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창작글은 자유를 안겨준다.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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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eative adult is the child who survived. - Ursula.K.Le Guin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이 사실을 깨닫는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달은 지 채 5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참 나의 아이같은 심지어 때에 따라 바보같고 유치한 멘탈을 보여준다.
내가 성장통이 그토록 극심했던 가장 큰 이유는, 소설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았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중앙 내러티브를 벗어나는 일들이 많이 없다. 특히, 어린아이가 접하는 소설들의 경우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번에 두세 가지의 일들이 같이 일어난다. 그 이야기들은 이리 엉키고 저리 엉켜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무엇이 중앙 스토리인지 헷갈린다.
소설에서 인물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소설에서도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인물들이 많지만, 그들을 마음 편하게 관찰할 수 있음이 좋았다. 그들을 분석하면, 그들의 추후 행동이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인물 방향성은 불분명하다. 일관적이지 못하고, 개연성이 없다. 모두가 보이는 자신과 진짜 자신을 숨기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이 싫었다. 그 불확실성과 비논리성이 싫었다.
현실은 기승전결이 없다. 모두가 선의 인물이라고 하는데, 내 눈에만 그가 악인인 경우도 많았고, 모두가 악인이라고 하는데, 사실 선한 인물들도 있었기에 화가 나고 답답했다.
그렇기에 어린 나이에 소설과 창작에 집착했다.
소설, fictional story의 이야기는 내가 커피 한 잔과 함께 관찰하기 쉬웠다. 관찰하고, 분석을 하면 어떠한 결론을 낼 수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상당히 논리적이기도 하다.
문학을 읽는 것을 넘어, 창작의 경우, 내가 그 세계의 신이다. 내가 나 자신과 체스를 두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짠 판 안에서, 말들이 움직이고, 내가 만든 게임을 독자가 보며, 즐긴다. 그 유일함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나 역시, 현실의 인물이기 때문에, 현실의 비논리 성과 개연성 없음에 철저히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괜찮았던 어제가 전부 망가지기도 하고, 불행했던 오늘이지만, 내일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그래서 늘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꼭 매일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쓸 때, 내가 창작할 때는 자유롭다. 내가 직접 만든 말들이 서로 싸우고,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성장한다. 내가 100% 모든 것들을 조절하게 된다.
그렇기에, 나에게, 창작 글쓰기는 진정한 자유이다.
글을 쓸 때, 비로소 나는 완전한, 완연한 자유를 찾는다.
[이지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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