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기를 씁시다 [사람]

글 입력 2022.08.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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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만 하더라도 ‘일기쓰기’는 학교 방학 숙제로 대표되는 지겹고 귀찮은 일 중 하나였다. 방학 내내 일기장을 펼쳐보지도 않다가 개학 일주일 전, 심하면 하루 이틀 전에 그림과 함께 몇 줄 짜리 감상만 뭉뚱그려놓는 것이 그 시절 나의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면서 일기장의 맨 첫 장에 '60년 뒤의 자신의 모습'을 글로 적어오는 과제를 받았다. 처음에는 투덜거렸지만 쓰다보니 고민이 더해졌고, 여러차례에 걸쳐 문장을 고쳐가며 딱 한페이지짜리 글을 완성해 제출했다.

 

그런데 그 글로 예상치 못하게 선생님께 칭찬을 받게 되고, 내가 쓴 글을 모든 친구들 앞에 서서 직접 소리내어 읽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는 글쓰기로 더 대단한 관심을 받아본 일도 없고, 지금 이 경험 또한 너무나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라 점차 흐릿해져가고는 있지만, 그때 느꼈던 묘한 부끄러움과 뿌듯한 감정만큼은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선명하고, 힘이 세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무엇이든 쓰게 만들만큼.

 

그렇게 나는 십대에 접어들 무렵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쓰던 해도 있고, 그렇지 못한 해도 있지만 어쨌든 놓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써내려 간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나에게 일종의 명상이고, 자기 보호 혹은 위로, 나아가 성장을 도모하는 꽤나 큰 의미를 지닌 일이다. 그런 만큼 여백 없이 마음을 충분히 쏟아낼 수 있도록 가장 편안하고 자유롭게 일기를 쓸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지금껏 고민했던, 그리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짤막히 나눠볼까 한다. 돌아보니 꽤 다양한 고민을 하고, 시도를 한 것 같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아직도 여전히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언젠간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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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쓸 것인가?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휘몰아칠 때, 그래서 도무지 손으로는 그것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때. 그럴 때는 나는 무조건 노트북을 켠다. 키보드 만큼 빠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를 최대한 비우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 어느샌가 두통을 유발하던 것들이 활자가 되어 화면을 가득채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적는 일기는 불편하다. 그러나 나와 가장 가까이 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밤에 자려다가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잊기 전에 바로 작성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자판을 치는 속도도 빠르지 않거니와 오자가 많이 발생해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마트폰 어플로 일기를 쓰기보단 일기에 적기 위한 키워드나 짧은 문장을 잊지 않기 위해 미리 적어두는 용도로 활용하곤 한다.

 

마지막은 가장 보편적이고 낭만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손글씨. 펜으로 직접 쓰는 건 다른 방법들보다 훨씬 더 귀찮게도 느껴지고 펜을 쥔 손이 아파 오래 쓰기도 어렵지만, 동시에 한글자 씩 꾹꾹 눌러쓰며 더 신중하게, 더 깊은 마음을 솎아 낼 수 있다.

 

정리하면, 보통의 날들 혹은 아주 행복해서 그 순간의 모든 걸 낱낱이 기록하고 싶은 날들에는 일기장에 직접 적는 반면, 머리가 매우 복잡하고 하고 싶은 말이 넘쳐흐를 땐 키보드를 두드리며 속기한다. 어쨌든 일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담고 싶은 마음이 최대한 녹아들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쓸 것인가?


 

한편 내가 쓴 일기를 어느 장소에 아카이빙할 것인지도 대단히 고민스러운 문제다. 나는 크게 둘로 구분해 블로그와 노트를 두고 고민하곤 한다.

 

블로그를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검색 기능이다. 꽤나 다양한 이유와 목적으로 과거의 내가 쓴 기록들을 들춰보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곤 하는데 이때 필요한 단어 하나만 검색해도 십년 전의 일기까지 단번에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편리하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손글씨를 포기할 수 없는 날들이 분명 존재하기에 상당한 양의 기록들이 이곳저곳 산재해 있다. 이를테면 2018년 3월부터 5월까지의 기록은 블로그에 저장되어 있는데, 6월부터 9월까지의 기록은 노트에 적혀있는 식이다. 하루 단위로 세면 말할 것도 없이 더욱 복잡하고 어지러워진다.

 

욕심이 많아 두 곳 모두 포기하지 못하니 감수해야 하는 일일까 싶지만, 언젠가는 한쪽으로 기울겠지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블로그와 노트 이외의 다양한 SNS에 업로드 되어있는 조각 일기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 보관할지 매일 밤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언제 쓸 것인가?


 

이번에는 일기를 적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날짜를 적지 않는다거나, 키워드만 남긴다거나, 흔하게는 편지 형식으로 적는 등 꽤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왔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건 바로 일기를 적는 시간대를 달리하는 것이다.

 

밤에 쓰는 일기는 대체로 하루를 돌아보고 남는 것들에 대한 감상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그래서 나의 일기에는 후회와 반성이 넘치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정리하고 남은 슬픔이나 우울로 가득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일기를 써보게 되었는데 신기하게 같은 상황도 서로 다르게 서술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날에 있었던 일을 다음 날 아침 다시 떠올리게 되면 불필요한 감정들이 쉽게 걸러진다. 이를테면 피곤함에 가려 잠시 고개를 들었던 예민함 같은 것들 말이다.

 

이렇게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줄이고, 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을 가진 생각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되 명확하고 활기찬 단어들로 그것들을 정의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마치 언어의 지배를 받는 걸 증명하듯 기운찬 날을 보낼 확률도 높아진다.

 

정리하자면 밤에 쓰는 일기는 솔직하고, 아침에 쓰는 일기는 명료하다. 자신을 돌아봄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더 도움이 될지 고민하면서 다양한 시간대를 활용해보는 것을 모두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글로 남는 나의 시간들


 

현재를 쓰면 과거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참 묘하고도 매력적인 일 같다. 분명 내가 쓴 글이 맞지만 마치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고,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생생히 되살아나는 경험을 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일상의 결을 가능한 선명히 남겨 다른 어떤 날들의 위안이 되고, 추억이 되고, 흥밋거리나 재미가 된다면 좋겠다고 일기를 쓸 때마다 생각한다.

 

나 아닌 누구도 읽지 않는, 나로 시작해 나로 끝나는 이 작은 노트는 어쩌면 이 모든 우주를 통틀어 나를 완벽히 이해하는 유일한 친구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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