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심장의 빠르기 - 피아니스트 조재혁 리사이틀

그와 내 심장의 빠르기
글 입력 2022.06.1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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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쇼팽(최종).jpg


쇼팽, 드디어 쇼팽이다. 피아노 클래식에 대한 나의 서툰 관심을 한 손으로 잡아 끌어당겨 버린 그 이, 직관은 처음이라 대단히 설렜다. 수요일은 회사 일이 그리 많지도 않지만, 그래도 주의 정 중앙에 위치해 조금은 부담스러운 요일. 더구나 용인에서 출발하는 처지에서야 그 부담이 쉽지 않다. 20시까지 잠실 롯데타워에 가려면, 17시 30분에는 자리를 떠야 한다, 저녁은 당연히 못 먹는 것이고. 그럼에도 팀장님께 한 주 먼저 이른 퇴근을 예고하고 신청을 누른다. 프로그램이 전부 애호하는 곡, 발라드 전 곡과 피아노 소나타 3번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글을 쓰려는 때엔 몸의 박자를 늦추어야 하는데, 심장이 일상의 박자에 맞추어 아직 통통거리고 있으면 쇼팽을 틀었다.


글을 쓰자 하면, 가장 먼저 심장의 빠르기를 늦춰내야 했다. 들뜨는 기분의 박자이어서도 아니 되고, 심지어는 출근과 일상과 퇴근, 거리를 거니는 박자여도 아니 된다. 보다 느리게 내 몸의 박자감이 형성되어야 글은 진득하게 이어져 나간다. 새삼스레 궁금해지는 지금, 메트로놈을 켰다. 오른손으로 BPM을 조절하며 왼손으로 턱을 괴었다. 왼쪽 턱과 귀가 이어지는 사이쯤에서 심박은 가장 뭉클하게 느껴져 왔다. 막 샤워를 하고 나와 글을 쓰려는 지금. 80보다는 빠르게, 100보다는 느리게, BPM이 90을 가리키는 순간, 맥박과 정확히 동일한 박자로 건조한 메트로놈 소리가 틱틱- 맞추어다 댄다.


이게 내 평소의 박자감이었구나. 이 상태에서는 글이 아니 나온다. 무언가 골몰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탓, 하얀 백지 위로 무언가 없던 것을 직조해내기에는 심장 고동이 손끝을 흐리는 탓이다. 사위가 너무 시끄러우면 글이 아니 나오듯, 내 안이 정신없이 촐랑거리어도 글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드를 잡고, 심박을 늦추기 위한 방책으로는 언제나 쇼팽 발라드 1번을 택한다. 메트로놈의 BPM을 50으로 낮추어보았다. 이 박자를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심장이 느려져야 글 쓰는 마음은 '되었다', 이렇게 말했다.

 

 

 

 

쇼팽 발라드 1번은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처음 만난 곡이다. 20대 초중반이었나, 그땐 이 음악이 속 터지게 느리다고 생각했다. 이 박자감을 기다려 볼 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탓이라고, 바깥엔 햇살이 가득 차있고 얼른 나가 날 기다리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노라 은연중 느끼던 탓이라고, 지금에 생각한다. 더는 세상이 나를 잡아당긴다고 생각되지 않을 때부터 이 노래는 귀에 스미었다. 시간이 한정적인 것에서 극복해야 하는 것이 될 즈음부터, 또는 사색할 수 있을만큼은 빈 시간과 공허가 마련된 즈음부터 마음에 젖는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것은 발라드 1번도, 사색도,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사랑하는 쇼팽 발라드 1번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려 한다. 글이 밤에 태어나듯, 이 노래에 대한 나의 사랑도 밤에 피어나기에 드디어 지금. 그러나 언제나처럼 가장 먼저 영화, '피아니스트'의 장면이 떠올라 집중을 흩는다. 아직 음악으로는 독자적인 심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 탓. 그리고 이 음악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긴 까닭에, 일전 음악이 이야기를 그려내 보려고만 하면 여러 카페를 전전했던 내 얼굴 표정이 뒤이어 떠올라선 훼방을 놓는다. 그래서 강제로 이 음악이 머물러줄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주된 정서는 낭만적인 고독으로 한다. 건반의 터치감만큼이나 고운 슬픔은 차라리 비애의 아름다움, 비애미가 돼주어 어느 인물의 마음속을 어른거린다. 주광빛 가로등이 드리운, 텅 빈 유럽 어느 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옆에는 어여쁜 강과 마찬가지로 어여쁜 다리 하나가 놓여있음이 보인다. 거리는 돌로 포장되어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걸어보기엔 돌과 돌 사이의 틈을 조심하느라고, 인물은 바닥을 보며 걷는다.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집중할 무언가로 인해 누군가에 완전히 폭- 젖어들지 않는 거리감을 유지한 채로. 쓸쓸해 보이지만, 완전히는 아니다.

 

골몰하는 이의 짐짓 엄중한 표정, 그런 그를 두고 슬퍼 보이노라고 함부로 얘기해 보일 수 없다. 거닐며 이따금 우뚝 섰다간, 곁에 두고 잊고 있던 강을 바라보다간, 바닥을 보곤 한번 스윽- 웃어 보인다. 그리곤 이내 주머니에 꼽아둔 손을 뽑아들어, 비어버린 품을 안고 왈츠 스텝을 춘다. 느긋하게 한 발을 좌측 사선으로 뻗으며 몸을 우측으로 돌린다. 발라드 박자에 맞추어서. 그는 웃고 있지 않다. 적당한 침묵을 다문 입술. 느릿하게 세 바퀴를 돌아보이곤 고정해둔 앞발로 지면을 밀며 뒤쪽 다리로 구두굽이 땅에 끌리는 소리를 낸다. 왼쪽 팔은 우아하게 뻗어냈다, 마치 잡을 손이 있는 것 마냥. 손 끝을 응시한다. 마침내 우뚝, 춤추기를 멈추고 팔을 늘어뜨렸다. 선 자세 그대로 측면 강을 바라본다. 조금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지만, 발라드 1번은 내게 이런 느낌을 주는 노래이다.

 

*


롯데콘서트홀에 들어섰다. 2층 R열과 무대 위 피아노 사이의 거리가 적당하다. 딴에는 몇 번 와보았다고 익숙함을 느끼려는 내가 우스웠다. 시간을 딱 맞추어 도착했기에 대기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 말은 발라드 1번을 받아들일 만큼 아직 내 심장을 늦춰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조금 서둘러 걸어온 탓에, 건물 로비를 여러 번 헤매인 탓에 짚어보지 않아도 심장이 왈칵 피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래선 안 되는데, 불안한 감정마저 가진 채로 공연이 시작됐다.


얼굴마저 잘 보이지 않는 멀리서도, 조재혁 피아니스트의 몸태가 눈에 띄었다. 온몸에 아무런 긴장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이완된 승모와 곧게 뻗은 목고개, 그리고 피아노 곁에 아주 오래 앉아 있기 위해 곧추선 하복부 및 척추가 그의 우아함을 말한다. 피아노에 앉아선 엉덩이를 몇 번 들썩이며, 그는 90분간의 긴 연주를 위한 자세를 가다듬었다. 측면을 보이는 피아니스트, 과연 그의 시원하게 뻗은 앉은 자세가 내 일전의 생각을 긍정해주는 듯 하다. 저렇게 몸에 아무런 텐션이 없어야만 손끝의 힘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건반을 오가는 내내 손끝에 어릴 힘을 풀어낸다는 것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아득히 긴 시간을 요했을 테다.


쿵- 묵직하고 긴 첫 음이 공연장에 떨어졌다. 그 첫 음은 마침표처럼 엄중했고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곧 이을 음표의 문장들을 불허하는 것처럼 우뚝 섰다. 그러나 여지없이 음표는 공간에 풀려났고 잠깐의 망설임마저 헤치고선, 보드라운 관절을 가진 어느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왼손의 반주가 주선율에 바로 뒤이어 두 번 통-통, 반복된다. 아주 느릿하게 추는 왈츠를 상기시키는 박자 구성. 그 박자를 따라 감정은 아주 서서히 고조된다. 눈치챌 새도 없이 빨라지는 박자와 터치의 세기, 그리곤 충분히 달아오른 다음 다시 일순 긴장을 흩어버린다. 이 곡은 이렇게 고조와 이완을 반복하는 중에,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다. 진지하게 궁싯거리지만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게 내닫지만도 않는 이것은 어두운 밤에 느끼는 사람의 감정 같다. 넘나듦이다. 고요하다가도 갑자기 퍼져나오는 감정, 그리고 이내 거짓처럼 스러지는 그 감정.


 



발라드 2번과 3번은 잘 듣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고, 4번에 대해 이야기해볼 차례이다. 첫 마디는 봄의 설렘 같이 자연스럽게 연다. 하지만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란, 삽시간에 형성해둔 이 기대와 공감대를 음악이 곧 좌절시켜버리리라는 사실이다. 장조 진행을 점차 페이드-아웃해 나가다가, 단 한 개의 음, 단조로 된 단 한 번의 터치로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다. 이렇게 천재적인 선율 작법이라니. 그것은 마치 한낮에서 갑자기 밤으로 바뀌어버리는 것 같이 당황스러운 일이다. 선율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태연하고 자연스레 진행되지만, 그것은 만든 이의 천재성만을 더없이 우아하게 드러내고 만다.


쇼팽의 선율은 슬픔과 기쁨 그 사이 어딘가, 특정할 수 없는 모호한 지점에서 양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단조와 장조, 미약한 비애감과 미약한 환희 사이를 물속을 미끄러지는 돌고래처럼 자유로이 오간다. 이런 밤. 빈 밤, 빈 방, 그리고 고요함과 늦추어둔 심장마저 마련되면, 쇼팽 발라드는 그 마력을 뿜어대며 나를 곱게만 흔들어 놓았다. 황홀하게 길을 잃는 감정, 제멋대로 쥐흔들고 마구 뒤섞어버리는 통에 인식마저 포기하고 내버려두게 만드는, 그런 상태로 젖어든다. 그런 선율을 더구나 드넓은 콘서트홀이 머금곤 다시 뱉을 제엔, 풍만함마저 배태하게 되나니 얼마나 더 아름다워지는지에 대해서까진 이상 상술하지 않겠다.


한편, 조재혁 피아니스트의 심장이 빠른 것인지, 미처 늦춰두지 못한 내 심장 박동의 탓인지, 리사이틀에서 연주된 발라드 전곡에 대해 내 몸이 기억하는 그것의 박자감보다 어림잡아 5~10 BPM 정도 빠르다고 여겼다. 그의 손 마디마디 연골은 매우 매끄러워, 특히 8분음표와 16분음표를 다룰 때 강점인 '보드라운 빠르기'가 도드라지는 듯하다. 발라드 전반의 박자감은 유장하고 여유롭지만, 감정의 고조점부터 그 다음 이완까지는 몰아치듯이 빨라지며, 수많은 8분음표로 악보를 가득 채운다. 즉 내가 느낀 속도감의 차이는 이완부, 4분음표와 점 4분음표의 순간들에 대함이다. 그런 한편, 급하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은 까닭은 그의 전신이 잘 이완되어 있고, 그의 손끝이 형성해내는 박자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 귀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그와 내 심장의 빠르기가 다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인터미션 동안 그런 의뭉스러움을 적다가 2부를 맞았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이다. 이것도 되게 좋아하는 곡. 첫 한 마디만으로 단번에 귀를 사로잡아버리는, 대단한 카리스마가 이 곡에는 있다. 클래식을 한 곡 반복으로 틀어두고 글을 쓰다가 보면 그것은 어느샌가 배음이 되어버리곤 마는데, 소나타 3번으로 그런 짓을 했다간 바로 이 첫 부분, 4개 음표가 천둥처럼 내리꽂히는 지점에서 언제나 정신이 환기되곤 한다. 소나타 3번은 4개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주로 1악장을 듣는다.


쇼팽 폴로네이즈가 개선장군의 당당한 가슴과 늠름한 어깨, 의기로운 얼굴 표정을 연상시킨다면, 이 곡 피아노 소나타 3번은 사내의 단단하게 펴진 어깨 위로 신중하게 좁혀진 미간과 주름이 진 인중, 그리고 기도하는 모양으로 모아진 고운 손을 연상시킨다. 둘 다 내 안에 모종의 강함을 연상시키지만, 차이점이란 무드와 감정선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 피아노 소나타 3번은 발라드보다 강하지만, 발라드처럼 '밤의 감정'이 서려 있다.


음계를 내리 타는 조재혁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드디어 자신만의 탁월함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곧게 벼려진 신체가 오랜 훈련의 결과를 보인다. 빠르게 노니는 손가락은 터치의 셈여림과 박자의 완급조절을 오가는 통에도 전체적인 박자감을 이탈하지 않는다. 16분음표가 더욱 많아진 악보에서 그의 진가가 느껴진다. 1개 마디 안에 자리한 무수한 음표를 정확하고도 더욱 빠른 속도로 짚어내되, 텐션은 서리지 않게 하는 저 훈련된 손가락의 탁월함을 느꼈다.





 

앞서 발라드에서 느꼈던 것, 저 이와 내 심장의 빠르기를 각각 생각해보며 소나타 3번을 들었다. 과연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체에 깃든 BPM은 각자 다를 것이니, 저 피아니스트의 심장은 나의 그것보다 왕성하고 활기차게, 그러나 꾸준한 빠르기로 움직이고 있겠구나 생각하였다. 우리가 성급함이라고 부르는 것은, 각자의 신체가 이루는 꾸준한 박자를 이탈하여 조급함으로, 빠르게 치닫곤 잦아들어 돌아오는 일련을 가리키는 것이었겠구나, 그렇다면, 저렇게 꾸준한 빠르기는 저 사람의 고유한 심장 박동수일 것이다,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내 몸이 기억하는 소나타 3번의 박자감보다도 조금은 빠른, 그러나 더욱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빠르기로 곡이 연주되었다. 클래식의 재미는 같은 곡을 오래 들었을 때 맛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다. 유구한 전통을 가지는 낡은 악보를, 각자의 해석과 고유한 심장의 빠르기로 무궁히 재생산해내는 것. 그것을 듣는 나는 연주자마다 만들어내는 곡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아렴풋 느끼는 즈음에 그 즐거움을 알겠다. 조재혁 피아니스트만의 쇼팽, 빠르게 풀려나는 음표의 향연에 흠뻑 젖으며 쇼팽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한 가지 더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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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는 상대적인 것이겠지. 내 고유한 박자감에 대비되며 드러나는 조재혁 피아니스트의 박자감을 느낀다. 90분 간, 발라드 전 곡과 소나타 3번 전 악장을 연주하는 동안 균일하게 전달되는 손놀림 사이 모종의 간격. 나는 그것이 신체가 간직한 박자감, 우리 몸에서 영원토록 박자를 형성하는 것이란 심장밖에 없었으니 심장의 박자감이라고 생각해본다. 그의 속도로 그려낸 쇼팽은, 어쩐지 그의 생김새와 인상을 닮은 것 같다.


피아니스트의 손끝은 그 심장으로부터 뻗어나온 것일 테다. 곡에 흠뻑 취한 피아니스트는 마음으로 곡을 느끼고 전신으로 연주하곤 하니까. 몸과 표정으로 하는 연주, 그건 아마 수천 번의 연주 끝에 만들어진 곡의 심상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 곧게 뻗은 허리는 유지하고서 그는 살짝 몸을 굽히기도, 눈을 지긋이 찡그리기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치어 들기도,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과하지 않은 제스쳐, 도도히 음미하는 인상을 준다. 그런 중에도 손끝은 박자감을 놓치지 않으며, 심장이 이루는 빠른 속도로 내가 모르는 쇼팽을 그려낸다. 내 몸이 기억하는 쇼팽, 50 BPM과 글 쓰는 박자의 쇼팽이 지니는 여린 얼굴과는 다른 것. 본 공연을 통해 그려진 조재혁의 쇼팽을 무어라 불러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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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쇼팽 조각상의 표정처럼 온유하고 여리다기보다는, 조재혁 피아니스트의 사진처럼 굳세고 당찬 느낌이다. 16분음표로 이루어진 긴-긴 스케일*을 거침없고도 빠른 속도로 주파하는 그의 주법이 특히 그런 인상을 묘사한다. 그리고 군데군데 내 기억 속 셈여림 및 템포와는 다른 그만의 해석이 나타날수록, 그의 표현과 개성은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소나타 3번 1악장의 빠르기는 Allegro maestoso, '빠르고 웅장하게'이다. 나는 그가 해석한 연주에서 '빠르게'와 '웅장하게'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 스케일 : 음계, 음의 계단. 음을 순차적으로 늘어놓은 집합. 저음에서 고음 방향으로 연주하는 것을 상행 스케일, 고음에서 저음 방향으로 연주하는 것을 하행 스케일이라고 한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그의 손끝을 움직이게 하는 굳세고 당찬 심장, 그 박자와 속도감을 되새겨본다. 언젠가, 그가 쇼팽 폴로네즈를 들고 다시 우리들을 찾아와주었으면 싶다. 짐짓 자신의 무용을 뽐내는듯한 어느 장군의 느릿하고도 유장한 발걸음이 아닌, 굳세고 당찬 빠르기로 또박또박 걸어내는 조재혁의 폴로네즈를 듣고 싶어진다. 다음의 만남을 고대하며, 이상 피아니스트 조재혁 쇼팽 리사이틀 리뷰를 마친다.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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