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담고있는 것은 -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이제, 여기까지 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하러 가야겠어요.
글 입력 2022.08.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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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뉴욕, 1953년.jpg

 

 

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죠.

 

-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中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진들과 마주한다. 각기 다른 느낌과 감정을 담고 있지만, 모두 잊고 싶지 않은, 오래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같다. 사진은 이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한 가장 클래식하고 필수적인 수단이 된 셈이다.

 

2007년, 존 말루프가 동네 경매장에서 누군가의 기록을 낙찰받았다. 필름으로 가득 찬 상자였다. 그는 필름을 스캔했고, 스캔본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했다. 이렇게 필름의 주인공이었던 비비안 마이어는 '발견'되었다. 15만 장이라는 방대한 양의 사진, 그리고 각 사진의 감성과 아름다움. 여기에 비비안 마이어의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알려지며 사람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살아있다고 느낀 사람. 자신의 모든 순간을, 자신의 모든 시선을 기록하고자 한 사람. 과연 비비안 마이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 너머로 무엇을 보고 있었을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열린 비비안 마이어 전시회를 찾았다.

 

 

 

거리의 사람들,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



4.센트럴파크 동물원, 뉴욕, 1959년 9월 26일.jpg


 

비비안 마이어의 카메라는 대부분 거리를 담고 있었다. 거리의 풍경은 물론, 거리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아기, 함께 신문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기대어 앉아있는 수녀까지.


비비안의 사진에서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진실함이었다. 친절한 표정, 불편한 표정, 무심한 표정 등 거리의 사람들이 짓는 모든 표정은 자연스러웠으며 다채로웠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를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아닌 손이나 그림자를 담은 사진에서도 사진에 포착된 그 순간만의 감정이 느껴졌다.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순간을 영원히 살아가고 있었다.


사진 속에 영원의 시간을 불어 넣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비비안 마이어가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비행사의 귀환을 환영하는 축제를 촬영했을 때나 세계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그녀는 축제나 세계의 풍경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쩌면 비비안 마이어는 그녀의 두 눈보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가장 먼저 세상, 그리고 사람과 마주했으리라.

 

 


아이들,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


 

7.캐나다, 1955년.jpg

 

 

비비안 마이어가 사후 엄청난 인기를 끈 이유에는 그녀가 여러 가정에서 보모로 일해 왔다는 인생사 역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비비안은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동네 연극을 기획하거나 꽃과 곤충을 관찰했다. 때때로 함께 도시로 사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모든 것을 기록하던 비비안 마이어는 아이들을 향해서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때 그녀는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결코 아이들이 구축하는 고유한 세계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었다. 구멍 사이로 눈을 빼꼼 내미는 아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를 그 자체로 담은 사진들은 보모이자, 동시에 뷰파인더를 통해 아이를 관찰하는 관찰자로서의 비비안을 보여준다.


비비안은 아이를 찍는 데에 있어서 자신만의 규칙을 갖고 있으면서도 관례를 깨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에는 멀끔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관례가 있었음에도, 비비안은 울고 있고, 찡그리는 아이의 모습까지 과감하게 기록했다. 그녀는 거리의 어른들과 동등한 위치로 아이들을 대하고자 했던 것이다.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에서 비비안의 지인은 비비안같이 예술가적인 기질을 가진 여자가 유모로 살기는 답답했을 것이라 말하지만, 그녀가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럼에도 그녀가 아이를 사랑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진들과 아이들을 찍은 사진이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정도로, 아이들의 사진에서는 깊은 관심과 애정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



2.뉴욕, 1954년.jpg

 

 

나아가 비비안 마이어는 자기 자신을 꾸준히 기록했다. 비비안은 주로 거울이나 쇼윈도에 비친 자신이나 그림자 속 자신을 뷰파인더에 담았다. 다른 곳을 쳐다본 채로 거울을 촬영한 사진을 볼 때는 뭔가 오늘날의 셀카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서명이 적힌 물건 역시 마치 다른 사람의 물건인 것처럼 사진으로 찍었다.


사실 비비안 마이어 자신을 기록한 사진을 보는 동안에는 그 안에 어떤 감정을 담겨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정말 그 순간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일종의 증거이자, 자신 역시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 것 같다는 느낌 이상으로는 알 수 없었는데, 이는 비비안이 사진에서 주로 무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큰 이유를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poster_A2.jpg

 

 

전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서는 비비안 마이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거리의 사람들, 아이들, 그리고 자신과 만난 기록과 마주할 수 있었다. 비비안의 사진 속 세련된 구도, 그리고 그 안에 살아있는 풍경과 사람들은 그녀가 간직하고 싶었던 순간의 기록을 빛낸다. 그 밖에도 그녀가 남긴 영상과 음성 기록, 카메라까지 비비안이 기록한 모든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사실 '기록전'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나는 비비안 마이어가 발견된 과정과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보고 전시장을 찾았는데, 영화를 보고 비비안 마이어가 만약 최근의 사람이라면 SNS 비공개 계정에서 기록을 했을 것이라는, 공개 계정을 사용한다고 해도 절대 본인의 본명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전시를 보며 조금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실제 그녀는 생전 자신의 기록에 다른 사람이 관여하는 것을 싫어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을 잘 보여주지 않았으므로.


 

이제, 여기까지 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하러 가야겠어요.

 

- 비비안 마이어

 


그러나 전시장의 출구 천장 쪽에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이 말이 적혀 있었다. 영화에도 나온 음성이었지만, 전시의 막바지에 다시 마주하니 새삼 새로웠다. 문득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리며 전시장을 나섰다. 어쩌면 비비안은 그녀의 모든 기록이 누군가로 인해 언젠가 '발견'될 것을 가정했을 것이라는, 어쩌면 내내 자신의 기록을, 그리고 자신이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세상을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결코 그녀의 사진과 삶을 완전하게 알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가 왜 그토록 온 인생을 다하여 사진을 찍고 저장하였는지.

다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억과 삶에 비추어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비비안 마이어를 향한 이야기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 전시 설명 中

 

 

 

류지수 (1).jpg

 

 

[류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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