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꼭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 - 연극 가별이를 찾아서

답이 없는 선택지가 가장 어렵다
글 입력 2022.07.1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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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배우들은 분주하다. 급히 어딘가로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와 몸을 낮추고 두리번거린다. 찾고 있는 대상이 가별이라는 것은 극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무대 위를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가별이도 있다.

 

그럼, 이들은 무엇을 찾아서 이토록 불안한 표정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일까.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그들은 한 지점에 우뚝 서서 가별이의 독백을 듣는다. 나도 덩달아 숨을 죽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별이를 찾아서] 포스터.jpg


 

 

“나는 덜 자랐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이 어렵다.

 

극 초반 가별이의 독백 중 하나인 ‘나는 덜 자랐습니다’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른과 성인은 다른 게 확실하다. 근거를 꼽자면 둘의 사전적 정의가 다르고, 어른스럽다는 말은 있어도 성인스럽다는 말은 없다는 것 정도겠지만.

 

사전적 정의를 살펴볼까. 국가가 정의하는 성인은 만 19세 이상의 남녀다. 주민등록증이 그들의 성인을 인증하고, 대학이나 직업이 그들의 신분을 대표하기도 한다. 반면 어른의 정의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자, 그럼 언어적으로 ‘할 수 있다’를 분류해 보자. 할 수 있다는 보통 가불 여부와 구체적인 능력 여부로 나누어 해석한다. ‘당신은 어른입니까?’ 라는 문장을 두고 보면 이는 곧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책임지는 일을 해낼 수 있습니까?’로 풀어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인가?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다 자란 거 같지 않다. 직장인으로서 내 업무에 책임은 져야 하니 일단은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더러 내 인생을 온전히 책임지라하면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지금도 내 인생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가끔은 연인이 함께 구성하고 있는 것을…….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는 병원을 가야할 때를 스스로 알았을 때, 다음 날을 위해 노는 것을 중단하고 집에 들어갈 때처럼 사소한 날들이다. 그런데 훌륭한 어른이 되라니. 너무 어렵다.

 

가별이의 부모님은 가별이더러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지’라고 끊임없이 압박한다. 한참 노는 것이 즐거울 초등학생부터 직장인이 되기까지 줄곧. 훌륭한 어른이 되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그들은 훌륭한 어른이 되는 목표를 가별이의 눈앞에 들이민다.

 

훌륭한 어른이 무엇인가요? 그에 대한 답변을 누가 줄 수 있을까.

 

 

 

방황은 여정



다시 내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나의 성장과정은 혜나와 가장 닮아있다. 나는 대체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살았고, 부모님 역시 나의 선택들을 크게 막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가장 처음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 대학이 될 것임을 가끔 짚어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말을 대체로 잘 들으며 자랐다. 대학을 가면서 달라진 지역 때문에 집에서 떨어져 나왔고, 갑자기 얻은 자유는 삶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혜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혜나가 공부하기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딴죽을 거는 타인의 간섭을 막기 위해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서 하는 행동들에는 그만큼 자유도와 인정이 주어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나도 이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 때문에 열심히 서울권 대학 진학을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를 얻어냈다.

 

그리고 나서는 한참 방황했다. 혜나는 대학을 가는 것이 하나의 수단일 뿐, 실제로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지만 나는 그저 대학 진학과 상경만이 목표였다. 목표를 이루었으니 방향을 잊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긴 여정이다. 어떻게 살아갈지, 나의 중심은 어떤 것인지 찾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빠르게 흘러간다. 대부분이 가별이처럼 사회의 일원이 된 이후에도 삶의 목적을 잃고 이리저리 부유하는 삶을 산다. 이것이 보통의 삶처럼 된 것이 안타깝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두고 임시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 한 달 살이가 유행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좋은 말로야 한 달 살이고 여행이지, 극적인 해석으로는 가출이 아닌가. 이렇게 일탈을 꿈꾸는 성인들만 있는 사회에서 훌륭한 어른을 부르짖는 것은 어쩐지 우습기만 하다.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입버릇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주문하던 부모님에게 가별이가 ‘훌륭한 어른이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그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장막 뒤로 사라진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웃기는 했다.

 

웃음의 끝 맛은 썼다. 사실은 부모님도 정확히 훌륭한 어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단지 가별이의 부모님만의 꿈은 아니다. 그냥 그 세대 이전부터 단단하게 굳어버린 습관 같다. 아주 당연해진 어떠한 약속일지도 모른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지휘 아래 춤울 추는 아이들의 모습은 춤이 아니라 경기를 일으키는 것만 같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나는 가끔 나는 당연한 것들이 어렵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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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모니카, 그리고 나



바다로 가자.

 

일 년의 반쯤이 꺾이면 무조건 바다를 간다. 여름이니 시원한 바다를 찾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반년 동안 마음에 묵힌 것들을 내보내기 가장 좋은 배출구가 바다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보면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바다를 보아야겠다고 떠나려는 마음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가별이는 역시 바다를 찾아 떠났다. 가별이는 속초에 있었다. 얼마 전 속초에 대한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다. 속초에서의 가별이는 잘 웃고 이전보다 자유로운 옷차림이다. 직업도, 집도 없는 불안정적인 상태지만 텅 빈 눈과 마음이 되기 전에 웃음을 얻었다.


경준이 다시 등장하며, 그들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극이 마무리된 것이 아쉽기는 했다. 자유롭고 싶어서 살던 둥지를 박차고 나간 모습을 응원했다. 나에게는 없는 용기이면서, 시원하게 기대를 무너뜨리는 장면이었으니까. 그런데 하필 다시 내려앉을 곳을 찾아온 것이 사랑이었기 때문에 너무 일시적이지 않나 걱정이 됐다. 가별이를 찾아온 것이 꾸준히 그녀를 응원하고 꾸준히 기다려준 혜나가 아니라는 점도 조금 아쉽게 비쳤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가별이에게 경준이는 탈출구였다. 자신의 단조로운 일상을 응원하고 기꺼이 그것들을 받아들여준 사람을 어떻게 외면할까. 그렇게 애틋한 감정을. 늘 경준이가 내민 손을 잡기만 하던 가별이가 먼저 손을 내민다. 웃을 줄 알고, 하모니카도 불 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경준이의 손을 잡기로 한 그녀의 결정 역시 성장의 한 단계로 이해하기로 했다. 내일 어디 갈지는 몰라도, 원하는 것을 당장 찾지는 못했어도, 지금 행복해서 다행이다. 지금 좋으면 됐지. 지금 좋으면 됐어. 친구처럼 응원하던 가별이의 일정이 끝나고 다시 내 일정을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오늘도 착실히 퇴근 보고를 마무리하는 직장인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어른이 되기 싫다.

 

애써 어른이 되려는 세상의 모든 가별이와 세상이 내 옆에 존재한다면 나는 같이 하모니카를 불어주는 친구만 되고 싶다.(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하모니카부터 배워야 한다) 그럼 언젠가는 그 친구도 같이 하모니카를 불지도 모른다. 찰방찰방 발밑으로 밀려드는 속초 바다에 반쯤 잠기어서 사실은 어른이고 뭐고 지겨워 죽겠다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그들이 필요하면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만 되어도 내가 꿈꾸는 어른의 모습으로는 충분하다. 그러니까 나는 수많은 가별이에게 어렵고 훌륭한 어른은 됐고, 적당히 잘 살자고 말하고 싶다. 하모니카도 불고 한 달 살이도 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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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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