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이 낡지 않는 어른 되기 - 도서 '서른다섯, 늙는 기분'

글 입력 2022.06.1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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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레벨 업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여자 나이 스물다섯이면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헛소리를 이미 벗어난 지 오래였던 나였다. 나 역시 그런 세간의 몰지각한 말에 불안을 전혀 못 느꼈던 바는 아니었으나 빨리 연애고 결혼이고 해치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손쉽게 치울 수 있었던 것은 나보다 앞서 스물다섯과 그 이후의 나이를 겪고 있던 사촌 언니의 존재 덕분이었다. 언니는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공부했고, 취업했고, 사랑도 했다. 언니의 삶을 떠올리자 나는 여자 나이를 두고 크리스마스 케이크 운운하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앉은 자리에서 깨우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다른 나이의 언니들을 인생 선배로 삼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서른다섯, 늙는 기분』이라는 책의 소개글을 보게 되었다. 서른다섯은 곧 새로운 성장을 하는 나이라는 작가의 말과 책 표지 제목에 적힌 ‘늙는 기분’이라는 단어의 조합에서 뭔가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어 책장을 펼쳤다.

 

 

서른다섯, 늙는 기분 표1 띠지.jpg

 

작가 이소호는 본래 시인으로, 등단한 지 곧 10년이 되어간다. 그는 시집 『캣콜링』의 영어 번역본으로 외국에서 상을 받기도 했으며 현재 산문집에까지 글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저자는 산문집 『서른다섯, 늙는 기분』에서 노화와 나이 듦에 대한 소회를 때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하며 꾸밈없이 전한다.

 

이 책을 읽으며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너네 서른다섯 되면 어떨 것 같아?’ 한 친구는 답하길, ‘연봉 좀 오르고 나머지는 비슷할 거 같네.’ 또 다른 친구는 답하길, ‘별 차이 없을 거 같은데 나이만 먹고 지금 나랑 똑같을까 봐 무섭다.’ 학부를 졸업한 후로 나이를 잘 안 세게 되고, 나이가 헷갈려서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차라리 태어난 연도로 답을 하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서 친구들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자랄 만큼 자란 20대 중반 이후로 나는 ‘자란다’기보다는 ‘변하거나,’ ‘변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존재인 것만 같다. 정신 연령은 크게 자라지 않는 것 같은데 나이는 꼬박꼬박 먹어가서 몇 년 전의 나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 그 기분. 그래서 이소호 작가의 다음 문장 또한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서른다섯 살은 좀 다를 것 같았는데 이렇게 정리를 해 보니 똑같다. 몇 가지 영양제를 더 챙겨 먹고 의무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것 말고는 말이다.

 

p. 104

 

 

근본적으로는 그러한데 사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올해가 작년과 다르고 오늘이 어제와 다른 것이 나이 먹어가는 사람의 몸 상태다. 저자 역시 위와 같은 말을 해놓고 전과 다른 나이 든 신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며칠 굶으면 살이 빠지는 체질이었으나 이제 아무리 굶어도 군살이 빠지지 않는다거나, 안 그래도 가늘고 힘없는 머리칼이 점점 빠지며 제모보다 발모에 더 신경을 쓰게 된 모습 등이 그 예이다. 변한 게 없는 듯한 나와 늙어가는 나의 이야기.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사실 모순된 게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나이 먹어갈수록 어차피 다 알게 된다….)

 

책의 1막에서 2막으로 갈수록 작가의 정체성은 뾰족하게 드러난다. 서른다섯 살 이소호, 서른다섯 살 여자 이소호, 시와 산문을 쓰는 서른다섯 살 작가 이소호, 그리고 등단 10년이 되어가는 시인 이소호. 서른다섯 살 이소호가 거스를 수 없는 신체의 노화를 상세히 느낀다면 서른다섯 살 여자 이소호는 사회에서의 나이 듦을 느낀다. 결혼 정보 회사에 신상 정보가 팔려 전화를 받았다가 상담으로 이어진 날 그는 여자 나이 서른다섯이면 남자들이 찾지도 않는다는 말과 함께 여러모로 사람 깎아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가 없지만 젊은 부부가 많은 동네에서 ‘애기 엄마’로 불리기도 한다. 아이는커녕 결혼도 안 한 상태인데 ‘애기 엄마’ 소리를 듣는 부분은 좀 충격이었다. 나도 언젠가 애도 없는데 애기 엄마 소리를 듣는 게 아닐까. 작가는 상대가 비혼주의자일 수도 있고 결혼은 했지만 난임의 고민을 안고 있을 수도 있는데 사회는 너무나 쉽게 30대 중반의 여성에게 아이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며 그 무신경함을 지적한다.

 

늙는 기분과 함께 등단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작가로서의 고민도 글에 묻어나온다.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생전 처음으로 화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의사로부터 내려놓으라는 말을 들은 작가는 그 말이 참 허무하게 들렸다고 한다. 시인으로 살며 남들보다 가진 것도 없는데 더이상 뭘 어떻게 내려놓으란 건지,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산문을 쓰고 있는 자신에게 참 가혹한 말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왠지 예전에 들은 어떤 말이 떠올랐다. 마흔 지나면 내려놓아서 편해진다는 말이었다. 작가의 경험담으로 미루어 보면 서른다섯에도 내려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이는데 그럼 그 5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란 말인가. 두렵기도 하지만 우선 상상이 잘 안 된다. 한편 글밥을 먹는 저자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는 예술가인 나를 누가 사랑할까. 정말 자주 고민한다. 누가 나를 이해할까. 뭘 벌어도 용돈벌이 밖에 되지 않는다고 구박받을 텐데, 요즘은 맞벌이를 다들 원하고, 과연 나는 정말로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pp. 167-168

 

 

내 경우 나이 듦에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남들이 다 취준과 취업의 경로에 서 있는 걸 보면서부터였다. 대학원에 진학한 나는 그 기분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친구들보다 늦게 겪은 편이었지만 해가 갈수록 나이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취업 시장에서 여자 나이와 남자 나이가 다르게 평가받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나보다 내 나이 숫자를 열심히 세는 세상에 살고 있다.’(p. 150)

 

그럼에도 친구들과 가끔 나이 얘기를 하면 대답은 늘 한결같다. ‘20대 초로 돌아가고 싶어?’ 친구들도 나도 고개를 젓는다. 그 시절의 젊고 건강한 신체는 부러운데, 그때의 미숙함과 갈팡질팡함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나마 지금 알고 있는 인생의 지혜도 우리가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갈팡질팡 안달복달 부딪히면서 얻은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은 어릴 적의 내가 그려보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자연히 가지리라 생각했던 것은 내 손에 없고 자연히 가 있으리라 상정한 장소에 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이 모습도 거저 생겨나지 않았다. 그것을 잘 알기에 우리는 20대 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소호 작가의 책을 읽으며 서른다섯의 고민도 딱히 지금 내 나이의 고민과 비교해 유달리 새로울 것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고민의 종류는 상당히 유사했다. 노화해 가는 몸과 건강에 대한 걱정,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내 나이의 가치를 자꾸만 깎아 먹는 사회와 그 사회에서의 생존에 관한 문제, 글을 쓰며 앞으로 맞이할 미래의 불안정성 등등. 다만 고민의 강도가 훨씬 세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진, 그리고 작가가 가진 고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묵직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시인으로 긴 시간 글을 써온 작가로서는 글을 써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의 불균형함을 너무 절절하게 알고 있지 않을까. 나의 고민도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고 골이 깊어지리라 생각하니 덩달아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언젠가는 내려놓음을 실패나 좌절이 아니라 나를 위한 무언가로 혹은 자연히 그런 것으로 편하게 받아들이는 어른이 될까. 그때까지 도대체 무슨 일들을 보고 듣고 겪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바로 나 자신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무기력해도 일을 해야 하는 게 어른이다.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게 어른이다.

어른이란 별것 아니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p. 141

 

어른은 말이지, 울어도 된다. 착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책임만 지면 된다. 그거면 된다.

 

p. 142

 

 

작가의 또 다른 말처럼, 그렇게 나를 책임지면서 나이를 먹되 마음이 낡지 않고 성장해가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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