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와 진실 그 사이 어딘가의 진정성, TRPP

불안한 청춘을 연주하는 TRPP의 셀프타이틀 정규 앨범
글 입력 2022.06.19 22:0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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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무도회의 전성기가 다시금 부활한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본업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하나의 모습만으로 자아를 드러내지 않는, 이른바 '부캐 열풍' 시대다. 이러한 부캐 열풍은 음악 시장에서도 숱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마미손부터 놀면뭐하니의 유산슬, 싹쓰리, 그리고 매드몬스터까지. 다양한 부캐들은 본캐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감을 던져주면서 새롭고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지러우면서도 풍요로운 세상이다.

 

TRPP 역시 마찬가지로 정체를 좀처럼 알기 힘든 모습으로 인디씬에 등장했다. 정체불명의 세계관과 컨셉은 언뜻 보면 터무니없기까지 하다. 하지만 측정하기 어려운 온도로 현실을 직시하는 TRPP의 음악은 앞으로의 활동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진지함이 담겨있다. 열정적이지 않지만 감성을 자극하고, 냉소적이지는 않지만 차갑게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로 TRPP는 우리에게 허락되어오지 않은 청춘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들의 음악에 환호하고, 몰입하는 이유다.

 

TRPP는 독특한 세계관이 이목을 집중시키는 밴드다. 치치 클리셰는 집 없이 떠돌이 생활을 자처하다 라멘집에 방문하게 된 중국계 프랑스인이다. 록 마니아 후루카와 유키오는 음악을 하기 위해 삼대째 이어온 라멘집 계승을 포기하고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엘리펀트 999는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의 이름을 활용하는 미지의 인물이다. 홍대 앞 라멘집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은 TRPP를 결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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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설정들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스토리라인이다. 하지만 TRPP가 쏘아 올린 가상의 이야기를 진실로 만드는 건 청중의 몫이다. 사람들은 '윤지영, 바이바이배드맨의 보컬 길라, 일로와이로의 기타 및 보컬리스트 강원우가 모여서 만든 밴드가 아니냐'라는 반문 대신, 부캐 기반의 설정에 몰입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속임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가상의 플롯을 현실화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희를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TRPP와 청중만의 특별하고 신비로운 세계관이 펼쳐지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미학은 세계관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나타난다. 멤버들의 본캐는 동시대의 국내 인디음악씬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음악적 색채에서는 좀처럼 교집합을 찾기가 힘들다. 윤지영은 EP 앨범 [Blue Bird]를 중심으로 담백하고도 잔잔한 인디 팝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다. 길라는 청춘의 여름같이 시원하면서도 절제된 음악을 하는 인디밴드 Bye Bye Badman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다. 밴드 일로와이로의 보컬리스트 강원우는 2000년대 한국 인디음악을 연상케하는 향수 섞인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다.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은그렇게 슈게이징이라는 예상되지 않는 장르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TRPP는 파란노을, 신해경, FOG 등 국내 인디씬 아티스트와 함께 1990년대 영미권에서 유행했던 슈게이징 장르를 끌어냈다. 구두창만 보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아티스트의 형편없는 무대매너에서 비롯한 장르명답게, 슈게이징(shoegazing)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음악이다. 폭발적인 음량, 불규칙적으로 쌓아올리는 기타 음, 무작정 휘몰아치는 파괴적인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오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TRPP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서정적이면서도 서늘함이 감도는 보랏빛으로 청춘의 그림자를 조명한다. 이들은 시종일관 어디로 가는 지 상관하지 않고, 어떻게 흘러가든 관심 없다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움직이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외치거나 용감하지 못한 울음은 참아내야 한다는 무기력한 가사를 표현하기도 한다('Pause'와 'Go away'). 낙담과 좌절에 속절없이 무너지거나 그대로 받아들인다. 파괴적이고 반복적인 기타 사운드로 범벅된 곡('a Joke')을 만들거나, 돌연 연주하던 음악을 끊어버리고 다음 트랙으로 넘겨버리는 형식이 파괴된 곡('Yeah')을 만들기도 한다. 힘을 잔뜩 뺀 미성의 목소리로 서정적인 분위기가 담아내기도 한다. ('Honey'와 Home dance') 강물을 거슬러 오르기 보다 거친 물살의 흐름에 따라 떠밀려내려오는 무기력한 분위기가 어울린다.

 

TRPP는 파괴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사운드에 방전된 청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성취욕과 동기를 부여하고자 하는 무의미한 채찍질이나 힘에 부치는 낙관적인 소리 따위는 없다. 괴로울 때는 괴로운대로, 포기하고 싶을 땐 포기하고, 낙담하고 싶으면 낙담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청중들이 가상의 세계관에 동조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도외시되어 온 청춘의 이면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그 자체로 해방감을 선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음악 그 자체가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 기대감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은 덤이다.

 

 

[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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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신동하
    • 잘 읽었습니다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골피
    • 2022.07.25 21: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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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하시간내어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D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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