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불가역적인 시간 속 변화를 쿨하게 맞이하는 일 - 서른다섯, 늙는 기분

자신을 더욱 근사하고 밀도 있게 사랑하기 위하여
글 입력 2022.06.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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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쿨하다는 게 뭔지, 그 뜻을 찾는 데 골몰했었다. 단순히 치졸함이나 구차한 면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숨기고 싶은 찌질한 면이 있으므로. 매번 웃으며 좋게 넘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실 상처받지 않은 게 아니라, 상처 받았음을 들키기 싫은 것일 수 있다. 하여 쿨하다는 건, 외면하고 싶거나 감추고 싶은 심리도 망설임 없이 드러내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이소호의 발화 방식이 더없이 쿨하다고 생각했다. 감추고자 했던 치부나 과거 일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 했으니까.

 

이 책은 그러니까 서른다섯의 이소호가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을 정면 돌파하고, 그 안에서 겪는 변화를 '쿨하게' 맞이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서른다섯, 늙는 기분 표1 띠지.jpg 

 

 

노화를 둘러싼 시선들에 관하여



이소호는 서른다섯이 되어 겪는 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렸을 적에는 웃을 때 예쁘게만 보였지만 이제는 팔자주름이 돋보인다고. 또 전에는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하며 무언가를 비우려고만 했지만, 이제는 뭔가를 채워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고. 가령 머리카락 같은 것 말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자신을 보는 주변의 시선도 달라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이만을 보고 당연히 애 엄마일 것이라 억측하고,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자신에게 면박을 가한다. 더욱이 종일 침대에서 생활하며 글쓰기 및 구상 등 많은 것을 해낼지라도 가족들로부터 타박받는다. 침대에만 누워 있는 건 생산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스물다섯즈음에 대학 선배로부터 이러한 발언을 듣기도 했다.

 

"우리 소호도 이제 크리스마스 케이크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12월 24일까지는 불티나게 팔리다가도 다음 날이 되면 아무도 사지 않듯이, 여자 나이는 25살로 넘어가는 순간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는 과거 이소호가 가입한 결혼정보회사로부터 들은 조언과도 유사하다. 결혼정보회사 직원은 “남자들은 너무 잘난 여자를 싫어한다”며, 남자의 모든 말을 들어주라고 조언했다. 한술 더 떠서 “외국인은 소호 씨 작품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테니 참 좋은 것 같다."라며 국제결혼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이소호는 이상형을 물어왔을 때, 이소호는 그저 예민한 자신을 받아들여 주고, 글을 쓰느라 가난해진 이해해주는 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에는 이해 따위 없다. 대신 철저한 이해관계만이 존재한다. 그 안에서는 여자를 교환 가치로 바라보는 만큼, 어떤 자본주의와도 유사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여자는 능력보다는 나이와 외모가 중요하다’라는 시선을 탑재한 채, 여성을 존중해야 할 인격이 아니라 모종의 성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셈이다.

 

 

 

사회적 압박과 편견에 훅을 날리다



한편 위와 같은 상황은 결혼이라는 문화에 복속돼야 한다는 어떤 압박에서 기인한 상황이라는 점을 떠올려본다. 이소호는 “생리하면 짜증, 하지 않으면 걱정인 시기가 되었다”라고 하면서 혹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몸이라면 이렇게까지 불안해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진 바 있다. 본질만 두고 봤을 때 생물학적 변화에는 부자연스러운 것이 없다. 다만 우리를 특정 게토에 봉착하게 하는 이 사회의 시선에 문제가 있다. 여성을 ‘아이를 낳는 몸’으로 보는 시선 자체도, 종족 번식이 본능이라 해도 인간이라면 자유 의지로 결정할 권한이 있는데 그걸 무시한 데서 기인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노화에 따른 변화는 전부 이상할 게 없지만, 어떤 강요와 압박이 개인을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하는 셈이다.

 

이쯤에서 이소호는 삼십 대가 될수록 외로워진다고 한 것을 떠올려본다. 물론 삼십 대가 되고 일을 하는 데 투자할 시간도 빠듯해진 마당에 다른 일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보편적인 문화에 편입해야 한다는 압박과 강요, 편견들이 사람을 좀먹는 현실임을 고려해야 한다. 그 안에서 어떻게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소호의 엄마는 연애 상대를 두고 언젠가부터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취향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을 시사하는 게 아닐 것이다, 각종 편견과 억압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점차 만남에 대한 기대를 잃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과거 이소호는 이러한 현실에 회의를 느낌과 동시에 조바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전처럼 불안감을 느끼거나 좌시하지 않는다. 명절 때마다 시집을 가라는 가족들에겐 잔소리에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면 '효도하는 마음으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겠다'라며 패기 있게 받아치는가 하면, '교훈이 없고 전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이소호의 글을 거절한 언론사에다가는 왜 매번 교훈을 주어야 하냐고 일침을 날린다. 더는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겠다는 '그레이 헤어 족 선언’에서는 이러한 사투의 정점을 찍는다. 이렇듯 '여자는 특정 나이가 되면 걷힌다'라며 일명 ‘빻은’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 사회에 어퍼컷을 날리는 셈이다. 이는 서른다섯의 이소호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



한편 이소호가 ‘취향’이라는 테마를 두고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그전까지 이소호는 아주 취향이 명확하고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본인이 싫어하는 향이 나는 사람과는 친해지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취향이 모호해졌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첨언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도 존중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취향이 사라진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기실 어느 한쪽이 아니라 전부 옳다고 생각한다. 그냥 뭔가를 고민하기 귀찮아져 그러려니 하게 됐을 즘에 취향이 없어진 것이고, 그것이 다른 쪽에도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나는 어른을 정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른이란 그러니까, 이전에는 어느 한쪽만이 맞는다고 고집했다면 점차 다른 쪽의 가능성도 열어두게 되는 게 아닐까. 나와 다르더라도, 이전과 생각한 게 다르더라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선이 넓어지는 게 아닐까. 내 경험에 따라 그건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가도 그것 역시 틀릴 수 있음을 인지하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무던해지게 된 것은 아닐까.

 

이소호는 책의 뒤편에 있는 ‘에필로그’를 통해 말 했다. 최근 누군가와 말다툼을 한 뒤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나는 너를 이해해”라는 말이었다고 말이다. 이는 이십 대의 어떤 날처럼 과잉된 감정을 쏟아붓기 어려워 체념한 것 따위의 반응이 아니다. 정말로 포용력이 넓어졌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십 년 전과 동일한 영상을 봤음에도 예전과 달리 눈물이 났다고 한다. 이를 두고 누군가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이 많아져서 그렇다”라고 했다더라. 위 상황은 이러한 문장과 궤를 같이하는 건 아닐까 싶다.

 

이소호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삶은 숫자만 바뀔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한 바 있다. 물론 어느 시점이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여전히 미숙한 부분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런 의중을 막론하고 이 문장 자체를 다시 쓰고 싶어졌다. 아니다, 삶은 분명 계속해서 달라진다. 달라지는데, 그 달라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성숙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리고 노화와 같은 변화를 자연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과연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늙는 것과 성숙함 사이의 간극에서 나아가기



책 표지를 보는데 제목 번역에 'maturity'라는 단어가 있었다. 단어가 생소해서 찾아봤는데 성숙함, 원숙함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데 어쩐지 ‘늙는 기분’과 성숙함 사이에는 다소간의 괴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늙는 것은 물리적인 영역이지만, 성숙함은 정서적인 영역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려 어떤 점에서는 '성숙함'이라는 단어가 더 적확하게 어울리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저자는 책에서 그 늙어가는 과정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부정하는 대신 그저 받아들이고 자신의 일부로 수용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는 곧 성숙함이라는 단어로 치환 가능하지 않나.

 

책을 편 순간 이소호 작가의 사인과 함께 "울다가 웃어도 괜찮은 어른을 위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 떠오른다. 이는 어른이 된 이래 선택이 필연의 문제로 굳어진 지금, 아무리 글쓰기가 괴로워도 꿋꿋이 일을 지속해야 하는 상황을 이를 것이다. 또 그 안에서 대놓고 힘들다고 토로하지는 못 하더라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해 성장 서사를 뽐내는 이들에게 자신을 투영시켜 울며 용기를 얻는 일일 것이다. 나아가 나이가 들지라도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이소호는 그렇게 굳건히 오늘을 살아내고자 고군분투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 드는 건 불가역적이라는 걸 받아들이면서도 더욱 건강해보이기 위해 피부과 시술을 받고, 키오스크 앞에서 난처함을 겪을 때면 수치스럽다가도 배우려 노력하고, 요즘 말을 익히기 위해 검색을 생활화한다. 나아가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 처지에 놓인 우리 모두에게 조언을 건넨다. 내 몸의 변화를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데서부터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의 시작이라고. 나이 든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데서 외려 해방될 것이라고. 이것이 우리를 억압하는 사회에 당당하게 맞서고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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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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