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한 감각을 의심하라, 바티망 [전시]

익숙한 감각을 비틀어 재해석하고, 감각을 의심하도록 유도하다.
글 입력 2022.08.1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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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의 대표작 <바티망(Batiment)>이 서울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서 국내 최초로 공개되었다.

 

<바티망>은 지난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개된 이후 18년간 런던, 베를린, 도쿄 등 전 세계 대도시를 투어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이어왔다. 이번 <바티망> 서울 전시는 한·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개최되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수영장, 탈의실, 정원 등 주로 일상적인 공간을 주제로 거울이나 프로젝터 등의 장치를 활용해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 감각의 왜곡을 불어넣은 작품으로는 ‘잃어버린 정원(2009)’, ‘교실(2017)’, ‘바티망’이 있다.

 

 

 

바티망



프랑스어로 ‘건물’을 뜻하는 ‘바티망’은 도시 생활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활용해 보이는 현실을 새롭게 연출한 관객 참여·몰입형 설치 예술 작품이다. 에를리치는 “바티망은 누구나 그 위에서 배우로서 작품을 완성해가는 특별한 무대를 선사한다”고 말했다.

 

실제 건물 형태를 재현한 파사드를 바닥에 설치하고, 그 앞에 45도로 기울인 대형 거울을 세웠다. 관람객이 작품에 누우면 마치 건물 외벽에 매달리거나 앉아있는 듯한 모습이 거울에 반영된다. 실제의 나는 바닥에 누워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중력을 거스르고 건물에 매달려있는, 초현실적인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작품이 전달하는 초현실적 경험은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된다. 실감 몰입형 장르 작품인 ‘바티망’은 관객이 작품에 누워 다양한 자세와 표정으로 즐기고, 향유할 때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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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바티망’은 우리가 흔히 아는 트릭아트였다.

 

수학여행 때 한 번쯤 가봤던 트릭아트 박물관에 있는 작품 같으면서도 더욱 정교하고, 기발한 방식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내가 기존에 향유한 트릭아트는 그 작품에 참여하는 관람객이 많아질수록 ‘트릭’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작품의 경계선이 어딘지, 트릭이 무엇인지 유추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티망은 바닥에 파사드를 설치하고,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관람객이 참여하면 할수록 더욱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된다.

 

다만 ‘바티망’은 고정된 하나의 설치물이 아닌, 전시가 열리는 각 도시의 고유한 색깔과 건축물을 소재로 제작하기에 매력적인데, 한국의 색이 담기지 않은 ‘바티망’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2019년 베이징 차이나타운 ‘바티망’의 경우, 한자 간판과 건물 디자인으로 중국의 색을 잘 담아냈고,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선 노란 페인트로 칠한 은행이 그의 ‘바티망’이 되었다. 도네츠크는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경제 중심지이기 때문에, 이러한 배경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서울의 ‘바티망’은 한국 혹은 서울과 관련이 없었고, 기존의 바티망을 재구현해둔 것 같아 아쉬웠다.

 

 

 

교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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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를리치는 거울, 유리, 스크린 등 시각적 효과를 주는 장치를 활용해 익숙한 공간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한다. ‘교실(2017)’은 유리와 조명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초월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마주 보는 2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관람객이 입장한 방의 유리 벽 너머는 무너지고 깨어진, 붕괴 상태의 공간이다. 관람객은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가 유리 벽 너머의 폐교된 교실을 바라보게 되는데, 유리와 조명 효과로 시각적 착각을 하게 된다. 버려진 교실에 앉아있는 ‘나’의 환영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서 순식간에 과거(혹은 미래) 시공간의 존재가 되고, 그러한 존재가 된 ‘나’를 내가 바라봄으로써 생경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에를리치가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한국 만의 교실 풍경을 담아 연출했기에,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교실(2017)’의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정원(2009)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창문으로 내부의 정원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대각선 맞은편의 거울로 정원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맞은편 거울에 내 모습이 보인다면, 여타와 다를 것 없는 거울로 인식할 텐데, 대각선 너머의 창문에 비치기 때문에 또 다른 ‘나’를 인식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점이 무척 신기했다. 이러한 구도를 위해 두 장의 거울을 45도로 각각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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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인식하는 ‘나’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어 인상 깊었다. 잃어버린 정원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기인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영원히 우리의 모습을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잃어버린 정원’ 작품 앞에 서면,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이한 경험이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앞, 유리창 안쪽의 파릇한 식물을 감상하기보단, 대각선 너머 유리창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보기에 바쁘다.

 

그 시점부터 아름다운 정원은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잊힌다. 아마 이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대부분은 안쪽의 싱그러운 풀잎보다 신기함으로 물든 자신의 얼굴을 더 오래도록 감상하고 왔을 테다.


공간과 시각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한 전시, <바티망>.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감각을 비틀어 재해석하고, 감각을 의심하도록 유도한다.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며, 새로운 감각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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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리스트 명함.jpeg

 

 

[권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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