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살아가는 #의 세계 [사람]

아무리 플랫한 '나'라도 욕망은 있다
글 입력 2022.09.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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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은 임현 작가의 웹툰 <플랫다이어리>에서 착안했습니다.

 

 

바야흐로 욕망의 시대 한 가운데에 사는 듯하다. 그 흐름에 편승해야 한다는 듯 한동안 내 알고리즘은 ‘자기 성장’과 ‘자기 브랜딩’으로 일컬어지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과 정보를 쏟아냈다. 자신을 브랜드화 시켜서 원하는 삶의 모습을 향해 달려가고 점차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 가는 이들은 당연 귀감의 대상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소한 것들을 꾸준히 기록하고 공유하고 발전시키며 흔히 말하는 성공의 반열에 오르는 이들을 보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 ‘지금’보다 한 끗을 더 바라보고 나아가게 만드는 ‘#’의 세계에 입장하는 문을 두드린 것이다.


하지만 명료한 생각일지라도 실제의 행동으로 발현되기 위해선 곱절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 노력을 시작도 하기 전에 성공한 이들이 강조하는 수백 가지의 조언 위를 표류하게 됐다. 누구는 이러라고 누구는 저러라고 그럼 난 어쩌라고. 그럼에도 숱한 조언 속에서 어렴풋이 발견한 공통적인 성공의 방정식이 있다.


‘사소하더라도 나만의 특징을 찾아라, 이를 기록하고 공유하고 발전시켜라, 그렇게 다양한 자본을 쌓아라, 이를 불려라, 이런 열망의 불꽃을 활활 태워라, 고유한 당신이 되어라.’ 당연한 듯 보이고 딱히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공식이다. 그러나 이내 그 뒤에 생략된 수식이 하나 더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런 당신은 합격이다’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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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주장’을 비꼬면 이렇게도 들을 수 있다. 내가 성공하고 대부분이 성공한 자명한 공식이 있고, 이를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하는데 왜 따르지 않느냐. 만약 성공하지 못했다면 따르지 않은 게으른 당신의 문제다, 탓할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당신의 불합격은 당연하다.


그들의 성공 방정식엔 무한한 미지수를 대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방식과 결과가 한편으론 특정하게 구조화 되어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SNS를 통한 자기 PR이다. 나는 SNS에 전시되고 그 속에서 연결되는 것에 두려움과 피로감을 느낀다. 당연히 SNS가 있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피로를 견딜 수 있는 컨디션이 돌아오는 주기가 굉장히 길다.

 

또 가능하면 소망의 크기를 늘리지 않고 작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항상 성장해야 한다는 것에 불안과 피로를 느낀다. 이는 스스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넓혀야만 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고, 이 정도만 나열해도 나는 성공 방정식에 대입될 수 없는 불합격이 예견된 존재다.

  

이런 ‘나’이다 보니 스스로 어필하지 못하고 스스로 판매하지 못하면 낙오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조금 무서워졌다. 동시에 의심했다. 사실 나는 인생을 편하게 살고 싶어 애써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외면하는 걸까?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것을 놓치고, 조금만 신경 쓰면 이룰 수 있는 것을 바보같이 쟁취하지 않는 사람일까? 그저 회피하는 사람일까? 남들의 노력을 경시하고 사회를 핀잔만 하는 파렴치일까?


이제 어떤 것이 나의 욕망이고 또 어떤 것이 저들의 욕망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아무리 덜 욕망하는 나에게도 욕망이란 것이 있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현명한 성공에는 발끝도 다가가지 못하는 양이다. 그런 나의 욕망은 바보 같아 보였다. 어떻게든 감추거나 완전히 변신시켜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너무 많은 자극에 길을 헤매면서 내면의 욕망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기껏 발견한 작은 알맹이를 부정하기 바쁘고 당당히 꺼내 보일 용기조차 상실해버렸다. 무얼 더 욕망해야 할지보다 무얼 덜 욕망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반 박자 느리게, 반 박자 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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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 마음을 먹고 얼마 안 가 사주를 보러 갔다. 인생 처음으로 해보는 사주풀이였다. 사주 역시 타인이 내 인생을 정의하고 이야기한다는 점은 같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삶이 적합한지를 말해준다는 점은 분명한 차이인 듯했다.


사주풀이는 마음속에 갇혀 있던 내 욕망이 의심 없이 분출된 순간이었다. 새삼 깨달았다. 나는 욕망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 정도와 종류가 다를 뿐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가볍게 언질을 주는 것조차 부끄러웠던 나의 바람들이 내 속에서 내 입으로 나와 내 언어로 나열되었다. 나의 욕망을 의심 없이 나의 것으로 긍정했다는 경험이 새로웠다. 사주가 믿을만한 것인지는 논외로, 감춰져 있던 나의 욕망은 ‘나의 사주’에 가깝고 적합하기도 했다.

 

마치 일종의 테라피를 하고 나온 듯이 후련한 한숨을 내뱉고 은은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 인생이 예상보다 잘 풀릴 것이라는 달콤한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내가 나의 욕망을 긍정하고 키워보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 신기하고 기특했기에 무방비하게 흘러나온 자기 위로의 손짓에 가까웠을 것이다.

 

어찌 됐든 ‘이 시대의 보편적인 성공 방정식’에서 모두가 따라야 할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인 ‘나만의 특징 찾기’다. 특징을 성공 가능성을 향해 발현시키고 다듬는 시대의 주류적인 방식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지레 도망치기엔 삶의 초석을 마련하는 너무나 중요한 단계다. 그러니 먼저 나만의 사소한 것들을 나의 입으로 나열해보면 어떨까. 적어도 내가 그것을 의심 없이 바라보는 순간을 경험해보면 어떨까.

 

그것은 아무리 ‘플랫’한 나라도 할 수 있는 작지만 강렬한 욕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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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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