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신년 목표 불시 점검

담대한 시작과 어설픈 마무리
글 입력 2022.09.1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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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목표 불시 점검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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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신년 목표 얘기가 나왔다. 둘이 매년 연초, 혹은 1월 1일에 만나서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늘 비슷한 목표를 적는다. 독서, 어학 공부, 운동 등의 뻔한 것들.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고, 몇 번의 실패를 거치고 하향 조정도 했었다. 그런데도 늘 새해만 되면 도전적인 마음으로 적어나가는 신년의 목표.


그렇지만 8개월하고도 보름 전에 적은 내 목록은 너무나도 아득한 과거의 일이 되었고 내가 무엇을 적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2022년 올해의 할 일

 

■여행 2번 가기

□강의/원데이 클래스 듣기

□독서 10권 이상

□분기별 인바디 측정

△두 달에 한 번 요리하기

△달러구트 읽고 친구 빌려주기

△매일이 아니더라도 일기 쓰기

△러시아어 공부(가볍게)


 

365일 중 하루는 내가 원데이 클래스를 듣지 않겠냐며 신년의 내가 호기롭게 목록 상단에 올렸다. 그리고 올해가 100일 남짓 남은 지금, 당연히 아직 아무것도 안 했으며 막연한 예정도 있다. 10월의 내가 뭔가를 하겠거니 하는 추측만이 우세하다.


6분의 독서가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하루에 6분이면 대략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매일 6분만 투자하면 1년에 책 10권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티끌 모아 태산이 가능한데 나는 그 6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배회하며 '뭘 볼까?'하는 데 쓴다.

 

올해 책을 거의 안 읽었다는 뜻이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지만 스트레스 받아가며 급하게 읽느니 내년에 구체적으로 새로운 다짐을 할 생각이 앞서고 있다. 주5회, 하루 6분 독서는 허들이 낮은데 1년에 최소 10권 읽기는 왠지 부담스러우니까.

 

읽지 않을 책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뭐 하나 들고나오고 매년 북클럽에 가입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기웃거린다. 읽지 않더라도 일단 사둔다. 지적 허영과 호더 기질의 협업. 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부지런해지거나 지적 허영을 해결하든가 호더 기질을 개선해야 하는데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렇다고 달성할 수 없는 무리한 목표도 아니라서 조정하기엔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이거 하나 못할까봐? 싶은데 매년 못하고 있다.

 

*

 

과거와 달라진 신체에 약간의 충격과 경각심을 가지고 체지방을 줄여보겠다고 야심 차게 다짐하였으나 이젠 인바디 기계 위에 올라갈 자신은 사라지고 인바디보다 눈바디가 정확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맹신하려고 한다.

 

몸에 변화가 생기면 모를 수가 없는 상태라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면 연말에 반성문을 작성해야할지도 모르기에 이쯤 되면 목표를 달성하는 게 아니라 목표를 적었을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나를 돌아봐야 하는 게 맞다.

 

라운드 숄더는 현대인의 필수품, 일자목과 거북목은 직장인의 필수품. 현대 사회 직장인으로 라운드 숄더와 일자목 그리고 잘못된 자세와 근육 사용으로 마른비만의 길을 걷고 있다. 골반과 척추의 불균형은 원죄처럼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딴짓할 때 모니터 하단에 작게 창을 켜고 들여다봤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창을 모니터 상단에 띄운다. 미묘하게 곧은 자세로 바른 생활을 노려본다.


신년 목표에 적은 요리를 파스타 면을 삶고 마늘과 양파를 볶다가 소스를 붓고 향신료를 뿌려서 마무리하는 걸로 대체하려니 애써 욱여넣는 느낌이다. 달러구트를 읽기는 했으나 친구에게 빌려주기는커녕 달러구트를 도서관 대출이 아닌 구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일기를 손수 쓰고자 했으나 빠르게 스러졌다. 대신 난데없이 성실하게 블로그 포스팅을 올리는 중이니 형태와 빈도를 바꿔서라도 취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듀오링고는 나에게 너무 오래 못 본 거 아니냐며 공부하러 오라고 유혹했다.


목표 수립은 그렇게나 담대했는데 마무리는 이토록 어설플 수가 없다. 어설픈 시작으로 담대한 마무리를 지을 수 없으니 틀린 건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조금 진화한 작심삼일을 그럴듯하게 꾸며낸 기분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얼마 전에 좋아했던 뮤지션의 십여 년 전 인터뷰를 다시 읽을 일이 있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할 당시에 주말이 되면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고 한다.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마다 '사람은 이렇게 살면 안 돼'하면서 그런 다짐을 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물론 나의 퇴사가 코로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시기였다는 상황을 참작해야 하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나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못했다. 그걸 반성하려고 한다. 계기가 생겨야만 다짐하는 습관을 버리고, 다짐을 일상에 녹이려는 시도라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올해의 달성 실패는 내년의 계획수립을 위한 사유서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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