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완전한 두 개의 삶이 만날 때 – 컴온 컴온 [영화]

He’s a full little person.
글 입력 2022.06.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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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는다. 들리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의 존재를 인식한다. <컴온 컴온>은 타인을 ‘듣는’ 법을 알려준다. 흑백 영화로 제작해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하고, 라디오 인터뷰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관객이 자연스레 목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조니와 비브는 서먹한 남매 사이이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다가 비브의 곤란한 상황을 알게 된 조니는 비브의 아들인 제시를 잠시 돌보아주기로 한다. 조니는 라디오 저널리스트로서 삶과 미래에 대해 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네 이야기도 녹음해보자. 조니가 제안하지만 제시는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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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 거라고 말했지만,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역시나 쉽지 않다. 도통 아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이리저리 튀는 사고 과정을 따라잡지 못해 조니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어느 날 조니는 가게에서 제시를 잃어버린다. 문득 제시가 사라졌음을 깨달은 조니는 제시를 부르며 온 가게를 돌아다닌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니의 두려움은 제시를 찾는 모든 발걸음마다 부풀어만 간다. 그의 뒤를 쫓으며 숨죽이고 있던 제시는 와락 조니를 덮치며 나타난다.


조니는 소리친다. “그러면 안 돼!” 제시는 얼어붙었고, 그 날 밤 조니와 대화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이의 시선에서 제시의 장난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보호자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아이를 찾는 순간 느끼는 커다란 안도감은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이어진다. 조니 역시 휘몰아치는 감정을 다 누르지 못하고 제시를 붙잡은 채로 당부한 것이다.


제시는 조니의 강압적인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 높은 진열대가 미로처럼 놓인 가게가 놀이터처럼 보여 숨바꼭질을 조금 했을 뿐이고, 아무런 문제도 없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조니는 장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그를 붙잡았다. 제시는 당황스럽다. 그리고 무엇을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건지도 헷갈리기만 한다.

 

제시는 그 나름의 감정 표현으로써 집에 돌아가자마자 문을 쿵, 닫고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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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던 두 사람의 감정은 어쩌면 부딪힐 운명이었다. 지금껏 조니는 제시의 행동을, 제시는 조니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른과 아이의 세계로 나뉜 각자의 세계에서 통용되던 행동을 그대로 서로에게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해야겠지만, 문제의 본질을 가린 조니의 화에는 사과가 필요하다. 어른의 감정은 폭력적이지 쉽다. 조니가 제시를 찾으며 느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그가 화를 낸 순간 설득력을 잃는다. 그 순간 조니는 상대적 약자에게 위축을 주는 대상에 불과하다.


“Do you have trouble expressing emotions? Sit down. Let them all out.”

“혹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가요? 일단 앉아요. 모두 내보내요.”


제시는 조니에게 이렇게 묻는다. 느낀 바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더 격렬하고 왜곡된 감정을 표현하는 어른을 위한 질문이다. 제시는 이 표현을 비브에게서 배웠다. 제시가 원하는 바를 또렷이 말하지 못하고 발을 구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혹은 입을 다물었을 때 비브는 그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왔다. 조니는 다 커버린 어른이지만,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자주 잊는다. 우리가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감정은 내뱉는 순간 필연적으로 상대에게 전해진다. 더 큰 파장으로 상대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감정과 표현에는 정리가 필요하다. 전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잘 골라내 번듯한 모습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조니와 제시는 함께 숨을 고르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관계를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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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는 비브의 말을 따라 하며 감정을 잘 아는 체하지만, 사실 제시도 모르는 감정이 많다.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개수는 개인의 성정을 제외하면 대부분 경험에 비례한다. 원하지 않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거짓말을 하며 회피하는 건 제시와 주변인 모두를 힘들게 한다. 거듭 제시에게 괜찮냐고 묻던 조니는 영화의 끝자락에서 제시가 직접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알려준다.


조니는 작은 숲에서 제시를 북돋는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단어로 옮기고, 그걸 온몸으로 표현하게 한다. 소리치고, 낙엽을 밟고, 몸을 마구 흔들기도 한다. 그 감정은 이렇게 표현하는 거야. 어색해하는 제시를 향해 ‘컴온, 컴온’하고 외치며 함께 몸을 움직인다. 제시는 조니가 알려준 감정을 이제 마음껏 이용할 수 있을 거다. 한 감정을 어울리는 상황에서, 어울리는 형태로 타인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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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가 보여준 커다란 세상과 새로운 감정에 대한 보답인지, 제시는 마이크를 집어 들고 자신을 직접 인터뷰한다. 조니가 다른 아이들을 인터뷰하던 대로, 목소리를 잔뜩 깔고 그의 질문을 따라 한다. 그리고 말한다.


“Whatever you plan on happening, never happens. Stuff you never think of happens.”

“네가 계획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그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네가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일어날 거다.”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님을 제시가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일까. 혹은 재고 따지는 데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쏟는 어른들을 위한 조언일까. 그의 말처럼 며칠 사이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을 여럿 겪은 제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시는 이렇게 말하며 ‘컴온, 컴온’이라며 화면 밖 우리를 부추긴다. 조니가 제시를 북돋아 주며 덧붙인 말과 같다. 조니와 제시처럼,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자신이 아는 걸 알려주며 이해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컴온 컴온>은 그런 공생에 관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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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think we are alike?”

"우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제시와 한 침대에 누운 어느 날, 조니가 이렇게 묻는다. 예전의 조니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질문이다. 작은 아이들과 어른인 자신은 전혀 다르다고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조니의 물음에 제시는 절대 비슷하지 않다고 대답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발을 맞춰가며 서로에게 무언가를 알려준 이들 간의 애정이 가득한 장면이다.


모두의 삶은 완전하다. 그 한 사람에게 꼭 맞게 완전해서, 그 누구도 부족하다며 무시할 수 없다. 아이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완전한 어른의 삶도 아이의 삶도 ‘완벽’하지는 않기에, 서로의 진짜 목소리를 들으며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당신은 타인에게 어떤 격려를 보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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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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