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공녀'로 감상하는 영화 속 청춘 이야기

글 입력 2022.08.23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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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에게 반면교사 되는 미소의 내력

 

 

[크기변환]소공녀2.jpg

 

 

 

시놉시스


 

인생에 딱 3가지만 가지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는 ‘미소’.

 

그녀에겐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남자친구. 그리고 담배만 있으면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 직업에도 큰 욕심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음식과 청소에 당당히 자신감을 내비친다.

 

마음 편하게 거주할 집만 없지 미소에겐 생각과 취향이 있다. 세상이 원하는 인간상에 타협 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는 그녀에게 자꾸만 눈길이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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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의 대화 장면


 

한솔 : 난 공장 기숙사에 사니까, 널 재울 수도 없는 거지니까.

 

미소 : 무슨 소리야, 거지는 나지.

 

한솔 : 아니야, 내가 거지라서 네가 거지인 거야. 내가 돈이 쫌만 있었으면 우리 둘이 같이 살았을거고 그럼 막 이렇게 피 뽑아 가면서, 영화표 세이브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고, 너라고 막 텔레비전에 나오는 맛집, 뭐 그런데에 안 가보고 싶겠어?

 

미소 : 나 헌혈 사랑하는 거 알잖아. 난 너랑 이렇게 놀고 담배만 피울 수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소공녀에 대한 에디터의 견해 


 

슈퍼 항체라고 자신했던 필자는 얼마 전 만만하게 봤던 코로나로 고생을 했다. 일주일가량 방 안에 콕 박혀 있다 보니 현대판 유배생활을 체험하는 것처럼 기분의 그래프가 들쭉날쭉 많이도 요동쳤다. 안 그래도 자질구레한 생각이 많아 머리의 천장은 수없이 많은 말풍선들이 걸려 있는데, 누군가 거센 인공 바람을 머리 안을 향해 스위치를 킨 듯이 처음 느껴보는 인생의 긴장감이 옥죄어왔다. 그 말풍선들은 바람의 회오리 여파에 이기지 못해 강압적으로 터졌다. 풍선 안에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니 어떤 청소도구로 뒤처리를 말끔히 해야 할지 가늠도 오지 않았다.

 

내면의 심리가 불안정할 때는 이를 타당화 시킬 수 있는 서사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서사는 기분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의 원인을 뜻하는데 필자는 창피하게도 확고한 서사는커녕 한 문장도 만들어내지 못한 시나리오 작가처럼, 슬픔의 에피소드를 어떻게든 짜내보려고 기분의 서사를 분석해 내야만 했다. 그러니까 필자의 현재 최종적인 감정선을 역으로 추적해서 올라가야 알 수 있는 기분의 커리큘럼도 있다는 구조를 스물넷에 처음 경험해 본 것이다.

 

필자가 그날 집 앞 벤치에 나가 울었어야 했던 이유는 막학기를 앞두고 있는 대학생으로 사회에 나가 일 인분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던 것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수많은 동기들은 서로 소속은 같지만 지향하는 바에 따라 공부의 내용과 선택 사항이 크게 달라졌다. 누군가는 그 준비를 위해 휴학을 해야 했고, 누군가는 한 번에 졸업하여 전공과 다른 공부를 시작했다.

 

목표하는 직업군이 확고한 필자는 주변에 어떤 소식이 들려와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나름 안전하게 전진하고 있다 자부했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실망할 만큼 평소 타인에게 여유롭게 건넨 칭찬이 에러가 걸렸다는 사항을 직감한 후, 감정의 기둥을 다시 제자리에 고정시킬 요소들을 기필코 발견해 내야만 했다.

 

주인공 미소에게 당연하게 루틴화된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 한솔 같은 안정감은 내게 없었다. 누가 마시자면 마시는 술이지만 자진해서 찾진 않아서 술은 언제나 인생의 중요도에 밀려났다. 또 좋지 못한 냄새에 굉장히 민감하기에 담배는 필자의 인생에 영원히 낄 수조차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자친구는 현재 누군가와의 접점도, 누군가를 챙길 여유도 없기에 잠시 미뤄둬야 했던 인력이었다.

 

미소에겐 이 3가지만 충족된다면 집도, 차도 없어도 견뎌낼 만족스러운 간단한 목록이 있다. 평소 남들의 이야깃거리에 잘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스스로 정해놨던 방향에 의심이 생기다 보니 미소처럼 큰 욕심내지 않는 단순함을 필자에게 반면교사 시켜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하루 2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언제나 제자리를 지켜주는 애완견, 정신적인 풍요를 담당하는 문화 예술. 생각해 보니 필자 또한 미소처럼 욕심이 크지 않았다. 언급한 이 세 가지만 삶의 연장선에 가져갈 수 있다면 미소처럼 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어제가 오늘 같구나, 오늘이 마치 어제 같구나로 감상되는 부드러운 유연성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예감에 다시 안정감이 들었다.

 

누구는 이렇게 살면 어떠하고, 필자는 필자만의 개성으로 삶을 다르게 살면 어떠한가. 다른 생명체가 설령 비슷한 선을 타는 유형은 있겠지만 데칼코마니처럼 같다면 오히려 그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나다운 나’에 대해 탐구하고 열정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미소는 월세 낼 돈도 없어 옛 친구들의 소박한 집,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을 떠돌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목격하고 잠시 들어갔다 나왔지만 어떤 요동도 없었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부러워하지 않았으며 염치 없이 그 집에 묵고 싶진 않아서 현재 미소가 가장 잘한다고 자부하는 가사 일을 맡겨달라 요청했다. 그 후 더 이상 손을 내밀 곳이 없자 넓디넓은 공원의 평지에 텐트 하나 치고, 억지로 만들지 않은 욕심이 ‘바로 나다!!!!!!!!!!’는 당당한 의견을 깔고 한자리 잡는다.

 

미소처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려는 무감각은 자칫 미래에 위험 감지 요청의 소리가 미리 예상되듯 위험한 신호임은 틀림없다. 다만 죽을 때까지 불완성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각자마다 넘어져도, 크게 다쳐도, 툴툴 털어버릴 수 있게 지탱해 주는 3요소는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그 요소가 돈일 수도 사랑일 수도 여행일 수도 있는 다양성이 분포된 많은 선택지 속에서 ‘나만의 것’을 꼭 챙겨놔야 어떤 순간이 와도 큰 요동 없는 담담함이 인생의 베테랑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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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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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파랑파랑
    • 좋아하는 영화여서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미소가 인생을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사랑으로 채워나간다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는데, 여러 번 보니 사회풍자와 스토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훌륭한 영화더라구요. 영화 자체의 분위기도 참 좋았어서 , 한동안 영화에 푹 빠져 '미소처럼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던 시절이 생각나는 글이었네요.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볼살천사
    • 2022.08.24 13: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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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랑파랑보여주기 식의 취향이 아닌, 오로지 그 사람만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취향이 보이는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라는 마음가짐을 바로 잡기는 항상 어려운데 <소공녀>의 '미소'는 그게 가능한 친구인 것 같더라고요!

      영화 속 주인공들 덕에 삶에 대해 배우는 태도를 항상 배울 수 있어 좋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분이 나타나서 더 기분이 좋아지네요 :)

      항상 제 글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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