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이 내 삶에 더 깊숙히 들어온 순간- 트리오 제이드 제4회 정기연주회

글 입력 2022.08.2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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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클래식이 익숙해졌다. 바흐, 쇼팽, 슈만 등 익숙한 작곡가들의 음악은 물론 몇 개월 전부터 듣기 시작한 클래식 팟캐스트를 통해 새로운 작곡가들도 알게 되었다. 존재를 아는 것을 넘어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가의 수도 꽤 늘어났다. 이제 나도 제법 클래식에 일가견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음… 글쎄….

 

클래식을 들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깊은 감동이 솟아오르는데 그 감동의 실체가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떤 곡이 좋은지는 바로 말할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떤 이유로 좋은지, 좋은 클래식을 가리는 나만의 기준이 무엇인지까지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그동안 좋아하는 예술에 대해 말하려고만 하면 끊임없이 이야기가 술술 나오던 나였지만, 클래식만큼은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내가 논평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대상이다.

 

클래식을 즐겨 듣긴 하지만 분석이 습관인 나는 ‘좋다’, ‘나쁘다’ 이상으로 자세하게 논할 수 있어야 당당하게 클래식 듣기를 취미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애타게 클래식과 나 사이를 가로막은 벽을 하염없이 두드리기만 하던 중 지인으로부터 클래식을 이해하고 싶으면 한 가지 악기라도 배워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모든 이해의 시발점은 체험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일리 있는 조언이었다. 그 말에 이미 빼곡히 채워진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 ‘피아노 배우기’를 추가하고 얼마 안 있어 트리오 제이드의 제4회 정기연주회를 관람했다. 음악과 하나가 된 듯한 그들의 연주를 보면서 지인의 조언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포스터] 트리오 제이드 제4회 정기연주회_보헤미안.jpg

 

 

 

팀워크


  

트리오 제이드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피아니스트 이효주, 첼리스트 이정란으로 구성된 피아노 삼중주단으로 2006년에 결성되어 올해로 무려 결성 16주년을 맞이했다. 오랫동안 세계 유수의 콩쿠르를 석권하며 음악성을 인정받은 그들은 각각 솔로 연주자로서도 입지를 굳혀왔다. 2022년 8월 20일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린 제4회 정기연주회에서는 요제프 수크, 드보르작, 브람스를 연주했다.

 

다른 문화예술과 비교하면 연주회를 감상한 경험은 특히나 적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달 전에 관람했던 조재혁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과 비교하면서 보게 되었다.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은 그동안 오케스트라 연주 버전의 음원으로만 클래식을 즐기던 나에게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넓은 공연장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공연이었다. 한 명만 나오기 때문에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손끝이나 다리의 방향 등 한 사람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번 공연에서 중점적으로 본 부분은 세 사람의 조화였다. 아마추어는 본인 연주만 소화해도 벅차기 때문에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는데, 과연 17년 차를 자랑하는 트리오의 연륜은 무시할 수 없었는지 세 연주자 모두 공연 내내 서로 눈을 맞추며 소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과 첼리스트 이정란이 앞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고 그 뒤에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중심을 잡아주는 구조였는데, 나란히 앉은 박지윤 연주자와 이정란 연주자의 교감이 훨씬 잦은 건 위치상 당연한 일이었다. 각자의 악기에 몰두하다가 템포가 바뀌는 중요한 부분에 가볍게 웃으며 눈을 맞추고 바로 호흡을 가다듬을 때마다 팀만이 줄 수 있는 조화로움을 느꼈다.

 

흥미로운 건 그들의 뒤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이효주도 곁눈질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트리오의 멤버들을 살피려 한다는 점이었다. 악보를 넘겨주는 스태프가 따로 동원될 정도로 건반에만 집중해도 벅찬 게 피아노 연주일 텐데 음악이 잠시 쉬어가는 구간에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팀원을 보려고 한다는 점이 감동으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공연이 끝나고 유튜브를 통해 공연에서 연주된 곡을 들었는데 공연에서 들었던 것과 느낌이 전혀 달라서 깜짝 놀랐다. 같은 곡이어도 연주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구성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는 (지금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사실을 몸소 실감했다. 그와 함께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와 하나가 된 그들이 그들만의 감성으로 명곡을 표현해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작곡가들과의 만남


 

내가 관람한 정기연주회에서는 요제프 수크, 드보르작, 브람스. 이렇게 3인의 곡을 연주했다.

 

이 연주회에서 선정한 3인의 음악가는 스승과 제자 관계이다. 수크는 드보르작의 제자이고 드보르작은 브람스의 제자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미리 나눠준 팜플렛을 읽었는데, 스승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 사제관계가 흥미로웠다.

 

수크는 이 공연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음악가였다. 전체 공연에서 7분 정도만 차지하는 적은 비중이었지만 그 잠깐에도 새롭게 접한 이 음악가의 작품을 열심히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훌륭한 곡이었다. 수크의 곡은 짧게 진행돼서 아직 부족한 식견으로는 드보르작의 영향을 느낄 수 없었지만, 드보르작과 브람스는 각각 40분에 달하는 피아노 삼중주 곡이 연주되었기 때문에 비교가 수월했다.

 

공연에서 연주된 드보르작의 피아노 삼중주 제3번 바단조, 작품 65는 뼛속부터 독일인인 브람스와 뼛속부터 보헤미안인 드보르작이 서로 다른 음악적 견해로 끊임없이 충돌했지만 그러한 드보르작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브람스적인 곡이라고 설명되었다. 사실 ‘브람스적’인 것이 무언이지 이해하기엔 브람스 음악도 많이 안 들어본 나였기에 드보르작의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과연 무엇이 브람스적이라는 걸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반부가 지나서야 ‘브람스적’이라는 네 글자에 매달리지 않고 온전히 드보르작의 작품으로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짧은 집중력으로 이런 연주회가 아니면 긴 삼중주 곡의 연주를 한 번에 들을 기회가 적다. 이번 기회에 알레그로와 알레그레토 악장을 지나며 변화하는 과정을 연주자들의 세심한 표정 변화와 함께 지켜보니 그동안 가볍게 듣기만 했던 음악을 진지하게 함께 겪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터미션을 거치고 브람스의 피아노 삼중주 제1번 나장조, 작품 8번을 들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마자 어떤 부분에서 드보르작과 충돌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드보르작의 곡이 특별히 실험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브람스의 곡은 특히나 클래식의 전형적인 고전미와 웅장미가 물씬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이전 드보르작의 피아노 삼중주에서 느꼈던 부분들이 비슷하게 느껴져서 역시나 드보르작이 스승의 영향을 받긴 받았구나 실감하게 되어 흥미로웠다.

 

사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시청각 자료가 넘치는 세상에 2시간 가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만 지켜보는 게 보통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 아니다. 연주 중간중간 잡생각이 잠깐씩 들기도 해서 감상에 방해받지 않도록 생각을 처단하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런데 브람스 연주까지 들으니 그런 애를 쓸 필요가 없었다. 브람스가 구현해낸 고전미와 웅장함에 이끌려 어느새 두 손까지 모으며(원래 집중하면 두 손을 모은다) 연주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이 났을 때는 무려 38분의 삼중주 곡이었는데 벌써 끝났냐며 놀라기까지 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야 클래식을 즐길 준비를 마쳤던 게 아니었나 싶다.

 

저번의 피아노 리사이틀과 마찬가지로 이번 공연에서도 앵콜 연주가 있었다. 지난번엔 쇼팽의 녹턴을 연주해줘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는데 이번엔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를 연주해줘서 아주 기뻤다. 유모레스크는 내가 드보르작을 좋아하게 된 이유와도 같기 때문이다. 앵콜로 연주되는 드보르작의 곡을 들으니 ‘브람스적’인 피아노 삼중주와 비교해서 그가 얼마나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감성을 추구했는지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저 ‘좋다’와 ‘덜 좋다’로만 표현됐던 나의 클래식 취향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발전한 기분이었다.

 

 

 

늦여름의 황홀한 추억


  

내가 공연을 관람했던 8월 20일은 처서 직전 2022년의 마지막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날이었다. 공연을 마치고 밖을 나오니 여름밤의 습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IBK 챔버홀에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예술의전당 광장이 눈에 띄었다. 공연이 끝났으니 이제 여유도 있겠다 광장 잔디밭에 앉아서 공연에서 연주된 브람스의 피아노 삼중주를 들으며 헤르만 헤세가 나무에 관해 쓴 에세이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브람스의 음악이 책 내용과 너무 잘 어울려서 책장이 더욱 술술 넘어갔다.

 

책을 읽는 도중 문득 헤세에게 고마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그의 또 다른 에세이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였기 때문이다. 나의 지나간 기억도 끄집어주고 새로운 취향까지 발견하게 해준 그가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는지 실감했다. 헤세의 영향 아래 그날 나는 트리오 제이드의 연주회를 감상했고 2022년 8월 20일 황홀한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의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장식해주는 도구에 클래식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클래식을 지금보다 조금 더 열심히 좋아해보고자 한다. 늦기 전에 어서 피아노를 배워봐야지….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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