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엄마의 출발선 ①

엄마라는 사람의 처음을 마주하다
글 입력 2022.06.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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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이란 표현은

박참새 작가의 저서 <출발선 뒤의 초조함>에서 빌렸습니다.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을 꼽으라면 항상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영, 나의 엄마였다. 미영이란 사람에 대한 편애, 이따금 미워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또 잠재우고 싶은 욕구, 그 내면에 대한 호기심 등이 결합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미영의 다양한 정체성을 파악하고 선택하는 일이었다.

 

그 선택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약 3년의 공백을 뒤로 하고 다시 사회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은 대학교에 머무는 신분이지만, 남은 기간은 나의 진로를 위해 집중 소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결의 시간이 될 것이다. 미지와 시작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나는 강박적으로 ‘처음’에 집착하게 됐다. 대체 당신들의 처음은 어떠했는가. 인생은 어찌어찌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대들의 처음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이었는가. 대체 그 첫발을 떼게 된 계기와 마음은 무엇이었는가. 어쩌면 남에게 의존만 하는 못난 모양새라는 걸 알아도 스스로 방법과 용기를 얻게 될 때까지 이 미련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가장 궁금한 것은 노동자로서의 자아였다. 미영은 프로 노동자로서 나의 갈망을 해소하는데 아주 적합한 정체성을 가진 듯했다. 젊은 나이에 일을 시작해 약 20년 동안 업을 이어온 사람. 아무 기반과 기술 없이 기술이 필요한 일을 시작해 꾸준히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있는 사람. 너무 고된 일이지만 일터에서 평온함과 행복을 잃지 않으려는 덕업일치인. 그것이 미영이었다. 엄마가 미영이 된 순간, 당연했던 그녀의 일과 일터가 당연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를 이 일로 이끈 ‘처음’은 어떤 모양새였을까. 그는 처음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발견하고 피워내며 20년을 넘게 일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역사에 접속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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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영 : 부담 없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미영 : 이름은 강미영이고 50대 초반의 중년 여성으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해영 : 본인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군요. 아름답다, 행복을 찾아간다... 자긍심이 벌써 느껴집니다. 미리 말씀드렸듯이 인터뷰의 전체적인 주제를 처음으로 선정해봤어요. 특히 직업인으로서의 처음. 지금은 꽃집을 하고 있지만 그 전 직업으론 웅진 코웨이 코디네이터(이하 코디)가 처음이었죠?

 

미영 : 아니. 결혼 전에 군청에서 사무 보조 계약직도 해봤어. 그리고 ‘쥬리아’였나? 그 화장품 회사에 소속돼서 판매원을 보조하는 직업이 있었어. 직업이 ‘뷰티 플래너’였던가... 아무튼 네 외할머니 집에 온 판매원분이 나한테 소개를 해줬어. 화장품 사용법, 마사지 방법같이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도 하는 거야.

 

해영 : 그런 일도 했구나. 몇 살 때 그 일을 해본 거야?

 

미영 : 졸업하고 20살 정도였지. 2년 정도 했어. 그땐 직업을 찾아야 했고, 소개를 받았으니 뭣도 모르고 간 거지. 그때도 교육원에 들어가서 고객 응대, 제품 설명 교육을 다 들어야 했었어. 그런데 그 교육 강사가 그렇게 멋있더라. 특히 난 시골 사람이었으니까. 카리스마, 외모 다 모델 뺨치더라고. 그 일을 하면서 지금 내가 서비스 정신이 생긴 것 같아. 그 이후로는 군청에 사무 보조, 지금으로 따지면 계약직에 들어갔지. 결혼하면서 아빠랑 공무원 준비하다가 떨어지기도 했어. (웃음)

 

해영 : 공무원 준비도 했었어요? (놀람) 그럼 웅진 코웨이 코디가 아니라 뷰티 플래너가 공식적인 첫 직업이었네.

 

미영 : 정장 같은 옷을 입고, 멋있는 일이었지. 영업이랑은 조금 달랐어. 회사에 소속되어서 지정된 곳에만 파견하는 일이었거든. 나는 이 일도 좋지만, 강사도 하고 싶었어. 너무 멋있었으니까. 그래서 웅진 코웨이 일도 했던 것 같아.

 

해영 : 그 웅진 코웨이 일은 어떻게 알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던 거야?

 

미영 : 우선 일을 항상 하고 싶었어. 그 시대는 조금씩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였거든. 다른 사람은 활동을 하는데 난 아이만 돌보고 있었으니 계속 욕망이 있었어. 그러다가 웅진 코웨이 코디를 집에서 만난 거야. 그땐 이런 정수기 쓰는 집이 별로 없었는데 아빠가 좀 깨어있었잖니. 아무튼 그렇게 코디를 자연히 만났던 거지. 그분이 나에게 권유를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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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분 이미지가 너무 좋았어. 전문적으로 보이고 말이야. 나보고 잘할 것 같다고 권유를 하니 또 뭣도 모르고 했어. 일하고 싶었던 참이니까. 그게 서비스직이어서 나에게 맞았던 것도 있어. 그때 서비스직은 이미지가 좋아 보였거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이미지’를 선호했어. 그건 부모의 이미지가 좋은 것도 영향을 끼쳤어. 그때는 술 먹고 행패 부리는 것처럼 행실로 욕을 먹는 어른도 많았는데 우리 엄마 아빤 지나가는 사람 뭐라도 더 주고 먹이고 했거든. 그런 게 나에겐 좋아 보였어. 그게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거구나. 그래서 그런지 나도 사람을 만나면 좋은 느낌, 정을 주려고 많이 했어.

 

해영 : 자기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구나.

 

미영 : 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대접 받는 느낌이 좋았어.

 

해영 : 그게 당연하고 별 게 아닌 성격인 게 아니라 나의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 드는 생각이 옛날엔 직업의 귀천 의식이 좀 더 명확했을 거 같아. 서비스직은 아직도 낮은 인식으로 갑질을 당하기도 하잖아. 그런 서비스 직업을 한다는 걸 어떻게 느꼈을까?

 

미영 : 그렇지. 그런데 직업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아서 여러 가지를 해 볼 기회가 없었어. 특히 시골이니까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주 적은 거지. 그야말로 여기서 사는 여자들은 조그만 사무실 경리가 다였어. 그 후에서나 공무원에 조금씩 여자가 진출했지. 대외적으로는 공부해서 교사가 되거나.

 

해영 : 애초에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미영 : 그럼. 닥치는 대로 부딪치면서 기회가 주어지는 일들을 했지.

 

해영 : 낮다 높다 생각할 것조차 없었네요.

 

미영 : 선택지도 없었고, 그만큼 능력을 키울 기회도 부족했었고. 내 친구들도 고졸이 더 많았어. 도시로 간다고 해도 그곳에 연고가 없으면 어디 살거나 취직 같은 걸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근데 난 막연히 서비스직에는 전문적일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 남들이 인정해줄 것 같은. 웅진 서비스도 그때는 그랬지. 내가 이 근방에서 1등으로 코디 일을 했거든. 이영애가 ‘웅진 코디입니다~’ 광고하면서 이미지가 엄청나게 올라갔기도 했고. 이 일은 전문적 지식으로 전문인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만족했었어.

 

전적으로 영업도 아니었고. 지금도 누구한테 뭘 해달라고 부탁을 못 하거든. 사람들이 나에겐 영업을 잘할 것 같다고 늘 말해. 신뢰가 있다고. 근데 난 전혀 그런 스타일이 아니야. 그런데 서비스라고 하면 어느 분야든 난 자신 있다고 느꼈어. 그래서 선택했어. ‘정수기 좀 사주세요.’ 라고 했으면 난 안 했어.

 

해영 : 그건 정말 성향이니까.

 

미영 : 지금도 같은 분야라 할지라도 영업은 못 하겠어. 서비스를 하라면 할 것 같은데.

 

해영 : 너무 신기한 게, 지금 꽃집은 사업이잖아요. 영업을 못하고 서비스를 선호한다는 말과는 괴리가 느껴지는데 어떻게 꽃집을 선택한 건지?

 

미영 : 우선 내 업무량이 너무 많았어. 어떻게 실적이 좋아서 팀장이 됐거든. 팀장은 원주에서 근무를 해야 했는데, 하여간 좋더라고. 서비스를 안 나가도 되니까. 추우나 더우나 안에서 팀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된 거니까. 솔직히 괜찮았지만, 우선 출퇴근을 해야 했으니까. 영업직이다 보니 정확한 퇴근도 없고. 또 매니저가 되다 보니까 팀원들 실적은 계속 쪼아야 하는 거야. 근데 난 그걸 못하거든. 운 좋게 팀원 실적이 좋아서 상도 받긴 했다만, 문제는 내 성향과 안 맞는 거야. 매일 코디마다 월별 실적을 체크하고 경쟁하고 쪼아야 하고.

 

해영 : 승진을 했지만 또 결이 달라졌구나. 서비스에서 다시 영업으로.

 

미영 : 서비스는 둘째치고 영업이 주된 업무였으니까. 이것도 고민이고 가정이 더 고민이 됐어. 너희는 어린데 긴 거리를 통근해야 하고. 그게 가정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아빠와도 맞지 않았고. 나도 가정 없이 돈만 버는 기계가 되는 것 같았고. 이 돈이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 그러다가 통근하는 길에 차 사고가 난 거야. 차가 다 뒤집혔어. 그 사고 이후에 뒤도 안 돌아보고 그만뒀어. 그쪽에선 가까운 곳에 지점을 내주겠다며 잡더라고. 그래도 난 생각도 안 하고 그만뒀어.


해영 : 그 정도면 인정도 엄청 받았다는 건데 쉽게 포기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돈도 더 벌 수 있고 커리어도 이어 나갈 수 있고.


미영 : 그런데도 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으니까.


해영 : 그런 상황에서 아무 관련도 없던 꽃집을 선택한 게 너무 의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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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 내가 평상시에도 꽃을 좋아했어. 꽃집 들리면서 막연히 꽃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상황도 마침 이렇고 또 자주 가던 꽃집 사장님이 권유를 하더라고.

 

해영 : 꽃은 어쨌든 기술이 필요한 일이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 망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지?

 

미영 :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생각이 정말 없었어. 그냥 해보고 싶으니까 한 거야. 그리고 그 직업이 참 예뻐 보였어. 남들도 인정해줄 것 같고 내가 봐도 참 예쁘고. 나는 항상 예뻐 보이는 일을 하고 싶어 했거든. 또 그때 꽃시장도 성행을 했었기 때문에 내가 망하진 않겠다고 생각했지. 나는 대체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싫기도 했어. 전문적으로 기술을 갖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꽃으로 깔끔하고, 깨끗하게. 그렇잖아?

 

해영 : 사회적 시선이 또 달라져서 이제는 그런 전문직이 더 힘들어 보인다 생각하기도 하는데 말이야.

 

미영 : 그래, 이렇게 육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말이야. 잘 모르지만, 옛날부터 관료 사회였으니까 우리나라는 전문직을 참 하대해. 외국은 인정을 해주는데 말이야. 그럼에도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우선 그걸 해보면 좋겠어. 그러고 자기가 일단 만족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내 운영 방식도 다른 꽃집과 달라. 단순히 인기 많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정말 예쁜 걸 가져와서 나누는 거야.

 

해영 : 커리어와 돈을 포기하게 만든 게 '예쁜 모습'이라니. 사실 나도 앞치마 입은 모습을 미학적이라 생각하는데 그 자체도 직업 선택의 요소가 될 수도 있구나! 그럼 자연스럽게 2부로 넘어갈까요? 플로리스트로서의 삶을 더 다뤄보고 싶어. 막무가내 초짜 사장이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는 사장이 되기까지의 삶.


...


플로리스트로서의 삶을 조명한 인터뷰 내용은 '엄마의 출발선②'에서 이어집니다.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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