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하려다 만 괄호 속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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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력 2022.07.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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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틀면 <힐링캠프>, <무릎팍 도사> 같은 인터뷰 프로그램이 한창 높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부모님과 거실에서 TV를 보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두근거렸어요. 이다음에 커서 내가 저런 프로그램에 나온다면?! 이라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는 이런 대답을 해야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만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저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기도 했고 오래 고민해왔던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게 된 후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생일이 지나고, 늘 앞자리였던 제 키 번호가 뒷번호가 될 때쯤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것도 황금시간대 방영되는 TV 프로그램의) '나'를 주제로 한 인터뷰를 받아볼 일은, 아주 드물겠구나.


그래서 그만두었습니다. 도무지 효율적이지 않았으니까요. 이루어질 확률이 희박한 일에 시간을 쏟기에는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급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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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마다 적는 자기소개 장래 희망란에 거침없이 미래 직업을 써 내려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수험생이 되고 나서는 다른 친구의 독서실 책상 위에 올려진 수능완성 교재를 보면서 조급했습니다. '나는 아직 수능특강 교재도 다 못 끝냈는데...'


그렇게 대학에 진학하고 난 뒤에도, 학교생활은 물론 대외활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 아래에 수많은 대외용 자기소개서 양식을 다운로드하면서 항상 고민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이런 말까지 여기에 적어도 될까?', '이렇게 적으면 안 뽑히겠지...' 이 질문들 앞에서 살아남은 답변들만이 텍스트로 완성됐습니다. 이게 진짜 나를 소개하는 '자기소개'가 맞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매번 전송 버튼을 눌렀고요.


어린 시절 깜깜한 방 안에서 나 혼자 던지고 답했던 이야기들, 자기 검열 속에서 홀로 삼켰던 문장들, 썼다 지우면서 이내 한글 창 안에서 사라져 버린 말들을 붙잡아 이곳에 기록해 보려 합니다.

 

*

 

서론이 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백소현입니다. 대외용 자기소개서에는 쓰지 못했던 제 이야기들을 몇 가지 단어들을 통해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조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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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미 고백했지만, 어쩐지 항상 뒤처진 기분에 쫓기듯 삶을 살아왔습니다. 남들만큼의 평균은 되어야지!라는 다짐에서 이 평균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늘 안갯속에서 헤매는 기분이라고 하면 이해가 가시려나요. 이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기가 가장 어렵다는 건, 그 뒤로도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후였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너무 많이 달라져 버린 나의 생활 반경과 대인관계 속에서 스스로 멍청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습니다. 나보다 앞서 달리고 있는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빠르게 달리는 방법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빠르게 해치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으로 이게 어디까지 적용이 되었냐면은요, 다양한 분야에서의 속독뿐만 아니라 여가 시간에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볼 때에도 1.5~2.0배속으로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1.5배속이면, 같은 길이의 1.0배속 영상을 1.5개를 더 볼 수 있다는 계산에 지배당해버린 거죠. 이젠 1.0배속의 영상들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열등감



조급함이라는 마음에 세트메뉴가 있다면 단연코 열등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준치가 타인에 맞춰진 까닭에, 전 이 두 감정에 자주 휩싸이곤 했어요. 특히 제겐 이상하리만큼 글쓰기에 대한 욕심과 열등감이 컸습니다.


제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매달 '교과논술'이라는 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가 여러 학생들을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한, 일종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학교의 바람과는 달리 이 교과논술은 소수의 쓰는 애들만 열심히 쓰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긴 하지만요.


그 달의 교과논술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친구는 방송실에 가서 교장 선생님이 직접 상을 건네주셨습니다. 월마다 방송실에 가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이쯤 되면 예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3년 내내 방송실에서 상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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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성실하게 분량을 채우고 '나도 최우수상을 받아보고 싶다.'는 간절함을 더해도, 늘 최우수상은 탄 적이 없다는 사실이 어찌나 속상하던지요. 방송실에 자주 얼굴을 비추던 (그러다 이름까지 외워버린) 친구를 향한 열등감은 학창 시절 내내 저를 괴롭히곤 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학기에 딱 한 번 우수상을 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수상의 기쁨보다는 '나는 노력해도 우수상만큼의 글만 쓰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껏 즐거워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글을 기고하는 많은 분들의 글 안에서 저와 같은 마음을 고백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더 잘하고 싶어서'라는 이 마음. 열등감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취급되곤 하는 이 마음은 어쩌면 애정에서 파생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쓰기에 애정을 가진 분들이 모여있는 이곳에서 이런 제 마음을 펼쳐 보이고 나니 조금이나마 후련해지네요.


그런데, 제가 학창 시절에 부러워했던 그 친구도 지금 나처럼 계속 글을 쓰고 있을까요?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노년운



매번 사주를 보러 갈 때마다 모든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제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제 노년운이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립 서비스로 생각하고 넘겼는데 인터넷으로 가볍게 보는 사주풀이에서도, 용하다는 사주 집에서도 이런 말을 계속해서 듣다 보니 '나는 진짜 노년운이 좋은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느새 이 말은 제가 힘들 때마다 저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문장이 되었어요.


하루종일 욕을 잔뜩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개인적인 일들로 인생이 조금 버겁다고 느껴질 때마다 저는 이 말을 되뇌곤 합니다. 그럼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요. 지금 제가 겪는 시련과 힘듦이 모두, 앞으로 내게 찾아올 나의 '노년운'을 위한 빌드업 과정처럼 느껴지거든요.


안 믿기신다요? 여러분도 좋아하는 한 구절을 찾아서 한 번 중얼거려보세요. 이게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보는 것과 입 밖으로 내뱉어서 자주 듣는 건 엄청난 차이라니까요.

 

*

 

생각의 흐름대로, 하나의 질문에서 뻗어나가는 여러 저의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질문에 대한 답변이 길어지게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이고, 이 글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이곳에서 써 내려갈 글 속에서 조금씩 풀어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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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저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한 쪽 귀퉁이를 접어두는 습관이 있는데요, 이대로 글을 끝내기 아쉬워서 최근에 제가 접어두었던 문장을 소개하고 싶어요.


 

이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저 사람도 나처럼 못 쓸 것이다. 나보다 잘 쓸 수는 있겠지만 나와 똑같이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시는 수십 년간 쌓아온 나의 고유성이니까. 나의 역사를 통해 나만이 획득한 시선과 벼려온 감각이니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단점이라 느꼈던 내 안의 미운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저의 열등감은, 저로 하여금 계속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으니까요.


물론 가끔 이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제 마음을 콕콕 찌를 때가 있습니다. 근데 어쩌겠어요. 나 스스로 '내 주머니 안에는 날카로운 못이 있구나.'라고 의식하고 조심하면, 못에 찔려 아파할 일이 조금은 덜 생기지 않을까요? 얘네들 덕분에 이렇게 저만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 하나가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저는 무언가를 쓸 때의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 긴 글을 읽어내려온 여러분에게도 글쓰기가 괴로움보다는 행복에 가까운 명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당신도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이야기가 궁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아이유, <시간의 바깥> 속 가사를 인용하였습니다.

**고르고 고른 말, 홍인혜, 미디어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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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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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월
    • 담백하게 자신을 보듬는 듯한 글이었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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