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기울어진 미술관

글 입력 2022.09.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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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그림 속 권력 이야기 -
 

 

기울어진 미술관_표1(귀도리).jpg


 

그림이 빚어지기까지 묵인돼왔던 희생들,

불평등이 아름다움으로 박제된 순간






<책 소개>
 
 
명작을 그려낸 화가인가,
시대와 권력자가 띄운 '선량한' 차별주의자인가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등 그림을 매개로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해왔던 이유리 작가의 신간 [기울어진 미술관]이 출간됐다. 바로 이전 작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에서 남성 화가의 작품에 가려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번 책에서는 예술작품 속 여러 권력관계와 그에 숨겨진 '마이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로부터 예술이 돈과 권력을 떠나 독립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화가들은 자신을 후원해주는 권력자와 그림을 구입해주는 재력가들의 입맛에 맞게 그림을 그려야 예술가로서의 생을 유지할 수 있었다. 레오 10세의 후원을 받아 그린 라파엘로의 [샤를마뉴 대관식], 스크로베니 가문의 후원을 받아 그린 조토의 [최후의 심판], 구소련의 선전 화가였던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의 [연설대 위의 레닌] 등의 작품이 그러했다.
 
또한 그림은 자신을 잉태한 시대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당시를 틀어쥐던 권력자를 고발하기도 한다. 마네는 [올랭피아]라는 작품에서 성매매 여성인 올랭피아를 그림으로써 당시 부르주아 남성들의 위선적인 성 윤리를 고발했지만, 백인 올랭피아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흑인 하녀를 배치함으로써 인종차별적 시선을 드러냈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물랭루즈 살롱의 여성들을 즐겨 그리며 [물랭가의 살롱에서]와 같은 명작을 남겼지만, 이는 '편견 없는 그림'이 아니라, 성매매 장부의 특급 고객으로서 포주를 '사업가'로 정당화한 것의 결과물이었다.
 
그 밖에도 작가는 '가련함을 활용당한 눈먼 소녀' '부자들의 면죄부용 소품이었던 장애 소년' '전시당하다 죽은 코뿔소' '성소수자 예술가 릴리 엘베' 등 총 24개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마이너들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며 예술작품이 그려졌던 당대의 문화적 편협함과 무지를 고발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에서는 화가의 그림 속 흑인, 장애인, 병든 사람, 성소수자 등을 조명한다. 흔히 미술계에서 흑인은 백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 쓰였다. 이는 마네의 [올랭피아]와 루벤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화가 바스키아는 이런 미술계에서의 흑인의 '쓰임'에 대해 비판하고 흑인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고자 [올랭피아의 하녀]를 그렸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와 뭉크의 [병든 아이]를 통해서는 우리 사회가 아픈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준다. 지금까지 병든 사람은 '죄를 지어 벌을 받는 것' 혹은 '지극히 개인적인 불행'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작가는 질병이란 불평등한 사회구조·문화·빈곤 문제 등이 스며있으며, 아픈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을 꼬집는다.
 
이 밖에도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가니메데스의 납치]라는 그림을 통해 미켈란젤로가 청년 톰마소를 사랑했지만 자신을 이성애자로 '커버링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반대로 게르다 베게너의 [하트의 여왕] 속 트랜스젠더 릴리 엘베의 삶을 통해 '정상성'이란 무엇이며, 커버 따위 없어야 할 세상에 관해 되묻는다.
 
2부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여성혐오적 시선과 차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철학자 플라톤에 따르면 자궁은 "짐승 안의 짐승"이었다. 얀 스테인의 그림 [의사의 왕진]을 살펴보면 '자궁 혐오'에 대한 오랜 역사를 알 수 있다. 아직까지도 여성은 '월경을 하면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해 히스테릭해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위치시키기 위해 자궁을 혐오해왔던 역사가 이어져오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사회는 여성에게 바람직한 어머니상'을 강요하기도 한다. 세간티니는 [욕망의 징벌]을 통해 '성모 마리아'와 같지 않은 '부도덕하고 나쁜 어머니들'에게 벌을 내렸다. 그와 반대로 휘슬러는 [회색과 검정의 조화]에서 평생을 헌신했던 어머니를 매정하고 차갑게 그렸다. 작가는 모성이란 지나쳐도 모자라도 안 된다는 '이상한 모성 신화'의 강요가 여성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애나 블런던의 [단 한 시간만이라도]와 피터르 얀선스 엘링가의 [네덜란드 집의 내부]에서는 사회 안팎으로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노동 현실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 그림들을 통해 '여성은 최후의 식민지다'라는 말에서 벗어나 여성의 사회적 노동과 가사노동에 정당한 지불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3부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에서는 어린이 혐오, 노인 혐오, 전염병에서 비롯된 혐오, 재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사람들에 관해 살펴본다.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어수룩할 정도의 순진함을 기대하고, '어린이다움'을 강요한다. 어린이는 당연히 '어른의 소유물'로 생각했다. 이는 윌리엄 호가스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부유한 집안의 어린이들은 어른처럼 코르셋을 입거나 꽉 조이는 정장을 입어 소화 장애에 시달려야 했다. 반대로 가난한 집안의 어린이들은 값싼 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인간이 덜 된 인간'으로 생각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으로 유명한 [피에타] 상에는 노화를 죄악으로 생각함이 나타난다. 그는 죽은 예수를 고요하게 끌어앉은 성모 마리아 상 [피에타]로 예술계에서 큰 찬사를 받았지만 "여인이 늙은 것은 죄악이 있기 때문"에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소녀로 조각했다. 그러나 반대로 옥준의 [농암 이현보의 초상]에서는 이현보의 얼굴에 드리워진 주름과 검버섯을 그대로 그렸다. 이는 노인이 되어야만 갖출 수 있는 미덕과 학식, 인품과 지혜 등을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4부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에서는 예술권력에 저항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동물권·환경 문제·투기 등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권력자들은 언제나 그림의 힘을 활용해 자신들의 통치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이는 미국 CIA의 선전 도구로 활용된 잭슨 폴록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가을의 리듬]이라는 아름다운 추상표현주의 작품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의 자유로운 화법은 CIA의 계획에 의해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
 
이와는 정반대로 현실의 부조리함을 꼬집은 화가들도 있었다. 매리 커샛이 그 예이다. 커샛은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를 거스르고 비혼을 선택하며 스스로의 주체적인 삶을 선택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그림 [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피에트로 롱기의 [베네치아에서 열린 코뿔소 전시회]라는 그림에서는 오랫동안 인간들의 '구경거리'였던 동물들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에게 끌려다니며 전시되다 죽은 코뿔소 클라라와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 비판적 시각을 자아낸다.
 
환경오염에 대한 현실을 화폭에 그대로 담은 인물도 있었다. 마네의 [아르장퇴유]가 그 예이다. 그는 센 강에 뜬 보트를 배경으로 한가로운 파리지앵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아르장퇴유의 염색 공장에서 배출된 폐수로 인해 강물이 쪽빛으로 변한 것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사라진 이들을 복원하려는 작가의 노력은 이 책 전반에 드러난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아름다움이 진실이 아님을 알았을 때, 독자들에게도 '낯설게 보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그동안의 예술 세계가 남성중심적ㆍ권력적 시선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 아무런 거름망 없이 자연스럽게 흡수해왔던 것들에 독자들이 의문을 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집필했다.
 
옳고 그름에 관해서도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누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참모습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그 안에서도 회색지대가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일례로 마네는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사회를 고발하기 위해 [올랭피아]를 그렸지만 흑인 인권을 생각하지 못했다. 존 에버렛 밀레이는 [눈먼 소녀]를 통해 애처롭고 아름다운 장애인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우리가 장애인에게 '바라는' 시선에 대해 생각지 못했다.
 
작가는 힘없는 자들이 역경을 딛고 무언가를 해내는 것에 감동을 얻는 시선이 과연 이들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선인지를 되묻는다. 그리고 그림이 빚어지기까지의 묵인돼왔던 희생들과 불평등이 아름다움으로 박제된 순간을 끊임없이 포착하며 그림 속 존재들을 해방에 이르도록 끄집어낸다. 나아가 자본 권력에 저항하는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 이 책이 작은 힘이 되기를, 이 기울어진 판도가 뒤집히기를 소망한다.
 




기울어진 미술관
- 그림 속 권력 이야기 -
 
 
지은이: 이유리
 
출판사: 한겨레출판
 
분야
교양 인문학
 
규격
130*195mm
 
쪽 수: 280쪽
 
발행일
2022년 08월 29일
 
정가: 16,800원
 
ISBN
979-11-6040-890-4 (03600)



 
 
이유리
 
어릴 적부터 미술 교과서나 신문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오려내어 스크랩하던 아이였다. 어학연수를 위해 갔던 영국에서 영어 공부 대신 런던에 있는 갤러리를 훑고 다녔고, 머릿속에 미술지식만 꾹꾹 담고서 돌아왔다. 신문사 사회부 경찰출입기자가 되었지만 미술 전문잡지를 보고 있는 걸 선배에게 들켜 "문화부 가고 싶은 거니?"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결국 운명처럼, 미술 분야의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마티스가 그랬던가. "그림은 책꽂이에 있는 책과 같다"고. 책이 책장에 꽂혀 있을 땐, 고작 몇 단어의 제목만 보일 뿐이다. 그림이 품고 있는 풍부한 세계를 알리기 위해, 앞으로도 책꽂이에서 그림을 꺼내어 독자들에게 직접 펼쳐 주는 '친절한 손'으로 살고 싶다.
 
지은 책으로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빛나는 아이: 천재적인 젊은 예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가 있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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