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

글 입력 2022.06.2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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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순간에 과거를 만나게 되는 건 꽤 즐거운 일이더라.


말은 이렇게 거창하게 했지만 사실 녹음만 해두고 듣지 않은 강의를, 학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말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파일을 틀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야.


계기가 너무 초라하지?


이전 강의서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녹음에 다음 강의가 시작되기 전 나누었던 대화가 담겨 있었어. 급하게 강의실을 떠나느라 미처 누르지 못했던 종료 버튼이 지금 이렇게 소소한 기쁨을 선사해주는 거야.


난 내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아. 발랄한 높은음도 아니고, 듣기에 편안한 낮은음도 아니지. 내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를 내 귀로 들으면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 그 어느 곳에도 어울리지 않는 소리 같아.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소리도 이렇게 느껴지는데 전자기기를 거쳐 오는 소리는 또 어떻겠어.


그래서 노래방도 싫어해, 노래를 못한다는 다른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중학생 때 다녔던 영어학원에서는 매주 영어 문장을 읽어 녹음해오는 숙제가 있었는데, 그 숙제가 너무 하기 싫었던 거 있지. 하필이면 지금 전공도 언어라서 비슷한 과제가 너무 많아. 달라진 건 숙제라는 단어 대신 과제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겠다.


이렇게 구구절절 녹음된 내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말한 이유는, 신기하게도 방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야. 우리의 대화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기록되고, 그것을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듣게 된 그 순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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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까지 마감인 글을 써야 한다며 힘듦을 토로했고, 언니는 그럼 빨리 손가락을 움직이라며 게으른 나를 재촉해주었지.


언니는 내 노트북 카메라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보며 무엇이냐 물었고, 나는 실시간 비대면 수업 중에 갑자기 카메라가 켜지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대답했어.


나는 혼종적 존재에 관한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언니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라고, 간단하고 또 간단하지만 제법 효과가 좋았던 말을 던졌지.


언니는 내게 ‘이거 맛있겠다’라며 음식 사진을 보여줬고, 나는 ‘우와 뭐야, 빵이야?’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건 꿔바로우였지. 나의 터무니없는 대답과 형편없는 사진 인지 능력에 실없는 웃음소리들이 들렸고, 꼭 먹으러 가자며 다음을 기약하는 단어들이 이어졌어.


난 미래에 대한 빈말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우리가 같이 꿔바로우를 먹는 순간은 반드시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우리는 원래 함께 하자고 했던 일은 꼭 해내고야 마니까. 지금까지 그래왔잖아. 본격적인 새내기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언니가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둔 4학년이 될 때까지 말이야.


4년째 함께 해오면서, 서로의 이것저것을 많이 공유했지. 어떤 맛을 좋아하고, 어떤 맛을 싫어하는지. 어떤 성격의 사람에게 불편함을 느끼고,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게 될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서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이야기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거기엔 항상 비관이 함께하고 있었어.


너무 당연한 사실이야. 나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우린 스스로 ‘비관주의자’라고 정의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이 우울도, 현실에 대한 회의도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감정이 되어버린 거야.

 

이 감정들에 대한 이유를 찾고자 했어.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괴리 때문일까? 아니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마주하는 사라진 생명들에 대한 소식 때문일까?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 정답이 될 수도 있어. 당장 눈앞에 닥친 시험이나 취업 같은 문제들.


물론 이것들은 이 감정의 이유에 확실히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무엇인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내야만 현실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처음부터 나는 이 감정을 부정하고 있었던거야. 벗어나야만 하는 것으로.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었어. 그리고 아마 언니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현재 내 상태를 계속해서 부정하는 건 결코 건강한 행동이 아닌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어. 그러던 도중 우연히 어떤 책의 구절을 만났어. 아직 읽어보지도 않은 책의 수많은 문장 중 단 6개의 문장이 나에게로 찾아왔는데, 그것들이 너무 마음에 박혀서. 내가 이 글을 읽게 된 건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지.


“꿈속의 재화는 어째선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스스로가 불안하고 취약하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완전한 잠식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언제고 일어날 일인지는 알 수 없어도. 자라면서 보통의 한국인 만큼의 방치와 학대와 폭력을 경험했으니 남 탓, 환경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동하지 않는다. 그런 경험이 더 심화시킨 일은 없잖아 있을지 몰라도, 사실은 아주 작은 수정란일 때부터 불안해하는 성향의 수정란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도록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다. 비관적이지만 위로가 된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애초에 그건 존재하지도 않는 원인이었던 거야. 나는 처음부터 불안해하는 수정란이었던 거지. 이 말을 함으로써 나 자신을 ‘불안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못 박아버린 건데, 정말 신기하게도 비관적이지만 위로가 되더라.


우리가 불안한 건, 우리가 정상적이지 않은 존재라서가 아니야. 그냥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감정을 애써 부정하고 의심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이 태도가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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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우리가 경복궁에 놀러 갔을 때, 너무 많이 걸은 탓에 나는 다리가 아팠고 언니는 힘들면 앉아있다 가자며 호숫가 옆 벤치로 나를 이끌었지. 거기 앉아서 언니가 사는 게 재미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 그리고 나는 그 말에 별다른 말 없이 동조했던 것 같아.


그런데 있지, 만약 지금의 내가 2021년 11월 19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다른 답을 하려고 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보여줄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녹음된 우리 목소리를 들려줄 거야. 그리고 말해줘야지. 거기서 우리는 아주 즐겁고 행복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내일이면 우리가 월요일마다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기가 끝나. 나는 계속 학교를 다닐 테고, 언니는 휴학할 예정이니까 어쩌면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불안해하는 수정란이었던 우리는 앞으로도 잘 지낼 거야. 매일매일이 행복하진 않아도, 가끔씩 찾아오는 기쁨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러니까 다가올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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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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