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중에 체감하는 콘텐츠의 위력

글 입력 2022.06.2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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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사피엔스의 O2O와 거리두기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꼭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은 셀 수 없다. 한때 『포노 사피엔스』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 매대를 휩쓴 것만 봐도 우리의 일상 속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았다. ‘네이버’와 ‘구글’을 검색해 맛집을 찾아 약속 장소를 정하고, 친구를 만나러 갈 땐 ‘티맵’으로 길을 찾고, 친구들과 헤어지고는 ‘카카오T’로 대리운전을 불렀다. 재택근무 중에 배가 출출할 때는 ‘배달의 민족’으로 커피와 와플을 주문했다.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검색하고 필요한 식재료는 ‘쿠팡’과 ‘마켓컬리’로 주문했다. 바야흐로 O2O(Online to Offline)의 시대다.

 

그런데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으로 입국한 후, 나의 스마트폰은 일순간 많은 기능이 마비됐다. 중국의 방역 정책으로 인해,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들은 최초 도착지에서 14일 간 호텔 격리를 거쳐야 한다. 격리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단 외에 다른 배달음식은 일체 금지된다. 다시 말해, 입국 후부터 14일간, ‘본능적이거나’ ‘온라인스러운’ 삶만 나에게 허락된다는 거다. 노트북, 스마트폰, E-Book 리더기. 세 가지 전자기기와 혈혈단신 입국한 나의 격리 생활은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내게 주었다.

 

 

포노 루덴스?

 

극한으로 고립된 격리 상황에 네 칸짜리 와이파이에 의존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콘텐츠 범람의 시대, 식상한 말이지만 답은 콘텐츠에 있다. 격리 둘째 날 아침이 밝았을 때 붕붕 뜨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지겹고 고독한 격리 생활을 14일간의 ‘호캉스’로 정의했을 때부터 나는 좋아하는 배우 혹은 감독의 영화와 밀린 드라마와 새로 알게된 유튜버의 영상을 정주행하고 전개가 탄탄한 소설과 웹툰, 영상미가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로 가득 채우자고 다짐했다.

 

3일쯤 지났을까. 템포도 바이오리듬도 엉망일 거라 예상했던 격리 생활은 나름의 규칙을 찾아갔고, 자연히 콘텐츠 시간표가 만들어졌다. 대략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아침식사를 알리는 초인종 소리에 눈을 뜨면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밥을 들고 책상에 앉는다. 비교적 간단한 아침식사에는 10~20분 남짓한 웹드라마나 유튜브 영상을 본다. 식사를 마치면 체온을 측정하는 방역 요원이 올 때까지, 고국의 뉴스 기사를 훑어본다. 몸이 찌뿌둥할 때는 5~10분 정도의 스트레칭 영상을 틀고 열심히 따라 한다.

 

잠이 묻은 얼굴로 다시 침대로 돌아가 드라마를 본다. ‘우리들의 블루스’를 끝내고 ‘이지파생활(理智派生活)’라는 중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 한 화가 끝나면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릴스’를 넘긴다. 재치 있고 멋진 콘텐츠에는 빨간 하트로 마음을 표현한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드라마 정주행은 멈추지 않는다. 내 집중력을 빠르게 빼앗아가는 드라마야말로 메뉴에 대한 불평을 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어 한국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직장인 친구들과 톡을 주고받다가 톡방에 오고 간 다큐멘터리, 글, 광고, 예능 클립, 인스타툰을 보며 공감대를 쌓아간다. 그러다 10시쯤이 되면 웹툰 앱을 켠다. 한국 시간 11시면 다음날 웹툰이 올라오는데, 한 시간의 시차 때문에 중국에서는 미리 보는 것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전에는 불을 끄고 머리맡의 크레마를 들고 일전에 가입해둔 예스24 북클럽을 이용해 E-book을 읽다 잠에 든다.

 

작은 호텔방에서 보조 배터리까지 동원해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거의 하루 반 이상의 시간을 스마트폰에서 즐거움을 찾는, 나를 ‘포노 루덴스(포노 사피엔스와 유희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루덴스의 합성어)’라고 정의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렇다고 유희가 순수 유희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1일 스크린타임이 15시간 이상인 하루가 열흘 넘게 반복되면 어느 순간 콘텐츠를 연구의 시선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서사나 나이대별 쇼트 클립의 차이, 크리에이터들이 PPL을 다루는 방식 등을 사유하며 ‘요즘의 재치’를 배워간다.

 

 

콘텐츠,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콘텐츠는 기록의 한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생겨난 게 아닐까. 나 역시도 기록의 의미를 담아 내 콘텐츠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쓰고, 찍는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매일 먹은 격리 식단 사진을 공유하고, 밤마다 ‘블로그’ 앱을 켜서 하루 식단을 정리하고 격리 중의 소회를 연재한다. 먹는 사진, PCR 검사를 받는 영상, 창 밖의 사람들을 멀리서 찍은 영상들을 모아 ‘틱톡’으로 편집하고 내레이션을 입혀 출국에서 격리에 이르는 과정을 담기도 한다.

 

격리 중 소셜 미디어를 좀 더 깊이 탐구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콘텐츠’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콘텐츠는 인플루언서, 유명 크리에이터, 연예인 등 인터넷상에서 발언권을 가진 부지런한 일부의 전유물이라고 느꼈는데, 이제는 밥맛을 떨어뜨리는 하루 세 끼의 식단 사진도, 느린 인터넷을 부여잡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쓴 글도, 들인 시간에 비해 엉성하고 볼품없는 편집도, 강제성 강한 격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콘텐츠가 된다는 사실을 느낀다.

 

사실 ‘콘텐츠’라고 하면 으레 따라붙는 부정적인 꼬리표들이 있다. 과몰입, 중독, 가짜 뉴스 등 일상에서 쉽게 의식할 수 있는 현상과 에코 체임버 효과, 정보의 비대칭성, 확증편향 등 콘텐츠 플랫폼으로 인해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까지. 콘텐츠의 과도한 사용에 대한 우려는 매일 기사와 칼럼을 통해 쏟아지고 그 부작용에 대한 논문이나 연구 결과도 무수히 많다.

 

누군가가 이런 우려 앞에 콘텐츠 예찬론을 펼치는 내가 퍽 용감하다 말해도 우리는 이제 콘텐츠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에 산다. 무분별한 콘텐츠 소비를 경계하고 콘텐츠의 선악을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콘텐츠를 접하고 소화해야 한다. 또 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완전히 새로운 흐름 앞에 지레 겁먹고 전투태세를 갖추기보다는 그 짜릿함에 시간을 맡기고 다가올 세상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오영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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