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엄마의 출발선 ②

엄마라는 사람의 처음을 마주하다
글 입력 2022.07.0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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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엄마의 출발선 ①' ([Project 당신] 엄마의 출발선 ①)에서 연결됩니다. 

 

이전 글은 미영이란 사람의 사회적 첫발, 직업적 변천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고, 본 글은 플로리스트로서의 미영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전 글을 읽지 않아도 내용 이해가 무방하지만, 하나의 인터뷰인만큼 모쪼록 읽어주시길 희망합니다.

 

***

 

해영 : 그럼 자연스럽게 2부로 넘어가 볼까요? 플로리스트로서의 삶을 더 다뤄보고 싶어. 특별한 계획 없이 시작했으니 무척 고생했다고 했잖아. 그 처음을 다잡아나가는 게 분명 어려웠을 것 같은데?


미영 : 그렇지. 준비 없이 뛰어들었으니까. 그저 배워서 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믿었어.


해영 : 믿음과는 별개로 부딪쳐야 하는 현실이 있지 않았어?


미영 : 우선 배운 게 없으니 처음엔 손님이 오지 않기를 바랐어.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주문하면 두렵고. (웃음) 미숙하게 일에 치이면서 배우러 많이 다녔지. 한두 시간 영월에서 클래스를 들었고, 꽃차 아주머니한테도 큰돈 주고 배우기도 하고.


해영 : 어떻게 보면 거꾸로 일을 벌인 거네. 먼저 준비하고,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라. 


미영 : 하면서 배운 거지. 내가 무대뽀 아니냐!


해영 :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정말 막막했을 것 같은데 놀랍다는 말밖에...


미영 : 다행히 일은 많았거든. 꼴이 말이 아닐 정도로. 예쁘장하다는 말을 많이 듣던 내가 무거운 것도 험하게 나르고. 그 와중에 애들은 어려서 밥을 못 챙겨 먹지... 돌이켜보면 내가 생각했던 예쁜 모습은 없었던 것 같네.


해영 : 기술이 좀 부족했는데 손님이 없진 않았네요?


미영 : 다행히 그 당시엔 시골 꽃집 수준이 거기서 거기였거든. 지금처럼 인스타(그램)가 발달해서 실력 편차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도 아니었어. 처음엔 먼저 운영하시던 분과 같이 일했고 또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러 다녔으니까 무던하게 칭찬을 들으며 잘 넘어갈 수 있었어.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른 꽃집과는 다르게 해보려고 서울 시장도 다니고. 트럭 기사님이 그만두고 나서는 내가 배워서 몰고 다니기도 했어. 


해영 : 결국 일을 만들고 지속시킨 건 무대뽀 정신이었던 거네요.


미영 : 그렇지. 난 좋으면 하는 사람, 계획성이 없는 사람이야. 좀 무식한 것 같기도 하네.


해영 : 그것도 용기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확신 없이 무언가 해보겠다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거든. 미영에겐 그런 용기가 기본적으로 있는 것 같아. 

 

시골 꽃집에 한정될 수 있지만 일이 이미지에 비해 험하잖아. 매번 먼 지역까지 좋은 물건 발품을 팔아서 옮겨와야 하고, 무거운 화분을 높은 층수까지 배달도 하고, 맨손으로 꽃을 다듬고 흙과 물을 만지며 분갈이를 하고, 가위질을 달고 살고, 허리 숙이며 물건을 옮기고. 동시에 손님을 응대하고.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고충을 겪어야 하잖아. 신기한 것이 그렇게 고생하면서 꽃집 일이란 게 생각만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란 걸 알았잖아? 막연한 환상이 깨졌는데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이 여전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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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 일이 힘들긴 해도 아름다운 것을 위해 하는 행위니까 여전히 좋아. 비록 힘들어도 나만이 전문적으로 예쁜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도 예쁜 일 아닐까. 또 사람들은 일이 이렇게 힘든지 잘 모르기도 해. (웃음) 아직도 예쁜 일을 해서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듣거든.


해영 : 타인의 시선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경우인가? 그럴듯해 보이는 직업을 선호한다고 꾸준히 말했는데, 들어보면 사실 미영은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기 시선에서 그럴 듯하고 예쁜 것이 훨씬 중요한 사람 같아. 자기 기준이 중요하니까 일하는 방식에도 미영의 성향이 묻어나는 거지. 사업은 기본적으로 영업이지만 미영은 그마저도 서비스의 형태로 운영하는 것 같아. 사실 이건 높은 차원의 사업 방식이잖아. ‘내 물건을 사주세요.’가 아니라, ‘내 물건 예쁜데 사가세요.’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이기도 하고.


미영 : 그런가?


해영 : 그런 것 같아. 미영의 노력들은 결국 자기 방식을 알고 존중했으니까 그것에 맞춰 일하려는 무의식과 의식이 작용한 것들 아니었을까.

 

 궁금한 게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어.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거야. 나온 지 한참 된 말이지만, 아직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 보여. 좋아하는 게 업이 되면 그걸 잃어버린다는 말도 있고, 좋아하는 걸 해야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말도 있고.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또 잘하는 사람인데 이 말은 어떻게 생각해?


미영 : 우선 내가 좋아하는 걸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에 편향되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걸 따른다면 좋겠지. 그런데 만약 내가 경제적인 기반이 부족했다면 그러지는 못했을 것 같아. 경제적 기반이 중요해. 나도 아빠가 따로 일을 했으니 어느 정도 부담이 줄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 경제적인 것을 원한다면 잘하는 걸 직업으로 삼고 좋아하는 일은 부수가 되어야 맞겠지. 그래서 지금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일이었음에도 나의 선택은 잘한 것 같진 않아. 


그래도 요즘은 SNS를 보면서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잘 배울 수 있으니 더 크게 꿈꾸어 볼 수는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처음 관심 있는 일을 시작해서 참고 버티고 배운 게 쌓여서 잘하는 게 될 수도 있고.


해영 : 그렇네. 잘하는 게 좋아하는 게 될 수도 있고.


미영 : 그럼. 꼭 ‘A는 B다’ 공식은 없는 것 같아. 나도 처음엔 관심이 있었던 거지 잘하기까지는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어. 좋아한다고 금방 잘해지지는 않아.


해영 : 잘하는 게 나중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우선 지금 상황에 맞춰서 시작해야겠네. 어떻게 나아갈지는 모르는 거니까.


미영 : 좋아하는 일이 하다 보니 잘 되면 더 좋고, 그냥 좋아하는 것에서만 끝날 수도 있고, 잘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까지 안 갈 수도 있고. 그래도 좋아하는 걸 하면 관심이 있으니 계속 찾아보게 되고 잘하게 될 가능성이 크겠지. 스트레스도 조금 덜 받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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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영 : 그런 마음만큼 계속 행동으로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 것이겠지. 


또 묻고 싶은 게, 비노동자로서 막연히 생각했을 때 일은 소중한 걸 지킬 수 있는 수단인 것 같아. 일이 주는 보상일 수도, 그 과정에서 얻은 무형의 부산물일 수도, 일 자체가 소중한 것일 수도 있겠지. 미영에게 일이란 어떤 것일까?


미영 : 나를 나타내는, 표현해 주는... 강미영이라는 사람은 이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것?


해영 : 자기 정체성 같은 것이구나. 지금 일이 자신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미영 : 그럼.


해영 : 일을 사랑하는 것이 계속 느껴지네. 그런 강한 애정과는 별개로 오래 이어온 꽃집 일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아. 인정도 많이 받고 아름답지만 개인에겐 무척 소모적이고 힘든 노동이니까. 이런 시점에서 지금의 커리어를 유지하고 싶은지, 완전히 다른 직업에 도전해보고 싶은지 궁금해.


미영 : 마치 정원처럼 나만의 공간을 정말 예쁘게 꽃으로 장식하고 싶어. 조그만 공간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차 한잔 마시면서 여유롭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거야. ‘아, 좋네. 편안하네.’라는 말이 나오게 아주 좋은 휴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해영 : 지금 하는 일에 열정이 생길 수밖에 없겠네요. 그 일 자체엔 동업도 하고 싶어요. (웃음) 일 얘기는 좀 많이 했으니까, 일 외에 자기를 살고 싶게 만드는 혹은 활력을 주는 것도 있을까요?


미영 : 방금 말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좋은 취미가 그럴 것 같아. 우선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그림 그리기를 생각하고 있어.


해영 : 그럼 아직 그걸 갖고 있지 못한 것인가. 지금은 업이 미영을 지탱하고 있는 것 같네.


미영 : 이 나이엔 비슷하지 않나. 자기 일에 기준을 두는 게. 다른 사람도 다 비슷한 것 같아. (침묵) 근데 인터뷰 값은 얼마나 주나요? (웃음)  


해영 : (멋쩍은 웃음)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가 처음, 시작을 앞둔 사람이 봤으면 하는 글이니까, 처음을 마주한 이들에게 무대뽀로서 해줄 말이 있을까? 나는 우선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


미영 : 그래. 결국 그게 어른이거든.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고.


해영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론 미영이 더 젊었을 시대에도 실패에 대한 위험이 컸겠지만, 지금 시대에서 처음을 맞는 사람들, 특히 청년은 도전하고 실패하면 다시 일어날 수 없다고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 무대뽀를 하기가 굉장히 부담스러워진 느낌?


미영 : 젊은 사람일수록 더 그렇겠지. 음... 그런 사람일수록 막연함으로 일을 시작하기보단, 궁극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을 해보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만약 경제적인 주체가 되려면 내가 했었던 방식은 안 되고 더 책임감 있게 말이야. 그러려면 자기가 생각한 일이 될 일인지 아닌지를 막연히 생각만 하지 않고 몇 번씩 체험해봐야겠지. 남 밑에서라도 2~3년 꾸준히 일을 해보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를 겪어봐야 알 거야. 계획하고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지. 그렇게 하려면 우선 부딪쳐서 경험해봐야 할 것 같아. 그 자체가 나를 만족시키는 일을 찾아가고 수행하는 과정일 거니까.


나도 꽃을 항상 좋아했지만, 화원 일이 첫 직업이 아니잖아. 그전까지 몇 가지 직업을 거쳤고, 분명 쌓인 것들이 있었을 거야. 그것들 없이 처음부터 이 일을 선택하기는 힘들었겠지. 그 시기가 참 중요한 것 같아. 다양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났던 게 재산이 되었던 거지. 


그러니까 좋아한다고 무작정 달려들거나, 단 하나의 경로와 시도로 끝을 볼 것만은 아니라, 우선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에서 작은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지. 그럼 실패할 확률이 낮아지지 않을까?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도 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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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날 각종 매체에서 접했던 경이로운 태도의 어른을 현실로 마주했다. 바로 ‘일단 해’라고 외치는 ‘무대뽀인(人)’이다. 그들은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혹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외치며 살아간다. 삶에 대한 티끌의 의문 없이 앞으로 발걸음을 떼는 이를 눈앞에서 마주하니 마련했던 질문들이 초라해 보일 때가 많았다. 

 

처음의 선을 넘어가는 데에 필요한 건 어떠한 말로는 끄집어낼 수 없는 것들의 덩어리였다. 아니, 그를 보고 있자면 이젠 그런 게 과연 필요한 건지도 의문이 든다. 다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굳건히 당당한 용기를 가졌다 해도 출발선 뒤에서 느끼는 두려움까지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일종의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삶을 살아갈 당찬 용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인생의 결격 사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다. 

 

살아가는 데는 특수한 조건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내 상태를 충분히 헤아리려 하고, 그를 잃지 않고 어떤 방향에서든 흐름을 타보려는 의식이 필요할 뿐이다. 이 세상이 그것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한 번 생각해봐도 손해는 아닐 것이다. 과연 나의 처음이 시작되었는지. 그 선을 넘어는 봤는지. 


출발의 신호탄은 이미 터졌을 수도 있고, 너무나 아득해서 그런 게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거리에 있을 수도 있다. 끝내 만나지 못할 수도. 웬만해선 알 수 없는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도 목적과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나 또한 한 번은 그 선을 넘어보고 싶다. 우선, 그를 위해 살아보겠다고 작게 다짐했다. 이런 작은 것들이 삶을 살린다고 믿는 이로서, 기쁜 발견이다. 언제 또 짓궂은 삶의 장난에 가려져 버릴지 모르는 다짐이겠다만, 적어도 그 마음은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처음을 맞이해보겠다고 용기를 냈다. 


수많은 처음을 지나온 미영이지만, 그 역시 다른 처음을 마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이 인터뷰는 미영이 또렷하게 거쳐 온 수많은 선택과 행동과 즐거움과 인내와 담대함을 담아낸 증거이기도 하다. 그 발자취가 나에게 은은한 용기를 주었듯이, 미영이 이 시간을 거쳐 조금은 더 강해졌길 바란다. 그렇게 미영의 향이 짙게 묻은 정원에서 깊은 휴식에 빠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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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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