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획일화된 세상과 구별되어 보였던 당신과의 대화

글 입력 2022.06.2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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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난다는 건 하나의 세계와 조우함을 뜻한다. 모두가 획일화된 가치를 지향하며 동일한 생각, 동일한 양상대로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유달리 튀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 마치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3)의 흑백 포스터 속에서 홀로 빨간 옷을 입어 누구보다도 먼저 눈길이 가는 그 아이처럼 말이다.

 

문화초대로 [Project 당신 – 지인 인터뷰] 신청이 올라왔을 때 너의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알고 지낸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건 분명 나와 닮은 점이 많았을 터. 나, 그리고 당신을 더 알아가고 싶어서 문화초대를 신청했고 이후 인터뷰 요청을 했다.

 

1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며 깊고 얕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이기에 듣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나의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나누게 되었다. 대화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 그런대로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을 더 깊게 알았더라면, 그리고 나의 인터뷰 실력이 조금 더 좋았더라면 심도 있는 질문과 대화가 가능했겠지만 실상은 피상적이었다는 아쉬움과 약간의 자책이 든다. 아마 다음에도 같은 인터뷰 기회가 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깊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 또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과정 중 일부라는 점에서 즐거웠다.

 

인터뷰를 글로 녹여내지 않고 문답식으로 옮김에는 호기심 가는 질문을 선별해서 읽을 수 있도록 함에 있다. 워낙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모자란 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도록. 사실감을 위해 반말 형식을 사용했다는 점도 참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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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분을 날씨와 과일에 빗대어 표현해 본다면 어땠어?

 

나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래서 오늘 날씨처럼 햇빛이 없고 적당히 푸르면서 선선하게 바람도 부는 기분이야. 평소에도 날씨나 계절을 많이 타는 거 같아. 과일은 내가 잘 안 먹는데 골라보자면 사과. 사과는 가장 무난하게 먹는 과일이잖아. 그래서 내 지금 기분도, 오늘 하루도 무난한 사과 같아.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게 교육봉사를 하면서부터잖아. 어떤 계기로 봉사를 하게 됐고 지난 3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

 

공부를 늦게 시작했어. 막상 공부가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나처럼 목표는 있는데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

 

교육에는 늘 관심이 많았는데 교육봉사에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었어.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지금과 마찬가지로 지역아동센터에서 멘토링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너무 막 대하는 거야. 왜 그런지 알아보니까 봉사자들이 짧으면 하루, 길어야 일주일만 있어도 바뀌니까 아이들이 마음을 안 주고 막 대했던 거야.

 

아이들에게 상처가 많아 보였어. 근데 이번 교육봉사는 1년 동안 길게 할 수 있는 거니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 싶었어.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걸 이번 기회에 펼쳐보자고 다짐했어.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이 바뀌었어.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도 깨달았고 내가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 그러면서 나를 더 알아가게 되고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어. 더 행복해지고 웃음이 많아졌어. 나는 요즘 살아있음을 느껴.

 

 

영화 원더풀 라이프(1998)에서는 “사람이 죽으면서 단 한 가지의 기억만을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너라면 어떤 하나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을 거 같아?

 

중학교 때 되게 아팠던 때가 있었어. 그때 막냇동생이 방으로 슬며시 들어와서 “오빠 아파? 아프지 마” 하고 말하면서 내 손을 잡아주었던 적이 있어. 그러니까 정말 하나도 안 아픈 거야. 이 기억을 가지고 간다면 편안할 거 같아.

 

 

네가 생각하는 너 스스로는 어떤 사람인지 다섯 글자로 표현해 줘

 

“겉바속촉남” 다시 말하면 외강내유. 나는 외강내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열정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못해낼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큰 고비를 겪으면서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내 안에는 여리고 약하고 속상하고 슬픈 부분들도 많이 있더라고.

 

그래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런 사람인 거 같아. 앞으로는 외유내유로 살아가고 싶어. 지금은 너무 칼 같아. 내 안에 있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면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면 인간관계가 더 유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인간관계에서 가치를 많이 생각하는 편인 거 같아.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해? 근래 있었던 가장 행복했던 일도 같이 공유해 줘

 

어렸을 때 생각했던 말이라 많이 유치할 수 있는데 행복은 자물쇠라고 생각해. 근데 그걸 열 수 있는 키가 웃음인 거야. 어릴 때부터 많이 웃었는데 그러니까 정말 숨어있던 행복들이 찾아오더라고.

 

어제 많이 아끼는 사람을 만났었는데 그게 근래 가장 행복했던 일인 거 같아. 많이 웃었거든.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척도는 웃음이야. 인간관계에서 행복도 많이 느끼지만 상처도 많이 받아.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관계를 넓히지 않으면서 지내는 거 같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생각해 보면 코로나 시기인 거 같아. 왜냐하면 가족들이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 다들 일 때문에 많이 바빠서 심적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집 안에 있게 되면서 수다도 떨고 많이 웃고 가족여행도 가고 그러면서 정말 행복하게 지냈어. 가족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알게 된 거 같아.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잖아.

 

 

10년 후에 너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직장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긴 연애도 하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거 같아. 지금과 내면적으로는 크게 변할 거 같진 않아. 웃는 거 좋아하고 늘 “행복하다”, “청춘이다” 외치면서 살아갈 거 같아.

 

물론 외적으론 많이 변하겠지만(웃음). 20살 때 했던 생각인데 지금도 동일하게 꿈꾸는 게 ‘낭만 있는 아저씨가 되자’는 거야. 나이를 먹으면서 고민과 한숨이 점점 많아질 텐데 그걸 역행하고 싶어. 늘 유쾌하게 살고 싶어.

 

 

옆에서 너를 보면 항상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 게 눈에 선명하게 보여. 요즘 하는 가장 큰 고민은 뭐가 있어?

 

맞아 내가 고민이 많아. 요즘에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고민이야. 다시 말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

 

마치 무대 위에 여러 조명이 나만 비추고 있는 느낌이야. 주변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고 내 주변에는 누가 있는지 그게 잘 보이지가 않아. 뭐가 중요하고 안 중요한지를 잘 모르겠어. 그래서 깊은 고민을 할 수 없다는 게 고민이야.

 

여러 사람의 말도 듣고 멘토링도 참여해 봤는데 결론은 현재에 집중하라는 거야.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면서 살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안하더라고.

 

 

공감해. 불안은 요즘 20대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인 거 같아. 나도 마찬가지고. 불안하니까 자꾸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사회가 나이 때에 맞는 행동과 위치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놨잖아.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거 같아서 하는 것들이 있지. 그런 것들이 모여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드는 거 같아.

 

자꾸만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으니까 뭐 하나에 집중해서 하질 못하겠어. 한 가지에만 몰입해야 하는 성격인데 말이야.

 

 

나중에 네가 죽으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사람들이 내 죽음을 아쉬워했으면 좋겠어. 같이 더 시간을 못 보낸 거에 대해서. 아쉽다는 건 사람들이 나를 괜찮게 보았다는 거고 좋아했다는 거잖아. 죽은 뒤에 많이들 찾아와서 내가 그립다고, 많이 보고 싶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앞으로의 소망과 다짐이 있을까?

 

“잊지 마”.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리가 하나 없이 생활했고 정말 아파서 누워만 있던 사람이었다는 걸 잊지 말라는 거야. 그니까 내가 지금 뭘 못하겠어.

 

“왜 안 하는 거야”, “너 할 수 있고 더 해야 돼”. 날 스스로 채찍질하는 거야. 그 경험을 통해서 나를 채찍질할 수 있게 된 거 같아. 앞으로도 날 계속 채찍질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살고 싶어.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나에게는 당근이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행복을 느껴. 아무튼 힘들었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또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나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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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다채로운 대화가 오갔지만 이쯤에서 ‘박민수’라는 사람에 대한 인터뷰에 마침표를 찍어보고자 한다. 그는 그동안 알고 지냈던 거보다 훨씬 자신의 생각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민수(敏秀)’라는 이름처럼 나이에 비해 진중하고 성숙한 사람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하지만 배울 점이 많은 동생이다.

 

사실 교육봉사 비대면 면접을 볼 때부터 이 사람과 친해지겠다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TMI : 그러나 민수에게 나는 눈 밖에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일들을 그와 함께 나누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나간 어느 봄날에 알게 된 소중한 친구 민수는 이제 막 개화하고자 하는 ‘나’라는 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로부터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날 먹은 자몽에이드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했던 젊은 날, 우리의 이야기는 느낌으로 남아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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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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