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 화려한 거리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다.
글 입력 2022.06.2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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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화려한 거리를 보고 싶었다.

 

좁디좁은 골목에 오고 가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수많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그런 거리를 보고 싶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극을 느끼고 싶었나 보다. 매일 아침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면 하루 일과를 펼쳐놓는다.

 

해야 할 업무들을 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자 노력한다. 뭐, 결국에는 야근이지만 말이다. 정신없는 하루를 마치고 퇴근을 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시계를 보며 어떻게 끼니를 때울까 고민한다.

 

이런, 고민하는 사이에 벌써 30분이 지났다. 무언가 시켜먹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고 그렇다고 안 먹기에는 배고파서 잠이 안 올 것만 같은 시간이다. 음악 하나를 틀어두고 이 음악이 끝날 즈음에는 끼니를 때울 방법을 떠올리자고 다짐하며... 냉장고에 우유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거리를 보고 싶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거닐고, 상점가의 주인들은 호객 행위를 하며 어떻게든 이목을 끌어보려고 한다. 4명이 나란히 지나가면 가득 차는 인도 폭이 무색하게도 사람은 꾸준히 거리를 메운다.


그래도 왁자지껄한 거리를 보고 싶었다.

 

*


그래서 화려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를 보러 집 밖으로 나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켜 거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조그마한 한반도에서 어딜 그리 다닐 곳이 많은지, 지방의 한 도시에도 주말만 되면 사람들이 와글와글 거리를 메우고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하나의 의문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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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상점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 거리도 예전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었을 텐데,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물음표를 띄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을 한 명씩 뒤로 젖혀내며 길 끝으로 걸어갔다. 외곽에 다다르자 많던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고 저 멀리 번화가의 웅성거리는 기척만 들릴 뿐이었다.

 

처음 외곽에 도착해서 본 풍경을 사람이 사는 가정집이었다. 다만 대문 앞에 ‘여기는 마을 주민이 사는 곳입니다.’라는 안내판이 비치가 되어있을 뿐이었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세련되고 튼튼해 보였던 건물과는 거리가 먼 작고 낡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고, 끝까지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이 외지인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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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결국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구나. 화려하고 북적이는 거리도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겠구나.

 

지금이야 관광지로 거듭나서 작은 땅 하나 차지하려면 거액의 금액이 필요할 테지만, 과거의 순간에는 지금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었을 금액이었겠지.


물론 침체되어있던 거리를 되살리는 긍정적인 효과는 있겠지. 상권이 살아나면서 득을 본 이들도 있을 테고,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를 얻은 사람도 있었을 테지. 맞아, 분명히 긍정정인 측면도 있었을 거야.


근 몇 년 간 ~리 단길 이라는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었다. 평범했던 거리에 콘셉트를 부여하고 스토리텔링을 하여 아무런 의미가 없던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도는 긍정적이었으나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처음에야 새로운 사업에 지원도 확실하니 청년 사장부터 지역 유지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상권을 형성하고 지자체와 협력하여 부여된 콘셉트에 맞게 거리를 꾸몄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 형성된 거리를 즐기고는 했다.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지나고 거리의 분위기와 상권이 자리 잡힐수록 방문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었다. 인기가 많아진 탓에 건물세가 올랐고, 유행에 편승하는 카피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경험이 없는 청년 사장들은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은 가격을 올리고 상권을 확장하며 모두의 거리를 나만의 거리로 만들고자 했다.

 

정신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 거리를 방문했던 관광객들은 획일화되고 정적인 거리를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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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리는 과거의 영광만을 추억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인계받아 죽은 거리가 되어 방치된다.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사람은 고향을 방문하는 우리처럼 지나간 과거를 회상할 수 없다. 분명 기억 속에는 존재하는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려한 거리의 이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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