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가 달에 가고 싶었던 이유 - 투 더 문To the Moon [게임]

글 입력 2022.06.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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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풀 라이프>에는 ‘림보’라는 공간이 등장한다. 이곳은 다음 생으로 가기 전 죽은 자들이 머무는 일종의 정거장으로, 이곳에서 그들은 7일 동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그리고 그 기억만을 간직한 채로 다음 생애를 살아가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을 고르고, 그 기억을 평생 간직한 채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니. 언뜻 보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서 생각하면 나머지 선택되지 못한 기억들은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불행한 삶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행복한 기억 몇 개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단 하나의 기억만을 고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그래서 어떤 이들은 끝내 선택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림보에 머무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더풀 라이프>의 물음은 우리에게 묵직하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이제 이 물음은 단순히 기억을 넘어,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왜냐하면 나의 이번 삶이 선택한 기억으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질문은 낭만적이면서 동시에 실존적이다. 당신 역시 기억을 고르는 일이 굉장히 신중하고,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한 발짝 나아가 또 다른 질문을 더 던져보겠다. 당신은 그토록 어렵게 고른 행복한 기억을 당신의 슬픔을 막기 위해 희생시킬 수 있나요? 더 이상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당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희생시킬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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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팀

 

 

제목 : 투 더 문To the Moon

장르 : 어드벤처, 인디, RPG

개발자 : Freebird Games

출시 날짜 : 2011년 11월 1일

가격 : 10,500원 (스팀 기준)

 

 

<투 더 문To the Moon>은 캐나다의 게임사 프리버드 게임즈에서 만든 ‘지그문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대다수의 쯔꾸르 게임들이 공포 장르를 표방하는 가운데 따뜻한 도트 그래픽과 아름다운 BGM, 감성적인 스토리를 자랑하는 이 게임은 국내에서도 적잖은 마니아층을 만들며 게임이 첫 출시한 2011년 이후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렇다면 <투 더 문>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예술은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애초에 예술의 탄생 목적에는 인간의 표현 욕구가 결부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한 편의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건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삶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다.

 

<투 더 문>은 그런 의미에서 꽤 훌륭한 사례다. 이 게임은 기억 조작을 통해 고객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심어주는 로잘린과 와츠가 달에 가고 싶은 노인 존의 소망을 이뤄주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로잘린과 와츠가 하는 일이 기억을 조작하여 고객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수많은 가능성과 생각을 낳는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한 많은 유저들은 이 게임의 엔딩을 두고 해피 엔딩인 동시에 새드 엔딩이라는 기묘한 평가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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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팀

 

 

(다음 부분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어쩌면 <투 더 문>은 이 한 문장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게임의 주인공인 조니와 리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특별해지고 싶었던 존과 남들처럼 평범해지고 싶었던 리버. 바라는 희망마저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아름다운 달빛 아래에서 그들은 특별한 첫 만남의 추억을 가졌다. 그리고 기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되어 각자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끔찍한 사고로 존은 기억을 지우게 되고, 특별했던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리버만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져 부부가 되었지만 존은 리버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도저히 기억하지 못한다. 이에 리버는 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그녀 역시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이 몰랐던 사실 하나. 기억은 지워졌을지 몰라도 리버와의 추억은 존의 무의식 속에 남아 한 가지 바램을 심어두었다. 그건 바로 달에 가야한다는 것.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까먹거나… 여길 못 찾으면 어떡하지?”

“그럼 달에서 만나면 되잖아, 바보!”

 

 

한편 비로소 존이 달에 가고 싶은 이유를 알게 된 로잘린과 와츠는 고민에 빠진다. 만약 이 사실을 밝힌다면 조니가 지워야 했던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도 함께 꺼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두 사람은 한 가지 선택을 한다. 리버를 존의 삶에서 떼어놓은 것이다. 물론 고객들에게 해피엔딩을 만들어 준다는 목표를 잊은 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두 사람을 재회시킨 것이다. 새로운 기억 속에서 두 사람은 이번에도 사랑에 빠졌고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저들이 이러한 엔딩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존의 머릿속에서만 펼쳐진 가상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존이 자신들의 첫 만남을 기억하길 바랐던 리버의 소원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보다 강하게 말하자면 그동안 리버의 노력이, 삶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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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팀

 

 

이쯤에서 우리는 앞서 던진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한다. 당신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당신의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을 희생시킬 수 있나요? 이는 <원더풀 라이프> 보다 답하기가 훨씬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기억은 곧 실존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희생한다는 건 기억의 당사자 본인을 희생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렇기에 만약 내게 똑같은 물음을 던진다면 나는 로잘린과 와츠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내겐 존이 달에 간다는 사실보다 그가 달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존이 달에 가고 싶었던 건 그곳에서 리버와 만날 수 있다고 믿어서다. 그런 존의 기억에서 리버를 떼어놓는 것은, 그들의 첫 만남을 지워버리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물론 이러한 생각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존에게 달에 가고 싶은 이유를 깨닫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그의 트라우마를 건드려야 한다. 만약 그 결과가 존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면 로잘린과 와츠의 방식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조작된 기억 안에서도 존과 리버의 행복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은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주인공 ‘기쁨’은 슬픔이 라일리의 행복한 핵심 기억을 망가뜨리는 사고뭉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기억들을 기쁨과 슬픔이 혼재된 복합적인 형태였다. 쉽게 말해 그날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우울해하는 라일리를 위해 부모님이 따뜻한 위로를 건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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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팀

 

 

이처럼 기억과 감정은 마치 숫자처럼 나눠 떨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행복한 기억만 발라낼 수는 없는 법이다. 각각의 감정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렇게 혼합된 기억들을 안고 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의 존재를 형성하고 성장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리버’다. 리버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기억을 지우는 대신에 조니와의 추억을 발판 삼아 행복한 삶을 살았다. 이처럼 누군가는 슬픔에 매몰되어 절망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행복한 기억에 기대어 미래를 향한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기억은 본인이 감당할 문제지, 다른 누구의 선택이 개입될 부분이 아니다.

 

 

이 세상이 끝날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건 달이야

나와 함께 날아오르지 않을래? 별들이 모두 져버릴 때까지

별은 모두 사라졌지만 난 별로 상관하지 않아

만약 너와 내가 함께 한다면 모든 게 괜찮아질거야

만약 너와 내가 함께 한다면 모든 게 괜찮아질거야

 

- ost “Everything alright” 中 -

 

 

삶은 마치 크레파스와 같다. 내가 어떤 색깔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여러 색깔의 감정과 기억들이 한데 어울러졌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완성된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색깔을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였으니까 말이다. 마치 리버가 그러했듯이.

 

그런 의미에서 앞선 질문들을 다시 한 번 꺼내본다.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그 기억을 슬픔과 불행을 위해 희생시킬 수 있나요? 이번엔 우리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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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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