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의 행복을 유예하는 습관 [문화 전반]

오늘치 행복을 유예하지 마세요.
글 입력 2022.08.0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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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다 똥 된다.'라는 말을 꽤 어릴 적부터 체감하며 살아왔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이 말을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은, 아마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제일 맛있는 반찬을 아껴 두었다가 맨 마지막에 먹는 편이었다. 장난기가 심한 우리 아빠는 어린 나를 놀리고 싶은 마음(으로 믿고 싶다)이셨는지 매번 이런 말을 하셨다.


"너 이거 안 먹을 거면 아빠가 먹는다~"


식사 시간 내내 아껴 먹던 소시지 한 쪽이 아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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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나왔다면 숱하게 들었을, '대학 가면 네 마음대로 해라.'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나도록 들어왔다. 나는 그 말만 철석같이 믿은 채로 내가 대학생이 될 날만을 기다려왔다. 나의 모든 계획을, 대학교 이후의 삶으로 미루어 둔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야간 자율학습 시간마다 옆자리 친구가 PMP에 담아온 아이돌 리얼리티를 같이 보자며 나를 유혹할 때마다 정중히 거절하였으며, (물론 매 순간 참지는 못했다) 이 시기에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는 또 어찌나 많던지…. '보고 싶다.'는 마음을 위시리스트에 애써 꾹꾹 눌러 담으며 참기로 했다.


하지만 '대학 가면 네 마음대로 해라.'라던 엄마의 말은 '독립하면 네 마음대로 해라.'로 슬그머니 수정되었고, 수능만 끝나면 꼭 정주행 하겠다 다짐했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오빠들 중 한 명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마음 편히 프로그램을 소비하기에 껄끄러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난날 내가 적어놓은 위시리스트 속의 영화나 드라마 중에 내가 제대로 본 것은, 한 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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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무언가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이럴 때가 아닌데…'라며 나 스스로를 자주 다그치곤 했다.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해도 모자를 시간에 내가 과연 딴짓을 해도 될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근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딴짓'을 참음으로써 내가 그만큼 해야 할 일에 온전히 집중했나? 그건 또 아니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딴짓 생각에 집중력을 잃을 때가 오히려 많았다. 딴짓의 마음을 억누르며 무언가를 했던 시간보다,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도 소소하게 수집했던 딴짓의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더 선명히 새겨져 있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자주 곱씹게 된다.


물론 당장의 행복을 유예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들이 분명 있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나의 무분별한 K-POP 소비를 여러 사람들이 말려준 덕분에 겨우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듯, 지금 당장 무언가를 꼭 해야만 하는 시기에 그것을 함으로써 놓치지 않는 것들이 분명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 유예 습관이 평상시까지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이럴 때가 아니'라며 미루는 습관. 매번 '이럴 때'가 아니라면, 그럼 대체 우리에게 '이럴 때'란 언제 오는 걸까?

 

*

 

여느 때처럼 유튜브 영상 속을 헤매던 중,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꿈을 어떤 지점에 두지 않고 그냥 지금으로 계속 갖고 오는 거예요, 현재로.

내 꿈은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니까.*

 

 

'이럴 때'만 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늘 미래에 머물러 있었다.

 

식사 마지막에 소시지를 먹으며 행복할 나, 대학생이 될 나... 하지만 내가 기다려온 미래는 늘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미래의 나에게 유예해온 행복은, 나에게 온전한 만족감을 주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았다.


이제 나는 현재의 행복을 더 이상 미래의 나에게 미루지 않으려 한다. 매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어 두었던 친구와 약속을 잡아야지. 그리고 우리는 동네 피자집에서 맥주를 함께 마실 것이다. 오늘 어치의 행복을 미루지 않고, 오늘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연LEEYEON,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2022.05.11.일자 유튜브 영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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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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