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지의 세계는 바로 여기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7.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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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카페가 생겼다. ‘단골’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자주 가는 곳은 한강 밖에 없었는데, 한강은 돈을 지불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건 아니니까 ‘단골’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좀 어색하다. 친구들의 말처럼 ‘한강에 금송아지 숨겨 놓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

 

카페까지는 집에서 걸으면 7분 정도 걸린다. 너무 가까우면 굳이 집을 나섰다는 기분이 안 들고, 10분 이상 가야 하면 귀찮으니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딱 적당하다. 단골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마음에 쏙 드는 아인슈페너를 발견했기 때문인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도 나의 플레이리스트와 흡사해 따로 이어폰을 꽂고 있을 필요가 없다. 카페 곳곳에 내 인생 영화들의 포스터가 놓여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맛있는 디저트와 친절한 직원들까지 단골이 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려웠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고 과제도 하고 떨어진 일을 할 때도 있다. 지금 이 글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제프 버넷과 김동률의 노래를 들으면서 쓰는 중이다. 거의 폭우 수준으로 비가 내리는데도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아마 오늘 새로 구운 에그타르트 때문일 거다. 나도 이걸 먹기 위해 이 비를 뚫고 왔으니까.

 

똑같은 카페만 가면 질리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비슷한 시간대에 가서 항상 앉는 자리에 앉아 늘 마시던 커피를 마시니 의문을 가질 만도 하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지겹다고들 하는데 나는 이걸 규칙적인 루틴이라고 생각한다. ‘정신 승리’라 여겨도 어쩔 수 없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데 조금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고 카페에서의 풍경이 늘 똑같은 건 아니다. 그저께는 비가 덜 와서 파란색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져서 초저녁엔 하늘이 일정하게 푸른 빛을 띠는데, 카페에서 보이는 여름 나무와 이 파란색 시간의 조화는 말그대로 환상이다.

 

오늘은 자동세차장에서 세차 중인 자동차에 앉아 있는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기압이 낮아서 그런지 커피머신 돌아가는 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깔리는 느낌이다. 옆에서 에그타르트 굽는 냄새가 코를 지나 머리 속에서 안개처럼 퍼진다. 직원들은 노래를 번갈아 고르고 바깥 풍경을 찍으며 휴식시간을 가진다. 늘 똑 같은 것 같지만 매일, 매순간 조금씩 다른 이곳이 나는 좋다.

 

돌고 돌아도 결국 이 카페에 오는 이유는 똑같은 하루는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반복해서 살아가는 행위에 일종의 위대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다. 매일 하는 공부도 어떤 때는 수월하고 어떤 날은 어렵다. 역시 난 공부를 즐길 줄 아는 변태인가 싶다가도 이제 공부는 더 못하겠다 싶은 날들의 반복이다. 요즘 하늘만큼 변덕스러운 감정과 상황을 보내면서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누군가가 성숙해지는 과정에는 기막힌 변화나 특별한 사건보다는 일상을 꾸준히 살아내는 반복 안에 있다는 생각이다.

 

평생을 정물화 작업만 반복한 작가가 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컵, 유리병, 주전자 등의 정물만 그려 ‘병의 화가’로 불리는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그에게 정물은 시각적 경험에 관련한 것이다. 하지만 정물화는 서양 미술사에서 신화, 종교, 역사적 사건에 밀려 오랫동안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7세기에 이르면 드디어 독자적인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하는데, 그 중에서도 정물화가 가장 많이 그려진 네덜란드에서 바니타스(Vanitas)화가 다수 제작된다. ‘인생무상’, ‘허무’를 뜻하는 바니타스는 그 상징으로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이나 깨지기 쉬운 유리컵을 화려한 보물이나 사치품 사이에 그려 넣음으로써 삶의 덧없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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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 <물잔과 주전자>

 

 

18세기가 되면 이에 반발한 작가가 등장한다. 샤르댕이다. 샤르댕은 바니타스 회화처럼 정물화 속에 어떠한 교훈이나 상징을 담는 데 관심이 없었다. 일상 속에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주전자와 컵을 공들여 관찰하고 그만의 분위기를 보여줬다. 그는 작고 평범한 사물들에 집중함으로써 일상적인 요소가 결코 홀대 당할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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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모란디, <정물>, 1960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람이 바로 모란디다. 모란디 정물화의 특징은 정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는 것에 있다. 특히 작가로서 성숙기에 들어선 1930년대부터 이러한 특성이 더욱 부각된다. 병, 컵, 그릇 등은 먼지가 쌓인 듯 뿌연 윤곽선으로 그려져 딱딱한 정물에서 오히려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1960년에 그려진 정물을 보면 병이 마치 배경에 침투된 듯이 벽과 사물의 경계가 신비롭게 표현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 소품에서 일종의 환상과 시각적 착란을 경험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각 사물의 개성을 일일이 감췄다는 점이다. 모란디는 병의 상표를 모두 없애 사물의 익명성을 강조했다. 또한 병 표면에 페인트칠을 해 빛이 통과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의 후기 정물화에서 그림자가 표현되지 않거나 다소 모호하게 그려진 것이 이 때문이다.

 

즉 모란디는 정물화라는 장르 안에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자연을 통제하고 자신만의 명확한 의도를 담았다. 왜곡된 자연을 만들고 이를 그려낸 그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진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모란디의 병 그림이 지루하거나 정형화된 정물화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 바로 이거다. 몇 십 년에 걸쳐 반복된 모란디의 작품은 그의 성장 과정이자 주변 환경을 다시 주목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라고 말한 모란디의 작품은 소박함과 고요함 속에서 인간의 눈으로 본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회화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이에 더불어 현실의 모순과 작은 변주로 달라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위압감을 주는 크기와 액션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성행하던 20세기 중반에도 그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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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모란디, <정물>,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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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모란디, <정물>,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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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모란디, <정물>, 1962

 

 

같은 주제로 평생에 걸쳐 씨름한 모란디를 보며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회복’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결과가 어떻든, 조금 돌아간다고 해서 멈추는 게 아니니 하루씩, 조금씩 성실하게 움직이라는 의미다. 모란디도 유사한 구성을 반복하며 매일 발전해 나갔다.

 

결코 머무르거나 퇴보하는 것이 아닌 무한한 변수를 추구한 그의 태도는 나의 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자극적인 재미만 쫓다 내가 정성 들여 반복해야 할 일들을 ‘지루한 것’으로 여기고 넘겨버린 일은 없었는지 말이다. 회화의 주제를 한정시킴으로써 오히려 노련함과 깊이를 보여주는 조르조 모란디. 그가 그린 1910년, 1940년, 1950년, 1960년의 병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단순한 병이 아닌 한 사람의 일생을 바라보게 된다.

 

모란디에 의하면 일상이야말로 늘 새롭게 발견할 것들이 있는 미지의 세계다. 그가 병의 겉면에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때로는 인위적으로 일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빛이 차단되어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정물을 우리는 ‘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니, 그건 피터팬 속에서나 등장하는 일이 아니던가? 더불어 그가 보여주는 일상 속 소재들의 형태, 구조, 색은 작품마다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내뿜는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행위가 갖는 상대성과 모순은 현실을 도저히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세계로 만들어버린다.

 

어쩌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현실 세계가 알 수 없는 추상으로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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