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공연을 좋아하는 이유 [공연]

글 입력 2022.06.20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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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배우가 꿈인 친구에게 물었다.

 

"뒤늦게 배우가 되고 싶은 이유는 뭐야?" - "그냥,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

 

이 질문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만 해도 당연히 꿈에 대해 환상을 가득한 몽글한 설렘이 가득 담긴 대답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질문 후의 그 친구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울컥한 마음이 들며 그 감정을 친구에게 들키지 않게 애썼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현재를 비관하느라 바빠 보이던 그 친구의 대답이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나는 이 친구의 말을 빌려 나의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매번 다른 인생의 사람들을 펼치는 공연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는 불가능해 보였던 그 말을 거의 가능하도록 해주는 건 아마 배우라는 직업이 아닐까 싶다. 매번 바뀌는 캐릭터에 따라 달라지는 어투, 분위기, 직업.. 이뤄내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손쉽게 얻어 동화되는 그들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 좋은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만들어진 캐릭터일 뿐, 이것들을 느껴보기 위해 모두가 배우가 될 수는 없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그 대체재가 공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나와는 다른 상황을 살아가는 사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안도감과 위로를 얻는 것은 가능하다. 나 또한 나와는 다른 상황의 인물로부터 내가 그동안 죽어도 못했던 일, 앞으로도 못해볼 일 들을 행동에 옮기는 것을 보며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기도 했으며 내가 울고 싶을 때 대신 울어주고, 내가 웃고 싶을 때 대신 웃어주는 나와 같은 감정의 인물들로부터 위로와 공감을  받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회피하고 싶을 때, 다른 감정과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혹은 나와 같은 이를 보고 싶을 때면 공연을 찾아 나서곤 한다.

 

모르는 사람과 그 캐릭터가 주는 해방감과 위로는 생각보다 일상 속에 필요한 정도의 망상을 얻게 해준다. 일상 속에서의 적당한 망상은 때로는 지금의 내 삶에 활력을 더 해주기도 한다. 비록 배우가 되진 못했지만, 그것을 바랬던 친구가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공연의 망상과 그로부터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매번 생경한 공연


 

무대는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같은 대사, 같은 배우, 같은 넘버.. 온통 같은 것들 속 피어나는 회마다의 다른 감정의 디테일로 인해 모든 무대가 달라진다. 배우와 나(관객) 배우로부터 생기는 이 감정의 디테일이 계속해서 같은 공연을 보게 하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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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분에서  뮤지컬 <팬레터>는 내게 다각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겨준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뮤지컬 <팬레터>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한국 대표 작가 이상, 김유정 그리고 구인회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창작 뮤지컬로 예술가들의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극이다. 18살 작가 지망생인 세훈이 동경의 대상인 소설가 김해진에게 자신의 필명 '히카루'로 팬레터를 보내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히카루의 편지로 위로를 받은 김해진은 그에 응답하며 둘의 문학적 우정을 다져나가면서 김해진은 히카루에게 문학적 동지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세훈은 히카루가 자신의 필명이라는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한다. 히카루를 인생의 한줄기 빛이라고 생각하는 해진이 실망감과 충격으로 해진의 폐병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히카루 때문에 더욱 병이 깊어지는 해진을 보고 결국 세훈이 사실을 실토한다. 김해진은 자신의 맹목적인 사랑에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얼마 가지 않아 세훈에게 고백의 편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오해에서 비롯된 맹목적인 사랑으로 만들어진 세훈, 히카루, 해진의 묘한 삼각관계와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볼 수 있는 극이다.

 

배우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방향과 농도에 '마지막에 해진이 결국 사랑했던 사람은 세훈이와 히카루 중 누구였을까'라는 질문들을 머릿속에 계속 던질 수 있었으며 이 질문에 대한 관객 개인의 답을 통해 역으로 이전의 배우들의 행동을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또한 '해진은 과연 언제 세훈의 진짜 정체를 알아차렸을까'에 대해 계속적인 의문을 들게 하는 것 또한 극에 대한 관객의 참여를 높일 수 있는<팬레터>만의 특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공연은 극 전반에 걸쳐 관객의 심적 참여를 유도하는 예술로 때로는 의심을, 때로는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언의 친밀감을 주는 공연


 

이렇게 얻은 위로와 공감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 공연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같은 결의 감정을 느끼고 떠난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군중 속 일부가 되는 공연장에서 불특정한 누군가가 되어 처음 만난 타인들과 같이 웃고 같이 우는 경험은 상당한 생경함을 불러일으킨다. 공연이 시작되면 작은 검은 점들로 변하는 군중들, 그리고 더욱 밝게 빛나는 배우들의 소통도 같이 시작된다. 이 시간은 오로지 극을 하는 배우, 그 배우를 보며 훌쩍이는 옆자리의 관객, 그리고 나 이렇게 3요소의 비밀이 형성되는 시간인 것이다. 배우와 같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설렘을 가져다주고 다른 관객들과 같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적 친밀감을 가져다준다.

 

다양한 방도로 공연과 그것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것들(극, 배우, 관객 등)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개인의 행동과 감정에 다채로움을 불러다 준다. 내가 공연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매번 다르게 해석되는 극과 캐릭터, 그것을 보고 얻을 수 있는 때마다 다른 위로와 공감, 이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이들과의 (무언의) 소통. 이 세 가지가 '공연'의 충분한 매력적 요소이며 이것은 결코 혼자 이룰 수 없다. 혼자 또 함께 할수록 풍부해지는 공연, 좋아하지 않은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여기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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