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별의 순간

뜻밖의 일이 되고
글 입력 2022.09.01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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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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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나는 이별을 이야기하는 저 시구가 좋았다.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된다는 말, 이별에 놀란 가슴이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슬픔에 터진다는 표현. 내가 생각하는 이별과 꼭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내가 떠나가는 것과 나를 떠나가는 일을 가리지 않고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늘 저 표현이 입안을 맴돈다.

 

나는 익숙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상황이 변하는 게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이별도 그렇다. 그 사람이 그곳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끼기 때문에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에 저항을 느낀다. 왜 상대가 그곳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납득해야만 할까. 어제와 같은 내일이 계속 이어지면 좋을텐데.


그래서일까 어떤 형태든 이별 앞에서는 질척거리게 된다. 어린 날이었다면 나를 할머니 댁에 두고 떠나가는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각종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사실 이별을 받아들인다고 할 수는 없다. 상황을 납득하는 척 적당한 서운함만 내비치고 감정을 갈무리한다. 

 

*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따끈따끈한 이별이 하나 발생했고 조만간 다른 이별의 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전부터 계획되어 카운트다운이 들어간지 오래인 이별과 느닷없이 빠르게 찾아온 이별이 합세하여 나를 몰아치고 있다.

 

예상을 해도 어렵고 하지 않아도 어려운 게 이별이라 당장은 괜찮더라도 어느 순간 개미구멍만 하던 상실감이 훅 입구를 늘려 허전한 감정이 들이찰 것을 알고 있다. 그 허전함의 폭과 깊이를 마주치기 전까지 가늠할 수 없다. 저기서 파도가 밀려오는데 나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감정을 뒤집어써야 한다.


이별은 준비가 되지 않아서 일찍부터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해봐도 잘되지 않는다. 몇 번을 반복해도 서럽기는 마찬가지, 매번 할 때마다 좋지 않은 기분을 마음에 품게 된다. 내 서러움에 잠식되어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꾹꾹 눌러보지만 그래도 ‘같이’라는 말을 잃어버릴 때마다 마음이 쓸쓸해진다.

 

*


눈에서 멀어졌을 뿐, 마음은 그대로인 이별은 그래도 울지 않고 버틸 수 있는데 맞닿을 마음이 사라지는 이별은 허전함이나 쓸쓸하다는 말로는 채울 수 없는, 쉽게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남기고 간다.


그 사람을 다시는 영영 만날 수 없게 되는 것. 길 위에 그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 많이 지나가는데 내가 아는 단 한 명만 절대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 ‘돌아왔다’는 표현을 더는 쓸 수 없고 그리움만 남고 또 남는 일. 사람에게 한계가 그어지는 걸 남아서 목격한다. 시간이 지나 무뎌지기는 해도 잊히지 않는 영원한 이별.


이별한 사람과의 추억은 사람을 과거에 가둔다. 상상은 현재에,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은 꿈속에. 현재진행형이 될 수 없다는 건 사람을 많이 서글프게 만든다. 흔적이 남아서 계속 떠올리게 되는데 공통된 기억은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남아있다는 것. 실체없는 것을 손에 쥐고 없는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 모를 시간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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