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필연이라고 [사람]

글 입력 2022.09.06 00: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쩌다 찾아온 인연이 있다.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엉켜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그런 인연이 있다. 나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그 친구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한 기숙사에 1학년, 2학년 그리고 3학년까지 같이 생활했기 때문에 같은 학년은 서로 얼굴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정말 딱 서로 얼굴을 아는 정도였다. 누가 먼저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고, 나에게 있어 그 친구는 친구의 친구일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가 2학년이 되었을 때, 그 친구가 먼저 다가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 친구가 불편했고, 어색했다.

 

당시 유행이었던 드라마인 ‘나쁜 녀석들’을 보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도 즐겨 보고 있던 드라마라 반갑게 본다고 했다. 우리는 몇 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기숙사 침대에 나란히 누워 드라마를 보았다. 그 친구랑 단둘이 있는 것은 처음인지라 어색할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어쩌면 어색한 공기를 채워주는 드라마의 오디오 때문일지 몰라도 나는 그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처럼 편했다.

 

그 뒤로 우린 빠르게 친해졌다.

 

각자 방이 있었지만, 한곳에 모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같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런 적도 있었다. 새로 산 나의 클렌징 폼이 친구들 사이에서 좋다고 소문이 났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나의 클렌징 폼을 가져가 사용하였고 그 클렌징 폼은 나의 목욕 바구니보다 여기저기 친구들의 목욕 바구니에 담겨있게 일수였다.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도 매일 클렌징 폼을 훔쳐 간 도둑을 찾는다며 친구들의 방을 쑤시고 다녔고, 친구들도 매번 정말 도둑처럼 클렌징 폼을 몰래 훔쳐 갔다.

 

또한 서로를 놀라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건조할 때면, 꼭 한 명씩 나타나 뒤에서 소리 지르고 기숙사의 복도를 힘차게 뛰어갔다. 나의 놀라는 소리를 짧게 지나가고 복도에는 놀래 친구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석식을 먹고 난 후, 기숙사로 가는 그 짧은 길에도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해 업어주기를 했다. 두 사람이 하는 게임이지만 진 사람은 모든 사람을 업게 된다. 가위바위보에서 지는 순간 모두가 진 친구의 등으로 달려들기 때문이다. 친구가 버텨지는 것도  웃겼고,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지는 것도 즐거웠다.

 

정말 고마운 인연이다. 그때 내가 나쁜 녀석들을 보지 않았더라면, 어색하다고 그 자리를 피했더라면 나의 삶이 어찌 흘러갔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내 곁에 그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사랑스러운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시간이 더 흘러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주량을 측정해 보겠다며 장바구니 한 가득 샀던 술과 모두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지만 방학이 되면 꼭 서로를 만나고, 그 사이에 서로의 안부와 문제를 의논하며 감정을 나누었다.

 

우리는 생각과 마음도 서로를 닮아가며 늙어갔고,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이 해결책을 찾으며 서로의 인생에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에는 나의 감정 또한 첫사랑 진행 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서울에서 콘서트를 하며 기꺼이 밤을 새우며 티켓을 같이 구매해 주었고, 지쳐 보일 때는 직접 구운 쿠키를 깨지지 않게 박스에 고이 담아 보내주었다.

 

모두 다른 태도와 방식이지만 애정이라는 한 가지의 마음이다.

 

내가 그들에게 받은 만큼 그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게 그들만 괜찮다면 그들의 곁에 더 있고 싶다.

 

 

[황혜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