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저 몸 비비는 마음 [동물]

강아지들의 맹목적인 사랑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9.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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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상처를 부른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닦는다.

 

닦아도 닦아도 행주엔 커피가루가 계속 묻어나온다. 어느 정도 닦다가 불을 끄고 퇴근 준비를 한다. 나에게 화를 내던 사람이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컵에 가득 따라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게 삿대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


“뜨거운 음료를 컵에 가득 따르면 음료가 흐를 가능성이 커지고, 화상의 위험이 높아진다. 고객들의 부상을 방지하려는 의도에서 음료의 정량보다 큰 컵을 쓰고 있다”


설명을 해도 이미 얼굴이 붉어진 손님은 들을 기미가 없다. 나는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사람은 자주 사람 때문에 피곤하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는 기대감이 생겨난다. 이 사람은 이렇게 해주겠지, 저렇게는 안하겠지, 하는 기대가 자연스레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상황들을 맞닥뜨리다 보면 기대가 충족되는 순간은 드물다.


그런 순간에 사람들은 자주 짜증을 내거나 분노한다. 그것이 상대방을 상처받게 한다. 컵을 꽉 채워주지 않았다고 나에게 삿대질을 하던 사람처럼, 기대의 불충족과 분노는 아픈 마음을 만들어낸다.


관계에서의 상처는 기대로부터 비롯된다. 기대가 없으면 무엇을 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가 없는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기대를 하고, 상처를 받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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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몸 비비는 마음



퇴근한 나를 반겨주는 것은 우리집 마스코트 ‘쿠로’다.

 

내가 퇴근을 하면 쿠로는 신발을 물고 문 앞으로 달려나온다. 크고 검은 몸을 내 다리에 비빈다. 내 다리 사이로 몇 번을 지나갔다가, 내 냄새를 몸에 묻히고 싶어서 발치에 드러눕기도 한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쿠로를 한참 쓰다듬어준다.


강아지들의 맹목적이고 이유 없는 사랑을 좋아한다. 강아지들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보듬어준다.


내가 쿠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코 상처 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쿠로는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도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간식을 주지 않아도, 바빠서 산책을 조금밖에 못해도, 심지어는 내가 닫은 문에 발을 찧었을 때도, 쿠로는 금세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나에게 몸을 비빈다. 쿠로는 사람을 사람으로서 사랑할 줄 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내게 와서 몸 비비는 마음. 그 따뜻한 마음을 사람들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무너져도,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웃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혹은 바라는 것 없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관계에서 생겨나는 상처들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사랑의 농도가 조금 더 짙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쿠로의 마음에서 기대와 사랑에 대해 깨닫는다.


마냥 나를 좋아해주는 쿠로가 사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슬프다. 쿠로가 주는 사랑만큼 돌려주지 못하는 내가 스스로 부끄러워 질 때가 많다. 쿠로에게 더 크고 따뜻한 사랑을 줘야 하겠다.

 

우리 가족은 조금 더 화목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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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명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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