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너와 나를 통해, 앞으로 나가자! - 뮤지컬 '유진과 유진'

글 입력 2022.08.0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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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22)] 메인 포스터.jpg

 

 

뮤지컬 ‘유진과 유진’은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첫날, 두 명의 유진이 같은 반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작은유진은 큰유진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두 유진이 유치원 때 겪은 사건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며 둘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기억을 강제로 삭제당한 작은유진과 상처를 마주하고 살아온 큰유진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며 서로에게 위로를 전하며 그들이 가진 상처를 극복하는 이야기다.

 

‘상사화’, ‘홍연’으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 작곡을 맡았다. 그녀는 가벼우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를 전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큰유진과 작은유진이 가지고 있는 상처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사건임을 명시함과 동시에 그들이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 깊게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가볍고 단조로운 멜로디로 이루어진 음악이지만,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우울감을 견디기 힘들었던 두 유진이의 감정을 관객 또한 동일하게 느끼게 한다.

 

무대 위 2인조 밴드 첼로와 전자 피아노가 위치하고 있으며 두 명의 연주자는 목소리로 이야기에 참여함으로써 세 번째 배우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연주뿐 아니라 마라카스(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체명악기)를 사용함으로써 조용히 효과음을 더한다.

 

내 안에 갇혀 있던 또 다른 어린아이

나를 위해 울어주던 너 또 다른 나뿐이야

내 옆을 돌아보면 수많은 나의 모습

나를 위해 손을 뻗는 건 또 다른 나뿐이야

손 내밀어 손 내밀어 손 내밀어

 

-  '손 내밀어' 中

 

극은 작은유진과 큰유진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그들은 지금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들의 엄마의 나이가 되어 있다. 그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상처에 있어 마침내 극복하고 있다. 무대는 두 유진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책상과 의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책상 위에 의자를 쿵쾅거리며 내려놓는 연출을 통해 도망칠 곳 없이 고립된 유진이들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들의 절망적인 마음을 드러낸다.

 

또한, 분리되어 있는 두 유진의 공간은 학교, 바닷가, 거리 등으로 빠르게 전환된다. 무대 위에 설치된 모니터에 나타나는 애니메이션 화면과 두 유진의 엄마를 형상화하는 인형은 이 무대에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동화적이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임찬민 강지혜-9.jpg

 

 

2인극으로 진행되는 극에서 두 인물은 같은 이름인 ‘유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큰유진’과 ‘작은유진’으로 불리게 된다. 이때 ‘큰/작은’이라는 형용사와 ‘유진’이라는 고유명사를 떨어뜨리지 않음으로써 형용사가 명사를 수식하는 부가적인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고유명사로 만들어버린다. 또한, 무대에서 보이는 모습과 달리 큰유진이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고, 작은유진이 상대적으로 체구가 크다. 이 지점이 바로 통상적인 견해를 깨는 지점이다. 보통은 반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극 속에서 이러한 수식어가 붙을 당시에는 작은유진이 큰 유진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라고 묘사되고 있으나 이런 의미만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상처받은 사건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에 대한 차이를 나타내는 수식어라고 생각된다. 큰유진은 자신이 가진 상처를 당당히 마주하고 있으며 기억하고 있는 반면, 작은유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잊어버림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공부 잘하고 조용히 말썽 피우지 않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있던 작은유진. 그러나 수련회에서 같은 방을 썼던 다른 아이들의 강요에 의해 강제적으로 술과 담배를 하게 되고, 이후 작은유진은 심각한 죄책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이런 고민을 말할 수 없다. 결국, 작은유진은 자신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위로해 주지도 않는 부모님의 모습에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하게 되고, 부모님 몰래 가발을 쓰고 춤을 추러 다니기 시작한다.

 

반면,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라고 하는 큰유진. 공부 잘하는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을 골칫덩어리로 생각하는 부모님에 항상 밝고 활기차 보이는 큰유진이지만,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는 미운 오리 새끼, 꽉꽉꽉”을 반복해서 말한다.

 

특히, 큰유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아이(건후)의 어머니한테 “그런 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무너진다. 큰유진과 작은유진이 유치원 원장에게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을 도와주던 어린이 인권 운동가였던 건후의 어머니 또한 결국 큰유진이 잘못해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문제 있는 아이’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모두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은연중에 피해자인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작은 소녀였던 때에 당했던 사건들은 그들을 평생 따라다니고,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하에서 피해자가 얼마나 큰 2차, 3차 그 이상의 피해를 입고 있는지를 절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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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는 사건에서, 대부분 피해자는 평생 그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힘들게 살아가지만, 정작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두 유진이들이 겪은 형사적 사건뿐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사사로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에 해당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사건들을 겪는다. 그리고 아마도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소하든 사소하지 않든 말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이 극을 보면서 자신의 아픈, 그리고 잊고 살고 싶어서 내면의 심연 속에 감춰두었던 기억들을 꺼내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두 유진이들이 결국에는 극복해 낸 것처럼, 관객들도 그 아픔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함으로써 그 자신에게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따뜻한 위로를 전하게 한다. 이런 연출은 내 안의 어린 자아와 화해하는 방법인 ‘이너 본딩(inner bonding)’ 치료법을 떠올리게 한다. 즉, 본 극은 연극치료의 일환으로서의 기능 또한 가지고 있다.


 

극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연극치료 작업 안에서 치료자와 참여자는 배우와 관객으로, 역할을 교류하며 만난다. 연극이 치료로 가능하는 근거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그것이 안전장치라는 것인데, 이는 다루어지는 내용이 기존의 극 또한 이야기라는 허구일 때 더욱 그러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흥부놀부처럼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 작업할 때, 참여자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그 역할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참여자의 주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참여자는 미처 모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즉 간접경험인 것 같으면서도 직접 경험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중첩은 결국 은유와 상징을 통한 원형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실체와 만나게 된다. 연극치료 과정은 외면화를 통한 내재화 즉 outside in을 위한 감정 중심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박미리, 「연극치료의 이해-수용과 전망」,『한국예술연구』 6,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2012.)

 


이런 효과는 특히 ‘인형’을 통해 두드러진다. 작은유진의 엄마와 큰유진의 엄마는 무대 위 인형으로 형상화되며, 이 인형을 들고 작은유진과 큰유진이 서로의 엄마 역할을 대신한다. 작은유진의 엄마는 언제나 작은유진에게서 등을 돌린 채 서 있었고, 그녀는 딸에게 한 마디의 따뜻한 말조차 건네 주지 않으며 모든 말은 감정 없이 메말라 있다. 반면 작은유진의 엄마는 딸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감정적인 인물이다. 이 두 엄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과 그 상처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는 방법은 다르다.

 

하지만 그들도 그런 사건이 처음이었고 어린 나이에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고군분투했다. 작은유진의 엄마를 큰유진이, 큰유진의 엄마를 작은유진이 연기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작은 유진이 그 자신의 엄마 역할을 하며, 큰유진이 그 자신의 엄마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그들은 자신이 엄마로부터, 사회로부터 받고 싶었던 진정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 낸다. 그리고 자신들의 엄마의 행동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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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유진은 그 사건을 겪었던 당시의 그들의 엄마의 나이가 되었고, 이제는 웃으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상처를 받아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한다. 이제 나에게도 그런 힘이 생긴 것 같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큰유진과 작은유진은 극을 시작했던 첫 넘버인 “손 내밀어”를 다시 부른다. “니가 내 곁에 있어서 나는 다시 웃을 수 있어. 니가 내 곁에 있어서 나는 나를 사랑할 거야 상처받은 가슴 아물게 해. 이제 괜찮아, 우린. 가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질 거야. 또 다른 내 안의 손을 놓지 않는다면.”

 

처음 극을 시작할 때는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기 때문에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였다면, 마지막 넘버로서 리프라이즈(reprise)될 때는 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극복해 냈기 때문에 보다 밝고, 희망적이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여정을 떠올리며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한 번 이겨보자!

맘대로 한 번 살아보자!

 

 

 

프레스 김소정 명함.jpg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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