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플라스틱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 플라스틱프로덕트 진

글 입력 2022.08.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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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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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플라스틱이라는 소재는 환경 문제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편이다. 지양해야 할 소재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20세기에 플라스틱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며 인류의 삶에 가져온 변화가 혁신이었다는 주장에 토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플라스틱은 여러 가지로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값싸고 간편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덕분에 플라스틱은 식기, 컵, 장난감처럼 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소품부터 전자기기의 부품이나 일상 도구에 이르기까지 쇠, 나무 등 기존에 사용되던 소재의 훌륭한 대체품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에는 플라스틱이 쓰이지 않는 분야를 찾기가 더 어렵다.


이렇게 플라스틱이 흔히 쓰이는 시대의 풍경 또한 플라스틱과 닮았다. 유행의 주기는 매우 짧다. 많은 사람이 무겁고 진지한 것을 버거워한다. 내일이면 잊어버릴 가벼운 이야기, 전화나 편지보다 메신저 한 줄을 선호한다. 게다가 가볍고 일회성이 강한 플라스틱은 우리가 사는 도시의 속성과도 연관된다. 좋든 싫든 플라스틱과 그 특성은 이미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플라스틱프로덕트는 플라스틱이 지닌 경험이나 느낌에서 착안해 옷을 만드는 브랜드다. ‘플라스틱프로덕트 진’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플라스틱에서 파생된 하나의 테마를 설정하고, 그 테마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의 글과 인터뷰를 담은 매거진이다.

 

첫 번째 테마는 ‘Silver car’, 은색 차다.

 

 


가볍고 편리하고 친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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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에는 정지돈 소설가의 짧은 소설 ‘Silver Car Plays Itself’를 비롯해 조각가 권오상, ‘문학살롱 초고’의 김연지 대표, ‘같이 살자 지구’ 카페의 김키미 대표, 그래픽 디자이너 맛깔손, 플라스틱프로덕트 대표 서민철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글이 실려 있다. 은색 차라는, 다소 갑작스러운 테마를 시작으로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반복할수록 증폭하는 자본의 운동과 동일한 작동. 그러니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자기애가 증식하기에 최고의 환경이다. 다만 앞에서 말했듯 문제는 자기애를 버리는 게 이를 절제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이다.


- 12p, ‘Silver Car Plays Itself’

 


매거진의 문을 여는 정지돈의 소설은 이 매거진의 분위기를 슬쩍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인펠드와 함께하는 커피 드라이브>라는 넷플릭스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나르시시즘과 SNS를 연결 짓고 롤스로이스 최초의 프리스티지 카, '실버 고스트'에 대한 내용까지 나아간다. 꼭 실버 고스트를 다뤄서가 아니라 다소 딱딱한 문체와 자주 등장하는 외국어가 이 매거진의 테마인 은색 차를 떠오르게 한다.

 

정지돈 작가의 글 다음부터는 인터뷰들이 이어진다. 인터뷰 중에서는 권오상 조각가와 플라스틱프로덕트 서민철 대표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지금 같은 경우, 인터넷 이미지들을 가지고 작업을 제작하고 있는데, 어떤 이미지는 픽셀이 깨져 있고, 저작권이 걸려 있거나, 워터마크가 있는 이미지들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이미지들을 일부러 쓰기도 해요. 이게 인터넷에서 나온 이미지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그런 것들이 저에게 중요한 사물이자 재료이고요.”


- 46p, 권오상 건축가 인터뷰('새로운 형식을 발명하는 것이 작가의 소명이다') 중

 


조각가 권오상의 작업은 흥미롭다. 그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조소 재료인 대리석이 무거워서 옮기다 다치기 쉽고 혼자 다루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른 재료가 없을까 고민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렇게 종이로 된 사진이 재료가 되는 ‘사진 조각’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일반적인 조소처럼 3차원의 것을 3차원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2차원의 것을 3차원의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편견을 깨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인터넷 이미지를 재료 삼아 작업하기도 하는데, 선명하지 못한 이미지까지 재료의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한다는 말에 눈길이 간다. 인터뷰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 지향하는 바를 만나볼 수 있다.



“플라스틱은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물건만 만들다 보니 특별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사람들에게 편하고 가볍게 자리 잡힌 것 같아요. 그런 점들이 좋았어요. 제가 좋아했던 것들을 되돌아보니 모두 그러한 가치가 반영된 것들이더라구요. (중략) 그럼 플라스틱 같은 걸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 150p, 서민철 대표 인터뷰('옷을 팔고 있지만, 실은 '플라스틱한' 가치를 판다') 중

 


서민철 대표는 어떻게 보면 플라스틱프로덕트 진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기여한 첫 번째 사람일 것이다.

 

‘플라스틱한’ 가치를 파는 브랜드, 플라스틱프로덕트는 어느 날 서 대표가 무인양품에서 플라스틱 서류 케이스를 사며 시작되었다. 가죽처럼 비싼 소재로 된 걸 샀을 때보다 오히려 만족도가 높다는 것에 의아해하던 그는 거기서 ‘플라스틱한’ 가치를 발견했고, 이제 그 가치를 판매한다. 그 가치란 편리함과 가벼움이다. 플라스틱프로덕트라는 브랜드 이름에는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쉽게 집어 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7명의 목소리가 각각 들릴 것만 같은 인터뷰를 읽다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서 한 가지로 정의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조각을 하고 가게를 운영하고 디자인을 하는 것이지만, 인터뷰 속에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결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삶은 가볍고 용도에 맞게 잘 변형된다는 플라스틱의 특성과 연결된다.

 

 

 

은색 차들의 행진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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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프로덕트 진의 가장 독특한 점은 매거진과 포토북이 함께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주는 가벼운 느낌과 대조적으로, 천 페이지를 훌쩍 넘는 포토북의 두께와 무게가 주는 위압감이 있다. 포토북에는 별다른 텍스트 없이 수백 대의 은색 차 사진이 실려 있다.


은색은 도시의 아스팔트와 잘 어울린다. 또한 은색은 차종을 불문하고 자동차를 구매하는 이들이 검은색, 흰색과 더불어 가장 흔하게 선택하는 선택지다. 어디서든 튀지 않고 때도 잘 타지 않는다는 은색의 특성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은색 차가 사랑받는 이유는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방식과 닮았다. 왜 플라스틱프로덕트 진 첫 번째 테마가 '실버 카'인지 깨닫는 순간이다.

 

플라스틱에서 파생되었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그 연관성을 떠올리기 어려운 은색 차는 이렇듯 플라스틱과 연결되며 보는 이에게 또 다른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실버 카'라는 테마를 들었을 때 매거진의 물성으로 이를 어떻게 구현했을지 궁금했는데, 두꺼운 분량의 여백 가득한 포토북 뿐만이 아니라 매거진 자체에 코팅을 하지 않고 은빛을 연상시키는 회색 표지에 제목을 형압 처리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특유의 물성이 돋보이는 매거진인 만큼, 다음 테마인 캐노피는 어떤 방식으로 매거진에 녹아들지 궁금해진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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