멸종을 의미한다. 반면 우리는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식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빈번하고도 끊임없는 투쟁의 시간을 잘 모르고 산다.

 

식물이 싸워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평화롭게 살고 싶어도 세상이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가장 먼저 식물은 또 다른 식물과 싸워야 한다. 같은 땅에서 더 많은 햇빛을 받으며 뿌리를 내리고, 더 넓은 땅에 더 많은 자손을 번식해야 한다. 식물만 경쟁자라면 다행이겠지만 <싸우는 식물>은 총 6라운드로 식물이 투쟁하는 대상과 그 과정을 설명한다. 환경, 병원균, 곤충, 동물, 인간까지. 식물의 경쟁 이야기를 보면 인간 세상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 싸움이 인간세계와 닮았기도 하고 그 안에 삶의 지혜도 녹아있기 때문이다.

 

 

 

단독승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경쟁이 과열된 사회는 단독승리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를 다 꺾고 일어나야만 제대로 된 승리,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변의 모든 이를 제치게 되면 승리하더라도 많은 이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한 번은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지속가능성을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방법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된다면 그때 가서 과거를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양미역취의 사례는 그런 인간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북아메리카의 외래 잡초인 양미역취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뿌리를 통하여 독을 내뿜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양미역취 주변에 자라는 식물들은 모두 죽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양미역취만이 강한 번식력으로 땅을 독차지하게 된다. 더 많은 빛을 받으며 번식해야 하는 식물의 목적으로 봤을 때는 똑똑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

 

문제는 주변의 식물을 없애버리고 나니 자기 중독의 위기에 빠진다. 양미역취의 공격을 받을 식물은 자신밖에 없어 자멸하고 만다.

 

 

 

싸울 것인가 이용할 것인가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수록 강자가 된다. 그렇다면 약자는 모두 죽어야 하는가? 자연계에는 다양한 식물이 살아가고 있다. 약한 식물은 과감히 경쟁사회에서의 탈출을 꾀했다. 영국 생태학자 존 필립 그라임이 분류한 식물의 성공전략인 CSR 전략에는 식물 생존의 세가지 방식이 있다. CSR 전략의 C는 Competitive, 경쟁형을 뜻한다. 나머지 S와 R은 약한 식물이 공략한 전략이다. 경쟁 말고 살아가는 방식에는 무엇이 있을까.

 

S는 ‘Stress Tolerant Strategy’로 스트레스 내성형을 뜻한다. 말 그대로 성장이 불리한 스트레스 환경을 익숙하게 만들어 살아가는 전략이다. 애초에 강자가 들어오지 않을 환경에서 살아가기로 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S 전략을 택한 식물은 스트레스 환경을 견디는 힘을 기른다. 가장 알기 쉬운 예로 선인장이 있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 강한 햇빛을 받고 밤에는 추위를 견뎌야 하는 선인장의 강점은 가시에 있다. 사실 가시는 잎이다.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가느다란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가시는 외부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킬뿐더러 통통한 줄기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그래서 선인장은 줄기로 광합성을 하고 그곳에 물을 저장한다.

 

R은 Ruderal Strategy로 교란 내성형이라 불린다. 예측 불가한 환경 변화에서도 살아가는 전략이다. 그 예로 잡초가 있다. 잡초는 어떤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식물로 때로는 굳건하고 씩씩한 이미지로 상징되기도 하고, 때론 정원의 골칫덩이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러나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의 생존방식을 들여다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잡초의 전략을 “역경을 기회로 이용한다”라고 정리했다. 상황을 달리 보고 바꾸었다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이용’했다. 잡초는 사람들에 의해 쉽게 뽑히고, 잘리고, 밟힌다. 이것은 인간의 시점으로 보면 역경이자 어려움이다. ‘뽑힌다는 것은 죽는다는 의미 아닌가?’하겠지만, 놀라운 점은 잡초는 뽑히거나 밟힘으로 더욱 번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잡초는 땅속에 종자은행인 씨앗을 많이 준비해둔다. 그래서 뽑히는 순간 땅이 뒤집어지면서 씨앗이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다른 씨앗과는 달리 잡초의 씨앗은 빛을 받으면 싹을 틔우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잡초의 한 종류인 질경이의 씨앗은 사람들 발에 밟히며 이동한다. 신발 밑창에 붙지 않으면 씨앗을 번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고난 속에서 더 강해지는 법


  

식물의 성장에는 가시적인 성장과 비가시적인 성장이 있다. 땅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이다. 즉 뿌리가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참 위로가 됐다. 사람의 내면적 성장을 이야기할 때 뿌리에 자주 비교하곤 한다. 힘든 시기를 이겨낼수록 마음의 뿌리가 단단히 땅을 딛게 된다고.

 

“물이 풍부하면 식물의 뿌리는 의외로 성장하지 않는다.” - p. 55

 

그래서 수경식물은 뿌리가 잘 자라지 않는다. 물을 쉽게 흡수할 수 있기에 굳이 뿌리를 뻗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식물에게 가뭄은 물이 없는 척박한 스트레스 환경이지만 앞으로의 도약을 위한 성장의 시간이기도 하다.

 

“식물은 건조한 환경에서는 무리하게 가지와 잎을 뻗지 않고 깊이 뿌리를 내린다.”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싸우는 잡초는 뿌리를 내리는 방법이 다르다.”

 

그처럼 사람도 고난을 통해 더욱 성장한다. 가뭄을 견디는 식물의 모습은 힘든 시기에 내면을 채워나가는 사람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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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로도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식물의 모습에는 이유가 있다. 아무 이유 없이 그 모습이 되어 그 삶의 방식을 택한 식물은 없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쳤던 식물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의외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식물이 얼마나 효율성을 추구하는 생물인지, 우리가 개발하는 항산화 제품의 원료는 어쩌다 식물에서 발생한 건지, 사람은 카카오를 먹어도 되지만 왜 강아지와 고양이는 먹으면 독이 되는지, 왜 하나의 식물만 공략하는 곤충이 많은 건지, 호랑가시나무는 잎이 왜 뾰족한지, 볏잎과 갈대의 잎이 손이 베일 정도로 날카로운 이유가 무엇인지 등이다.


식물은 움직임이 없고 물리적인 힘을 가할 수 없어서 동물에 비해 약자라고 할 수 있다. 지금껏 인간이 손쉽게 자연환경을 입맛에 따라 개발하거나 훼손한 것처럼 말이다. 말 없고, 행동할 수 없는 식물이지만, 사실 동물은 식물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지구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생물이다. 플랑크톤의 탄생과 생장을 위한 광합성이 없었다면 DNA가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광합성을 통해 배출된 산소는 자외선과 만나 오존이라는 물질로 변화하였고 오존은 지구 상공으로 올라가 오존층을 형성되었다. 이로써 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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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식물이 싸우면서 터득한 삶의 기술은 놀랍도록 지혜로워 인간에게도 큰 가르침을 준다. ‘싸우는’ 식물이지만, 싸움의 의미는 매번 공격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방어하거나 은신하고, 불리한 환경을 유리한 환경으로 뒤바꿔버리는 방식 또한 싸움의 한 종류이다. 수많은 식물 종이 채택해온 진화과정에는 그들 최선의 방법이 녹아있다. 효율성과 지혜를 두루 갖추어 경이롭기까지 한 식물세계를 들여다보면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싸우는 식물>은 식물의 세계를 식물의 관점에서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냈다. 식물 세계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어본 탐험가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식물의 생생한 이야기를 번역가가 되어 우리에게 전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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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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