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평범한 가족’이란 이름 다시 쓰기,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글 입력 2022.06.2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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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족’이란 이름 다시 쓰기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

이 글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름들


 

뜬금없는 고백으로 시작하자면, (어디 가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나는 MBTI와 사주가 재밌다. 나는 왜 이럴까, 쟤는 왜 저럴까 하는, 흔하지만 답이 없는 질문에 나름의 논리로 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모든 다른 개체를 다른 시점에서 동일 유형의 사례로 확신시키는 사회적 행위가 바로 ‘명명’이라고 정의했다(백승주, 『미끄러지는 말들』). 나와 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특정한 동일 유형의 캐릭터로, 인생의 흐름을 어떤 이유가 있는 전개로 만드는 이 명명은 인생의 여러 물음표를 명쾌한 온점으로 만들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름과 수식어에도 이와 같은 명명의 논리가 흐른다. 이를테면 ‘가족’이라는 명사에는 '이성애로 결합된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단란한 혈연 공동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이와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평범하다'라는 형용사는 이 '가족'의 이미지를 든든하게 지탱하며 그렇지 않은 것을 '평범하지 않다'고 치부하게 한다. 최근 들어 이 '정상 가족' 신화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 풍경의 가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구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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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16개의 유형으로 설명될 수 있고, 타고난 날짜와 시간에 따라 이미 인생이 결정된 거라면, 그리고 모든 가족이 ‘평범한 가족’ 같다면 세상사는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간을 말하는 글과 노래도 지금처럼 무수하지 않았을 것이라 감히 예상해 본다. "어떤 즉흥도 용납하지 않고" "악보대로만 연주해야 한다"면 재즈가 탄생할 수 없었듯 말이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이니, 십수 년을 부대껴 살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나요, 가족을 비롯한 타인 아니겠는가.

 

그걸 망각할 때, 도식에 맞지 않는 나와 내 가족의 풍경은 '평범하지 않은' 게 되어 버리고 만다. "아니, 가족이 이래도 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예외적인 것들에 '이상한'이란 이름의 딱지가 붙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리고 그때, 좋은 이야기는 딱지 붙은 것들에 주목하며 자명한 이름에 질문을 던지곤 한다. 잠깐, 그게 평범한 거 맞아? 그래야만 가족이야? 하고. 그런 면에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상당히 뾰족하면서도 좋은 질문자라고 할 수 있다.

 

 


다이애나의 '평범한 가족'


 

작곡가 톰 킷과 작가 브라이언 요키가 의기투합해 만든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이 '평범한' '가족'이라는 명명에 정면으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주인공 다이애나 굿맨은 미국의 중산층 가정주부로, 헌신적이지만 "따분한" 남편 댄, "천재지만 완전 또라이"인 딸 나탈리, 그리고 "골칫거리" 아들 게이브와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언뜻 뮤지컬의 주인공 치고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남편을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간 보드빌의 스타와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다이애나 스스로도 "너무나도 완벽한 가족"과 "매일 너무 행복한 날들"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듯 말이다.


그러나 집을 상징하는 3층짜리 앙상한 철제 무대와 오프닝넘버 '그저 또 다른 날'부터 드러나는 불길한 균열의 지점은 굿맨 가족이 ‘평범한 가족’의 신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가족은 왜 이럴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던 작품은 아들 게이브가 환시(幻視)였다는 것을 밝히면서 가족의 붕괴는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님을 가시화한다.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결혼하게 된 다이애나와 댄, 그리고 8개월 만에 잃은 아들 게이브와 사랑받지 못해 완벽함에 집착하는 나탈리, 그사이 갈등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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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투 노멀>은 록을 비롯한 클래식, 재즈, 발라드, 컨트리 등의 다양한 음악을 유기적으로 운용하며 갈등의 내피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아들을 잃은 상실의 상처, 다이애나는 그것을 충분히 돌보지 못한 채 아들이 열여덟 청년으로 성장했다고 믿고, 댄은 그 상처를 깊이 묻어두고 '평범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상처를 함구하는 부모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나탈리는 가족의 곁을 떠나고 싶어 한다. '평범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각 개인을 좀먹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작품은 질문을 다음 궤도로 안착시킨다. 자, 그렇다면 이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굿맨 가족이 택한 방법은 '평범한 가족'이란 이름에 걸맞기 위해 단란함을 방해하는 요소(그렇다고 생각되는 것)를 없애는 것이었다. 거기서 지목된 것이 조울증, 과대망상이라는 다이애나의 정신과적 병명이자, 이 가족의 내적 상처로 무대 위에서 현현하는 게이브였다. 댄과 다이애나는 이를 없애고 '평범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다이애나에게 약물 치료, 상담 치료, 최면, 전기 치료까지 시도한다. 다이애나는 치료받고 싶지 않지만 '가족'을 위해 받기로 하고, 댄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가족'을 위해 다시 버티기로 한다.


'정상 가족'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과 개인의 자유의지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넥스트 투 노멀>이 미국에서 태동했기에 더욱 첨예해질 수 있었다. 역시나 미국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펀 홈>의 브루스가 "괜찮을 거야(Everything's alright)."라고 외쳤듯, <넥스트 투 노멀>의 인물들 역시 "좋아질 거야 다(It's gonna be good)."라고 노래하며 가족의 청사진을 위해 오늘, 여기의 개인성을 내리누른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식 가족주의를 둘러싼 갈등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아닌, 가족이라는 유기적인 단위 속의 개인"(김동춘, 『한국인의 에너지, 가족주의』)들을 탄생시킨 한국식 가족주의에도 큰 울림을 남긴다. 2008년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쳐 2009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던 미국 가족의 이야기가 한국에 네 번이나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를 다시 쓸 순 없겠지만


 

갖은 치료 끝에 최후의 방법으로 전기 치료를 받게 된 다이애나는 아들의 죽음을 비롯해 가족에 대한 많은 기억을 잃게 된다. 그리고 댄은 그 자리에 예쁜 기억만을 남겨 주려고 한다. 지금의 굿맨 가족을 엉망으로 만들어 온 것이 시간이라면, 다이애나가 잊어버린 시간을 ‘평범하게’ ‘가족답게’ 다시 꾸며 채워 넣으려는 것이다. 그렇담 이번엔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다. 치료를 통해 상처를 없던 것처럼 삭제한다면 이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평범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다이애나가 다시 기억을 찾으면서 굿맨 가족은 꽁꽁 묻어왔던 게이브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온다. 상처의 영원한 삭제는 불가능하고 그것만으로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넥스트 투 노멀>은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졌던 것도,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죽은 것도, 그 상처 때문에 나탈리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힌 것도 바꿀 수 없는 과거이자 사실이다. 이는 잊는다고 잊혀질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가족이 만드는 지옥에서 우리는 완벽하다고 믿으며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속여야 할까? 같이 있으면 불행하지만, 가족이니까 굳건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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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맨 가족의 결말은 "박살 난 영혼"의 개인들이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도, 그 해결의 실마리가 가족 내에 있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생물학적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인 이상 온전한 이해는 가능하지 않다. 그건 환상에 가깝다. 다이애나가 기억을 찾은 후 댄과 다이애나는 "잊을 수 없는 그날"에 대해 운을 떼고, 다이애나와 나탈리는 그제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지만, 이들은 '평범한 가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이애나는 같이 있으면 함께 불행해질 것 같은 가족을 떠나 "한 번도 못 가본 혼자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이때 <넥스트 투 노멀>의 메시지는 가족의 해체를 단적인 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탁월해진다. 가족이 한 집에서 모든 고통을 함께 견딜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관계가 사라진 각자도생의 삶을 긍정하진 않는다. 집에 남은 댄 곁에는 함께 견뎌 줄 나탈리가 있고, 다이애나-댄의 이야기와 의도적으로 병치된 나탈리와 그의 남자친구인 헨리의 이야기는 전자와 달리 관계의 지속으로 끝맺어진다.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이상 아픔과 상처는 필연적인 것이고, 각자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관계가, 또 삶이 단단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작품에 엔딩에 놓여 있다.

 

 

 

다시 치열하게 빛을 기다리며


 

<넥스트 투 노멀>의 엔딩에서는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다이애나, 댄, 나탈리와 그들 곁에 있는 헨리, 정신과 의사 매든, 그리고 사라지지 않은 게이브를 차례로 비춘다. 결국 다이애나와 댄이 지키고 싶던 '완벽하게 평범한 가족'은 이제 무대에 없다.

 

그렇지만 <넥스트 투 노멀>이 이 앙상한 무대에서 보여 주는 것은 영영 그것이 될 수 없다는 체념적인 비관도, 언젠간 그것이 될 수 있다는 맹목적인 낙관도 아니다. 작품은 고통을 인정하면서 각자, 또 같이 치열하게 빛을 기다리는 개인들의 생의 투쟁을 수놓는다. 또다시 삶은 힘겨울 것이다. 나탈리-헨리가 다이애나-댄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게이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 모르고, 댄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지, 다이애나가 집으로 돌아올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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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오로지 '완벽하게 평범한 가족'만을 위해 그 집에 종속되었던 개인들이 그저 "평범함 그 주변 어디"로 지향의 자리를 옮겼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엔딩은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넥스트 투 노멀>이 갖은 질문 끝에 다시 쓴 평범한 가족의 모습은 그 형태나 풍경이 아닌 삶을 대하는 개인의 태도에 있다는 점에서 빛난다.

 

인생의 상처를 아예 없었던 것으로 만들진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말하고 애도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말할 때"와 "숨 쉴 때"마다 아플 테지만 "아픔은 삶의 일부, 느끼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며 투쟁하며 살아가는 것. 때로는 같이 또 따로 견뎌내며 싸우는 것. 그런 태도로 길 위를 걸어갈 때, 언젠가 한 줄기 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 차마 하나로 명명할 수 없는, 어떤 게 답인지도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인생의 여정 속에서 분명한 것은 그것 하나일 것이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일시 : 2022년 05월 17일(화) ~ 07월 31일(일)

 

시간

평일 8시

토요일 3시, 7시

주말 및 공휴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광림아트센터 BBCH홀

 

티켓가격 

VIP석 110,000원 / R석 90,000원 

S석 70,000원 / A석 50,000원

 

관람시간 : 140분 (인터미션 15분)

 관람등급 : 8세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 

 

제작 : ㈜엠피앤컴퍼니

주관 : 달 컴퍼니






*극본/작사 : 브라이언 요키 (Brian Yorkey)

*작곡 : 톰 킷 (Tom Kitt)

 

*연출 : 로라 피에트로핀토 (Laura Pietropinto)

 

*협력연출 : 박준영

*음악감독 : 이나영

*안무감독 : 박은영

*출연 : 다이애나 / 박칼린, 최정원

댄 / 남경주,  이건명

게이브 / 양희준, 노윤, 이석준

나탈리 / 이아진, 이서영, 이정화

헨리 / 김현진, 최재웅

의사 / 윤석원, 박인배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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