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짜 이상하고 아름다운 드라마, 구경이 [드라마/예능]

의심스러운데?
글 입력 2022.09.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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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상한 드라마다. 드라마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던 생각이다. 보기 드물게 12부작인 것도 그러했고 캐릭터부터 스토리와 연출, 무엇 하나 평범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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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한 신이 당신에게 묻는다. “근데 진심으로, 모든 생명이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답해야 하는데 사회면의 끔찍한 뉴스들은 본 당신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물쭈물 하는 사이 신은 한 발짝 더 다가온다. 천진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서. “대답 못 하네? 그럼 이제 다 없애도 되는 거네?” 

 

그 때, 우리의 주인공 구경이가 나타난다. 며칠 씻지 않은 떡진 머리를 하고서. 목 늘어난 티셔츠에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무슨 소리! 당연히 살아야지. 왜냐하면!!!”

 

구경이가 대답한다. 도덕책 같은 설교 대신 구경이만의 방식으로. 기꺼이 겪어낸 고통들 속에서 찾아낸 진실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가야 한다고.

 

이 드라마는 ‘왜냐하면!’ 뒤에 이어질 긴 이야기다. 근데 그전에 일단, 게임 한 판만 하고. 고고고!

 

 

드라마의 서사구조는 단순하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구경이는 강력팀 형사 출신의 의심병 환자이자 게임중독자이다. 남편이 사망한 후에 술과 게임에 빠져있던 구경이에게 경찰 후배였던 나제희가 찾아와 최신식 컴퓨터를 빌미로 보험 조사관 일을 제안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보험 조사를 하면서 구경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는데 이때 연쇄살인마 K가 등장하며 이를 잡기 위한 팀 구경이의 고군분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이 단순한 서사구조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것은 바로 드라마 기획의도이다.  드라마 기획의도에 서술되어 있듯이, 이 드라마는 모든 생명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연쇄살인마 K는 살인을 저지르는데 본인만의 이유가 있다. 우리가 보통 TV를 시청할 때 가끔 뉴스를 보며 ‘어휴 저런 놈은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K가 표적으로 삼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죽일만한 이유가 있는 나쁜 사람들.


또한 <구경이>는 정말로 서사 흐름상 필요한 이야기만 시청자들에게 해주었다. 나제희의 과거사와 이혼 사유, 산타가 말을 하지 않고 휴대폰 음성 인식으로 말하는 이유와 그의 과거를 드라마 끝날 때까지 공개하지 않았으며 구경이 남편의 사망 사유 역시 드라마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보통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과거사는 전부 풀리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이 부분도 이상하면서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위에 나열된 사유들이 굉장히 궁금하긴 했지만, 드라마 서사를 진행하고 K를 잡는 데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이긴 했기 때문이다. 다만 궁금하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구경이> 애청자들은 시즌 2를 외치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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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구경이> 中

 

 

이 드라마에서 좋은 의미로 가장 이상했던 점은 연출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연출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례로, 배우들이 회상 장면 위에 삽입되어 대사와 함께 회상 장면을 직접 설명하거나, 구경이가 통속에 갇혀 굴러떨어지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삽입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드라마 전체적으로 만화적인 연출을 많이 시도하여 시청자들 사이에서 신선한 연출이라는 평이 가장 많았다.


또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며 몇몇의 회차는 청소년 관람 불가로 방영됐기 때문에 혹시나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장면이 등장할까 봐 약간 긴장을 하고 시청했다. 그러나 <구경이>는 정말로 필요한 이야기와 그에 맞는 적절한 연출만 사용하는 드라마였다.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살인 장면은 드라마 진행에 필요 없는 연출이라고 제작자들도 판단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살인 사건이 가까이 클로즈업되거나 자세히 보여주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다.


한편 K가 살인 방법을 구상하는 방법도 특이했다. K는 연극배우를 하고 있으며 살인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항상 문학 작품에서 얻어 왔다. 살인을 하기 위한 방법의 아이디어를 살인자가 어디서 따온다는 식의 이야기는 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식의 접근은 굉장히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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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나는 하루에 드라마를 3편 이상 못 보는 사람이었는데 <구경이>는 어찌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던지 무려 3일 만에 12화를 모두 시청했다. 수상한 기획의도와 신선한 연출이 흥미로웠음은 물론이고 내가 아는 익숙한 배우들이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드라마에 등장하여 신선함을 더했다.

 

특히 그동안 엄마 역할로 자주 본 김해숙 배우의 용국장 역할로 등장한 것이 가장 신선했다. 이전에는 온화하고 편이 되어주는 엄마나 할머니로 등장해왔다면 <구경이>에서의 용국장은 차갑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역할로 등장했다. 특히 드라마 초반에 구경이와 용국장이 목욕탕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어떤 흉기가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섬뜩하여 가슴 졸이면서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한 마지막에 구경이가 K를 잡으며 “나쁜 놈들 내 손으로 죽인다는 생각 애저녁에 졸업했지”라는 대사를 던지는데, 이영애 배우가 이전에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금자 역할을 맡았던 것이 생각나며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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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면서 기획의도를 계속 되뇌면서 시청했는데, <구경이>는 드라마에서 그래서 왜 죽여도 싼 놈을 죽이면 안 되며 일단 살아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았다.

 

결말에 주인공들의 삶도 크게 달라져 있지는 않았다. 구경이는 여전히 의심병을 가지고 있고, 산타는 아직 입을 열지 않았다. 용국장은 자신의 악행이 모두 드러나며 폭발사고로 얼굴 반쪽까지 잃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제희에게 협상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K는 자신의 모든 범죄 행각이 발각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여전히 살인을 하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구경이>는 왜냐하면은 필요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냥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죽여도 싼 놈일지라도 죽이면 안 되며, 오늘 죽고 싶은 사람일지라도 죽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려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드라마 내내 나에게 던져주었다.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도 굉장히 특이하고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은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인류애적이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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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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