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동그라미 같은 하루

글 입력 2022.06.20 22: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재학 시절에는 몰랐지만 휴학을 하고 나니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휴학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끊임없이 이어지던 남들과의 비교였다. 휴학 후, 칩거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큰맘 먹고 약속을 잡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친구들의 소식을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던 건 휴대폰 속 SNS. 다들 나만 빼고 어찌나 잘 살던지, SNS를 통해 바라본 친구들의 모습은 다들 멋져 보였다. 나와 같이 휴학을 한 친구는 자신이 원하던 회사에 인턴을 하고 있었고, 교환학생으로 타국에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휴학을 하지 않은 친구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영위해 가고 있었다.

 

 

laptop-g70c0c1084_1920.jpg

 

 

학교를 다닐 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해냈던 과제들이 있었고, 수십 년 간 단련해온 벼락치기를 보여줄 시험이 있었고, 한 학기의 결과를 나타내는 학점이 있었다. 당시 나의 삶의 기준이자 행복의 기준은 성취감이라는 감정이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결과가 있어야지만 달성할 수 있었던 이 감정은 딱히 무언가를 도전하지 않으면 결과물조차 나오지 않는 휴학 시절에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존재였다. 쉴 새 없이(?) 달려온 학교생활로 소진된 마음을 충전하고자 했던 휴학이, 되려 나에게 타인들과의 비교와 자기 비하로 방전되고 말았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의 스트레스 근원은 남들의 시선에 있었다. 타인의 시선에 과도한 신경을 쓴다는 것. 기준점이 '내'가 아닌 '남'이 되니까 자꾸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됐다. 남들의 눈에 근사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었던 나는, 참 피곤하게도 살아왔다. 운이 좋게도 나를 괴롭혔던 이 피곤함은 남들에게 '성실함'으로 비추어졌고, 나는 남들이 내게 씌워준 성실함이라는 타이틀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처음 남들에게 성실하다는 말을 들었을 땐, 칭찬이라 생각돼 마냥 좋았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단어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를 다그쳤다. 나의 성실함은 곧 완벽을 추구하게 됐고, 나는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상황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리 '성실하게'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예측하지 못하는 돌발 상황은 언제나 존재했다. 이러한 상황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마음 같지 않던 상황에서 잔뜩 표정이 굳어진 나를 보며 사람들은 말했다.

 

"너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성실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줄만 알았는데, 나는 어느새 남들에게 예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다가 결국 더 큰 스트레스만 얻었다. 과연 나는 행복하게 살아온 게 맞는 걸까?


 

roller-coaster-gc105b5f6b_1920.jpg

 

 

보통 우리는 '행복'을 느낌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내 기분이 좋아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 일이 많으면 기분도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느낌에만 의존하여 행복의 여부를 판단하게 되면, 감정이 곧 목적이 되며 행복활동이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감정의 폭에 따라 나의 행복지수 역시, 가파른 상승곡선과 하향곡선을 탈 수 밖에 없다. 나처럼 감정의 폭이 큰 사람의 경우, 행복과 불행의 롤러코스터를 하루에도 수십 번을 타게 되는 거다.

 

우리린 행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걸까? 아니면 행복해서 열심히 사는 걸까?

 

얼마 전 읽었던 책 속에선 앞선 질문에 이렇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행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지만, 행복을 목표로 생존하고자 했다면 힘이 들어 인류는 이미 없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인류는 행복해서 기를 쓰고 생존해온 것이라고.

 

어쩌면 내 마음을 빠르게 소진시켰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고 싶은데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렇지 않으니까, 오늘의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1년 365일을 펼쳐봤을 때 내가 행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은 과연 며칠이나 될까?


행복하게 지내야 하는 하루하루에 집착하다 보니,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듯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다. 휴학 후 근 세 달간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으로 무기력했던 이유가 여기에 숨어있었다.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하루들이 모여 죄책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걱정하는 마음에서 건네는 부모님의 말조차 모두 나를 옭아매는 듯했으니 말이다.

 

 

IMG_9001.JPG

 

IMG_9002.JPG

 

 

앞으로는 남들과 비교하며 나를 다그치기보다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 보려 한다. 완벽한 구에 가까운 동그라미를 그리지 못했더라도, 내가 그린 원이 동그라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각자의 인생에서 우리는 서로만의 개성 넘치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백소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