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프티 피플 [도서]

글 입력 2022.09.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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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세랑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책, 드라마, 영화에 관심 없는 이에게 물어봐도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디에서 들어본 이름이야!’라는 대답을 듣기에 충분한 작가이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보건교사 안은영>을 통해 그녀를 알게 된 사람들도 많지만 이미 애독자들 사이에서 그녀의 작품들은 유명했고, 성공적인 ott 데뷔를 이어받아 영화로 제작되는 작품 또한 생겨났다.

 

그녀의 대표작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보자면 <보건교사 안은영>,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옥상에서 만나요>, <시선으로부터>, <재인, 재욱, 재훈>,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등... 그녀는 모든 작품들이 다 대표작이 되는 타고난 작가이다.

 

하지만 이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 선물을 안 하는 내가 유일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선물이라 할지라도 취향이 분명한 영역은 잘 건들지 않는 편이다), 정세랑 작가의 작품은 <피프티 피플>이다.

 

 

 

5n명의 사람들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낮고 넓은 테이블에, 조각 수가 많은 퍼즐을 쏟아두고 오래오래 맞추고 싶습니다. 가을도 겨울도 그러기에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맞추다보면 거의 백색에 가까운 하늘색 조각들만 끝에 남을 때가 잦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들어 있거나, 물체의 명확한 윤곽선이 보이거나, 강렬한 색이 있는 조각은 제자리를 찾기 쉬운데 희미한 하늘색 조각들은 어렵습니다.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

 

- 작가의 말 中

 

 

각자의 소중한 이름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들로 구성된 <피프티 피플>은 총 51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장을 가지진 않지만 등장하는 인물들까지 더한다면, 사실상 5n명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많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만큼 정말 다양한 나이와 성별, 직업, 처한 상황 등을 때론 담담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풀어내는 책이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흥미롭게 읽히는 마법을 경험한 나는 “이래서 정세랑, 정세랑 하는구나!”라는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유일한 책이니만큼 선물하는 이유 또한 명확하다.

 

1. 지금까지 내 주변 사람들 중 <피프티 피플>을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매일같이 책을 읽는 친구들도 정세랑 작가님의 그 많은 책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2017년 <피프티 피플>로 정세랑 작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동시에 사랑하게 된 나는 꾸준히 이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며 알리고 있다.

 

2. 책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은 여러 방식으로 마음을 울린다. 하지만 책을 덮었을 때 내 마음에 깊이 남은 주인공은 김혁현과 하계범, 바로 이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수다쟁이인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주인공을 마음 깊이 간직하는지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숙제를 내주고 있다. <피프티 피플>의 주인공들 중 가장 좋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지금까지 내준 숙제들의 결과물은 100% 만족스러운 수다로 이어졌다.

 

 

 

바로 옆자리의 퍼즐처럼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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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의 진정한 이야기의 시작은 마지막 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편소설 모음집인 줄로만 알았던 소설이 장편소설이었다는 깨달음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책을 읽어가는 중간중간에 여러 인물들이 연결되는 장면들은 있었다. 하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세상 참 좁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들을 종종 마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8층짜리 건물 속 극장에서, 비상구에서, 옥상에서, 그리고 땅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수롭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 있을법한 51명의 이야기가 마지막 순간에 더 밀접하게 현실과 맞닿아 바로 내 주변의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나타난 사람들이 앞으로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작품 속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은 옥상에 있던 200여 명의 사람들 중 일부였을 뿐이다. 현실에선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매년 놀라울 정도로 반복되는 뉴스들이다.

 

하지만 고인도 유가족도 없는, 더 큰 재난으로 번지지 않은,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세상이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잡아매는 것은 무심히 스치는 사람들을 잇는 느슨하고 투명한 망(網)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세랑 작가는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를 쿵 치고 지나간다. 쿵 치인 나는 제자리에 멈춰 호흡을 고르며 다음엔 무엇이 올지 긴장하고 있지만, 쿵 쳤으니 나는 간다~ 하며 유유히 사라져 혼자 남은 내 모습을 바라보게 만들 뿐이다.

 

나를 쿵 쳤던 이야기는 지나갔지만 치인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빈 땅을 보고도 그날밤을 기억하듯 끝나버린 페이지를 보며 지난날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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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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