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무리 찾아도 구원은 없었다

세상에 구원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글 입력 2022.08.02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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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구원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힘든 날들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도 힘이 들었고 매일 시작되는 하루가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새벽까지 깨어있는 날이면 으레 우울이 찾아왔고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서성이곤 했다. 그날들은 나에게 삶의 정답은 죽음일 수도 있다고 소근댔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구원해주기를 바랐다. 지난한 일상이 버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구원은 나를 방문하지 않았다. 구원자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애타게 구원만 찾던 힘겨운 밤, 나는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나를 구할 수가 없다는 걸 서글프게 깨달았다. 외부의 개입이 없는 나 혼자만의 감정은 그자체로 나를 아프게 했다. 그때는 그게 많이 서러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그저 살아있기만 했다. 어떻게 하면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걱정도 했다.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느라 힘이 드는데 나는 제자리 걸음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 우스웠다. 그런데 정말 살다보면 살아졌다. 어느 날 나를 돌아보는데 무수한 발자국이 찍힌 곳이 내 뒤에 있었다. 바로 뒤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지만, 그래도 저기와 여기는 다른 곳이었다. 그 순간 살아있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감정은 아직도 나를 설레고 벅차오르게 한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구원은 나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도록 버티게 만든 순간이었다는 걸. 내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건 이해와 공감, 그리고 위로였다. 그리고 이것들은 내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주변사람들이 만들어준 상황이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걱정 어린 목소리, 우울이 비집을 틈이 없던 즐거운 시간, 나를 향한 사소한 배려와 관심. 그 속에서 나는 개입할 수 없는 감정에 갇힌 ‘혼자’가 아니었다.


추운 겨울 날, 조용한 거리 위에서 문득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가벼운 전화였는데 무슨 일이 있어서 연락했을까봐 다급히 안부를 확인하는 목소리가 나를 살폈다. 쓸쓸하던 거리가 순식간에 온기로 가득 찼다.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그 짧은 시간, 안부를 묻는 목소리에 전부 묻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주변 사람들이 나의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무리에 쉽게 섞이지 못하거나 이해받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고독한 순간이 있었다. 굳이 어딘가에 소속되려 하지 않았고, 소속감을 구하지 않았지만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과 공간이 너무나도 작고 적어서 힘들었다. 그래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 나를 공감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심했고 안정됐다. 그러니 나에게 그들은 구원과 닮아있었다.


최근에 구원에 대해 들은 말이 자꾸 나를 맴돌았다. 누군가의 말에서 어떤 울림이 있었고 그래서 구원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한 거라는 이야기. 구원 이후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원 이전보다는 좀 더 그럴싸한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보다 한 걸음은 앞으로 나아간 사람,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 사람. 이전과 이후를 가지고 있는 사람. 지금 구원 이후를 살고 있다는 건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버티게 한 순간은 누군가가 주고 간 것이 아니라 같이 있어서 완성된 것이므로, 어쩌면 구원은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어린 날의 나는 구원이 뭔지도 모르면서 구원을 찾았다. 사실 너무 힘들어서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아플 때 약을 찾는 것처럼 구원을 구했던 것 같다. 그것만 있으면 다 나아질 것 같았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구원이었고, 나를 구원해낸 것 중엔 내 의지와 무의식도 있었다. 나도 나를 구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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