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는 사람 [문화 전반]

열광할 줄 아는 사람
글 입력 2022.07.3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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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상승가도를 달리는 박은빈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다 '스토브리그'를 보게 되었다. 만년 꼴지인 야구팀에 새로운 단장이 부임해오면서 생기는 사건들을 다룬 이야기인데, 그 전부터 호평이 자자했던 드라마라 이번 기회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 없이 재생하게 되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최근 스토브리그를 정주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가감없이 기쁨을 표해주어 왜인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다가 이번 주제가 떠올랐다. 그건 바로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는 사람.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건 조기 축구회, 주말 골프 회동, 동네 야구나 동네 농구처럼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뛰는 것도 해당되지만 나는 오늘 응원석에 앉아 목이 터져라 응원하거나 집 소파에 맥주 한 캔을 들고 앉아 탄식과 박수를 번갈아 쏟아내는 모습에 좀 더 주목하고 싶다.

 

삶을 돌이켜보면 나는 스포츠 종목을 즐겨본 적이 없다. 고향 도시에는 야구팀이 없었고, 축구와 농구팀은 있었지만 아쉽게도 직관을 가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 대학을 삼성의 홈그라운드인 대구 쪽으로 가게 되었지만 처음 간 야구장에서는 우천 취소로 인해 철 지난 영화나 봐야 했다.

 

날씨에 따라 직관 가능 여부가 달라지는 야구는 불확실성으로 기억되었고 그 후 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쁜 내색이나 적당히 했고 아쉬운 성적을 거두더라도 해당 스포츠의 팬인 친구의 기분이나 맞춰주었다. 나에게 스포츠란 어색한 누군가와 나누는 한담의 다양성을 위한 주변의 요란한 이벤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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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작년 한국 프로야구가 개막하던 때 처음으로 스포츠 관람이라는 취미가 근사하다고 생각 했다. 대학원 졸업시험을 준비하느라 바쁜 시기에 야구를 챙겨보고 심지어는 기차까지 타고선 '원정(응원하는 팀이 다른 지역에서 경기를 치를 때 현장에 가서 응원하는 일)'을 갔다. 야구팬을 자처하는 친구들을 한꺼번에 많이 만나면서 그들을 따라 인천 랜더스 파크에 가서 공식적인 첫 직관까지 즐겼다. 룰도 복잡하고 선수도 많은 데다가 경기 시간까지 긴 야구라는 스포츠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호흡하고 간절히 응원하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흡수하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한 번의 직관으로 작년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SNS에서 그 전이었다면 지나쳤을 것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축구를 보러 축구장에 가는 친구, 응원하는 야구팀의 굿즈를 입고 사진을 찍은 친구, 김연경 선수가 있는 배구팀을 응원하러 같이 갈 사람을 구하는 친구, 좋아하는 농구선수의 팬 사인회에 참석한 친구 등. 이들이 사진과 함께 남긴 코멘트를 읽으며 피식 웃음이 났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스포츠가 없이 지나온 삶의 시간이 아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떻게 하면 스포츠를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나에게 맞는 스포츠는 무엇일까, 스포츠에 빠져들 수 있는 계기는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큰 수확은 없었고, 스포츠 선배님들의 삶을 좀 더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이번 프로 야구가 개막했다.

 

SNS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들의 모습을 보고 또 삶을 대하는 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열광할 줄 안다는 거다. 꼭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 횡재나 가위바위보 같은 사소한 승리에 눈치 보지 않고 쾌재를 부르짖을 줄 알고 마음을 다해 기뻐할 줄 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근사해 보인다.

 

경기장에서 열과 성을 다해 '내 팀'을 응원하고 실책에는 조금 거칠더라도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촌스럽고 우스우며, 점잖은 표현만이 어른스럽다고 여기는 세상을 활기차고 신선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들이 바꾼 게 세상뿐이던가. 나의 태도까지 바꿔버렸다. 기쁨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던 나에게 새로운 표현 방식을 알려주었고 즐거움을 오롯이 표현하는 법을 몸소 보여주었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 나는 한때 조바심을 느꼈다. 타인에게 스스로의 매력적이고 근사한 모습을 뽐내고 싶은 건 당연지사. 나도 하루빨리 좋아하는 스포츠를 만들어서 열광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적이 있다. '팬심'을 흉내 내보려 야구장에서 응원가를 따라 불러 봤던 적도 있고, K-리그 축구 대전표를 보며 지역 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 중 연고가 있는 경기를 찾아보기도 했으며 농구 표가 생긴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졸라 보기도 했다. 대부분 큰 감흥 없이 식어갔지만, 나에게는 가능성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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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은 덥고 사람이 많아 싫다고 단칼에 거절했던 내가 이제는 스케줄러를 열어 일정을 확인한다. 채널을 돌리다 스포츠 채널에 오면 곧장 다른 채널로 돌렸던 내가 이제는 무슨 종목의 무슨 경기인지 확인은 한다. 매력적인 사람이 모두 스포츠 종목을 하나씩 선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듯이, 즐기는 스포츠 종목이 없는 사람이라고 모두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층 더 매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서 '아직 즐기는 스포츠가 없는 사람'으로 발돋움 했다. 근소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가능성의 유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아직 계기가 없었고 인연이 없었던 것뿐이다.

 

글을 읽는 당신이 나처럼 아직 좋아하는 스포츠를 찾지 못했다면, 우리의 삶에 스포츠를 끼워 넣을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현장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응원하고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적힌 굿즈를 사입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와 동질감을 느끼고, 경기 결과에 희비가 교차하는 경험을 일상에서 느끼길 바란다. 누군가는 방구석 중계 캐스터라 비난할지라도 팀에 대한 애정만으로 아쉬운 실적에도 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는 삶이 우리의 것이 되길 바란다.

 

 

[오영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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